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40)
밧세바, 다 내 탓이다(1)
1. 밧세바. 그는 누구인가? 목욕하는 한 여인으로 성경에 등장한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사무엘하 11:3)이다. 하지만 성경기자는 그를 밧세바라는 이름 대신 “우리아의 아내”(11:26)라고 부르는데, 다윗이 그를 궁전으로 데려와서 아내로 삼았는데도(27절) 성경기자는 계속해서 “우리아의 아내(12:10, 15)라고 한다.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12:15). 이 요상한 구절을 지나서 12장 24절에서야 성경기자는 밧세바를 다윗의 아내라고 부른다. “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성경기자는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태어난 첫째 아이가 죽은 다음에야 비로소 밧세바를 다윗의 아내로 인정한 것이다.
2. 다윗은 아내가 여럿이었는데, 그 가운데 미갈, 아비가일, 그리고 밧세바가 다윗의 아내가 된 사연은 꽤 복잡하다. 사울의 딸인 미갈은 다윗과 결혼했다가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주하는 바람에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된다. 다윗은 왕위에 오른 다음, 미갈 부부를 강제 이혼케 해서 미갈을 다시 아내로 맞이한다. 아비가일은 나발의 부인이었는데, 나발이 죽은 다음, 다윗과 결혼한다. 그리고 밧세바는 우리아의 아내였는데, 다윗의 계교로 우리아가 전사한 후에 다윗의 아내가 된다.
밧세바 (폴 세잔, 1880년경)
3. 밧세바가 다윗의 아내가 되는 과정을 찬찬히 살펴보자. 다윗과 밧세바가 처음 만나서 결혼하는 과정을 성경기자는 사무엘하 11장과 12장에서 꽤 상세하게 들려주는데, 당시에 상당히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던 모양이다. 다윗은 주변 나라들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례적으로 출전해서 군사력 시위를 하게 하는데, 이번에는 요압을 암몬으로 보내고, 자신은 예루살렘 왕궁에 남았다. 어느 날 저녁에 다윗은 왕궁 옥상에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발견한다. 그 여인은 “심히 아름다웠다”(11:2). 그 아름다움이란 분명히 성적인 매력이었을 것이다.
4. 다윗은 즉시 심복을 보내서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게 한다. 그 심복이 돌아와서 그 여인이 누구인지를 알려주었는데, 남편인 우리아가 요압과 함께 암몬 전투에 참여해서 집 안에 남자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다윗은 밧세바를 데려오게 해서 동침한 다음, 집으로 돌려보낸다. 거기서 일이 끝났어야 하는데, 밧세바가 임신을 했고, 그 소식을 다윗에게 알린다. 밧세바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큰 일 났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그 일을 무마하기 위해 요압에게 편지를 보낸다. 우리아에게 휴가를 주게 해서 밧세바와 동침케 하려 한 것이다.
5. 하지만 우리아는 너무나 강직했다. 성경기자는 우리아의 강직함을 괘 길게 서술한다(11:6-13). 다윗은 우리아를 과소평가했던 것이다. 우리아가 다윗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고 귀대하는 바람에, 다윗은 우리아를 죽이기로 계획한다. 그리고 요압에게 편지를 보내서, 우리아를 전사하게 한다. 결국 우리아는 자신이 그토록 충성을 바친 조국에 배신을 당한 것이다. 다윗과 요압, 그리고 밧세바, 이들은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이다. 성경기자는 우리아를 전사케 하는 그 추악한 음모를 상세하게 들려준다. 그들이 주고받은 편지 내용을 그대로 보여준다.
6. 그들은 우리아를 전사케 하려고 대본을 만들었다. 그리고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요압은 부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의 용기를 북돋워주는 훌륭한 사령관을 연기했다. 그리고 다윗은 전투 계획을 잘못 세워서 뛰어난 무장을 전사케 한 지휘관들에게 격분하는 훌륭한 왕을 연기했다. 다윗과 요압은 매우 탁월한 연기자들이다. 자신들의 진면목과는 전혀 다른 거짓된 역할을 너무도 능숙하게 해낸 것이다. 이들과 달리, 우리아, 그리고 그와 함께 전사한 군인들, 음모로 가득한 추악한 편지를 들고, 그것이 그런 편지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다윗과 요압 사이를 오고간 전령. 그들은 모든 게 진실인 줄 알았을 것이다.
7. 밧세바는 어땠을까? 성경기자는 남편이 전사한 소식을 들은 밧세바의 모습을 이렇게 서술한다. “우리아의 아내는 그 남편 우리아가 죽었음을 듣고 그의 남편을 위하여 소리 내어 우니라”(11:26). 별다른 평가를 하지 않지만, 성경기자가 생각하기에도 밧세바의 그런 모습은 매우 역겨웠을 것이다. 정확한 사실이야 알 길이 없지만, 밧세바가 우리아의 비극적인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했을 수도 있지만, 눈물 흘리는 그 모습이 매우 가증스럽다는 느낌은 떨치기 어렵다. 다윗이 그가 세운 우리아 제거 음모에 대해 밧세바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고 해도,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대충 눈치를 챘을 텐데, 밧세바 역시 자신이 맡은 역할이 무엇인지 잘 알았고, 그리고 그 역할을 정말 잘 해낸 것이다. 성경기자는 이 모든 위선적인 행위들에 대해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11:27)고 평가한다.
8. 다윗과 요압이 세운 계략으로 우리아가 장렬히 전사한 후에 다윗은 밧세바를 궁으로 데려와서 아내로 삼는다. 그리고 밧세바는 아이를 낳는다. 이렇게 모든 일이 깔끔하게 끝난 듯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그 일을 아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던 모양이다. 우선 다윗의 심복들은 다윗을 위해 여러 가지 일들을 했기 때문에 자초지종을 다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요압과 그의 심복들이 그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어쩌면 요압이 다윗을 견제하기 위해 그 이야기를 은근하게 흘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그 일은 아무도 모르게 감쪽같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9. 전혀 사실을 모를 것이라 여겼던 나단 선지자가 그 추악한 음모를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다윗을 찾아온다. 처음에는 비유로 이야기를 하면서 다윗을 농락한다. 그런 다음 대놓고 다윗을 질책한다. 나단은 하나님이 하시는 책망과 심판의 말씀을 다윗에게 전한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모든 것을 넘치게 주었는데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차지한 것을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고 하나님 보기에 악을 행한 것”으로 규정한다(12:10).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심판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죽이겠다는 것이다(14절).
10. 이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왜 범행 당사자들은 가만 두고 무고한 아이를 죽이겠다는 것인가? 다윗은 나단이 그에게 전하는 하나님의 긴 질책을 듣고 자신이 범죄 했음을 인정한다.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노라.” 그러자 나단은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은 죽지 않는다”(13절)고 말한다. 그 대신 아이를 죽이겠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윗이 저지른 일로 인해서 여호와의 원수들이 비방할 거리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란다(16절). 그러면 다윗을 죽일 일이지, 도대체 그 아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 아이를 죽이겠다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종록/한일장신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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