밧세바, 다 내 탓이다(2)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41)

 

밧세바, 다 내 탓이다(2)

 

1. 나단이 다윗에게 전하는 하나님의 심판 말씀을 찬찬히 읽어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게 많다.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사무엘하 12:7-8). 이 구절은 어떤 사람이 왕위를 빼앗는 경우, 그 왕이 지닌 모든 것, 재산뿐만 아니라 아내들도 빼앗았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러한 일을 하나님이 주도하셨다고 말하는 게 걸린다. 그게 그냥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냉혹한 현실이라고 하면 그럭저럭 받아들이겠는데,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 즉 사울의 아내들을 다윗에게 주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은 다윗이 우리아를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자기 아내로 삼은 것을 용서할 수 없는 악행으로 규정하시고, 그래서 다윗 집안에 칼부림이 떠나지 않게 하시며,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11-12절)고 말씀하신다. 이 구절도 황당하게만 보인다. 죄를 지은 것은 다윗인데, 왜 하나님은 다윗을 징계하지 않고 다윗의 가족들, 아들들 사이에서 왕위계승을 위한 피비린내 나는 칼부림이 일어나게 하고, 다윗의 아내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서 백주대낮에 공개적으로 성행위를 강요당하는 수모를 겪게 하시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그 여자들이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런 일을 겪어야 하는가? 그냥 그게 현실이라고 하지, 왜 하나님이 내리시는 벌이라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3.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나단이 하는 말을 들은 다윗이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하자, 하나님이 다윗을 용서하시는 대신,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죽이겠다고 하는 장면이다(13-14절). 다윗과 밧세바가 죄를 범한 것이지 그 아이가 죄를 지은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 아이가 죄의 결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가혹한 벌을 받아도 마땅한가? 그러면 처음부터 그 아이를 태어나지 말게 할 일이지 왜 태어나게 한 다음, 그 무구한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고 하는가? 그 아이의 아픔과 죽음을 통해서 다윗과 밧세바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서인가? 그리고 다윗이 보낸 편지를 받고 우리아를 사지로 몰아넣어서 전사케 한 요압은 공범(共犯) 또는 종범(從犯)인데, 왜 벌을 받지 않는가?

 

 

 

                               밧세바 (폴 세잔, 1880년경)

 

4. 성경기자는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15절)고 하는데, 그 아이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 알 수 없지만, 어린 몸으로 견디기 어려운 극심한 고통을 당한 것은 분명하다. 아, 성경 읽는 게 정말 답답하고 힘이 든다. 도대체 그 아이가 왜 그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다윗도 그런 마음이었는지, 그 아이를 위해서 금식하면서 밤새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간구했다. 사람들이 그를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그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고 음식을 먹지도 않았다.

 

5. 아이는 결국 칠 일만에 죽었다. 다윗은 아이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왕궁으로 돌아와 명령하여 음식을 차리게 하고 먹”었다(20절). 신하들이 의아해서 연유를 묻자, 다윗은 아이가 살아있을 때는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고 살려주시기를 원해서 그렇게 금식하면서 기도를 한 것이고, 지금은 이미 죽어서 아무리 해도 다시 살릴 방도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23절)고 말한다. 이 말 속에 다윗의 절절한 심정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윗은 그 아이를 정말 사랑했고,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난 것을 자신이 지은 죄 때문이라고 여기고 마음 아파했을 것이 분명하다.

 

6. 그런데 그 아이가 그렇게 고통스럽게 앓다가 세상을 떠나는 일주일 동안 어머니 밧세바는 무엇을 했을까? 성경기자는 다윗이 아이를 위해서 금식하며 엎드려서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은 상당히 길게 서술하면서도, 밧세바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분명히 밧세바도 다윗과 함께 금식하면서 아이를 위해 땅에 엎드려 기도했을 텐데, 아니 다윗보다 더 간절하게 처절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제발 그 아이를 살려달라고 간구했을 텐데, 성경기자는 그 아이가 병들어 심히 고통스러워 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7일 동안 밧세바가 무엇을 했는지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성경기자, 참 매정하다.

 

7. 하지만 독자들은 그 불쌍한 아이가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그 기간 동안 밧세바가 찢어지는 심경으로 슬퍼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그 실마리를 “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했다(24절)는 구절에서 찾을 수 있다. 신하들이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아이 때문에 금식하며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간구하던 다윗이 밧세바를 위로했다는 것은 밧세바가 다윗보다 더 큰 슬픔을 겪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8. 그 후에 다윗은 밧세바와 동침하고 밧세바는 다시 아들을 출산한다. 그리고 그 아이 이름을 솔로몬이라고 짓는다. 그런데 주님이 그 아이를 사랑하셨단다(24절). 그래서 선지자 나단을 보내서 그 아이에게 “주님의 사랑을 입었다”는 의미를 가진 “여디디야”라는 이름을 지어주게 하셨단다. 나는 이런 상황이 매우 맘에 거슬린다. 도대체 하나님이 솔로몬을 사랑하신 까닭은 무엇인가? 다윗과 밧세바가 낳은 첫째 아이는 중병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 속에서 죽었기 때문에 결과론적으로 하나님이 치셨다고 하고, 둘째 아이는 그런 일 없이 잘 자랐고, 나중에 우여곡절 끝에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기 때문에 결과론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 것일까?

 

9. 그렇다고 해도 나단 선지자가 그런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나단은 첫째 아이가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솔로몬에게는 여디디야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이름도 지어주지 않아서 부를 이름이 없던 첫째 아이는 다윗과 밧세바가 정식 부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지른 범죄로 인해서 잉태되었기 때문에, 다윗과 밧세바가 정식 부부가 된 이후에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비참하게 죽어야 하고, 솔로몬은 다윗과 밧세바가 정식 부부가 된 이후에 잉태되고 태어났기 때문에 주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아도 무방하다는 것인가?

 

10. 아무튼 한 아이의 비극적인 죽음과 한 아이의 복 받은 탄생이 보여주는 극적인 대비만큼 맘이 혼란스럽다. 그리고 맘이 아프다. 비난받아 마땅한 행동을 한 다윗과 밧세바, 그들은 응당 욕을 얻어먹어야 하지만, 그리고 우리아의 죽음과 한 아이의 고통스런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하지만, 그래도 그들이 아파서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를 두고, 아버지 어머니로서 금식하며 엎드려 하나님께 간구하는 모습까지 가증스럽게 볼 필요는 없을 듯하다. 어쨌든 그들은 그 아이의 부모였다.

 

이종록/한일장신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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