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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관의 '노래 신학'

쌀 한 톨의 무게

by 한종호 2015. 1. 21.

홍순관의 노래 신학(4)

쌀 한 톨의 무게
홍순관 글 / 신현정 곡
(2008년 만듦,  ‘춤추는 평화’ 음반수록)

 


 
쌀 한 톨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무게를 잰다
바람과 천둥과 비와 햇살과
외로운 별 빛도 그 안에 스몄네
농부의 새벽도 그 안에 숨었네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들었네
버려진 쌀 한 톨 우주의 무게를
쌀 한 톨의 무게를 재어본다
세상의 노래가 그 안에 울리네

쌀 한 톨의 무게는 생명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평화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농부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세월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우주의 무게
      
이 곡은 처음에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추모음악회에 초청이 되어 쓴 노랫말입니다. <나락 한 알속의 우주> 이야기를 들려주신 분을 추모하는 공연이었으니 마땅히 나올 노랫말입니다.

(출처: Toshiyuki IMAI (http://www.flickr.com/photos/matsuyuki)

 

이 노래가 실린 <춤추는 평화> 음반이 나온 후, 국회의사당 안에서 처음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2008년에 있었던 ‘사형제 폐지국가기념식’이라는 생소한 행사였습니다. 한 나라에서 10년 동안 사형 집행이 없었으면 자동적으로 사형제폐지국가가 되는 국제적 관례가 있다고 합니다. 97년 YS정부 때, 27명의 처형자가 있었고, 그 후로는 단 한 번도 사형집행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MB정부에서 대법원이 내놓은 결과는 사형제 ‘유지’였습니다. 국제단체나 전문가들은 이 의아한 판단에 계속해서 반대를 표명하고 한국정부를 설득하고 있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3년 동안 현장을 나가 노래를 불렀습니다. 생명을 죽일 권리는 어떤 이유에서도 없다는 것이 그 까닭입니다. 게다가 ‘사형제’로 범죄가 없어지기도 어렵거니와, 더욱이 인간의 갱신은 어렵게 됩니다. 무엇보다 죄 없는 이들의 억울한 죽음이 있어서는 아니 되기 때문입니다.

그 날, 국회에 들어가 정치인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남한의 무게는 얼마나 됩니까? 북한의 무게는요? 쌀 한 톨의 무게는 얼마나 됩니까?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의 무게를 알았다면, 이렇게 정치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무게를 헤아려 정치해 주십시오.”

이런 장면은 노래꾼의 보람이기도 합니다. 마이크를 잡고 무대에 섰을 때에는 그만한 자유는 주어집니다. 서툰 노래이지만 그들의 가슴에 남기를 바라며 열심히 불렀습니다.
노래가 끝나고 행사가 끝나면 또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그 분은 살아계셔서 언젠가는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시리라 믿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나무 한 그루나 산이나, 냇물이나 바다나, 미국이나 이라크나, 아프리카나 유럽이나, 남한이나 북한이나, 너나 나나 어차피 하나의 무게입니다. 하나뿐인 이 둥근 지구에 모두 붙어살기 때문입니다.

남극에 얼음이 녹아도 걱정이요, 몽골에 사막이 늘어나도 걱정이요, 아마존에 밀림이 줄어도 걱정인 것은 지구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무게입니다. 그래서 이웃은 내 몸입니다. 내 몸이니 사랑하는 겁니다.
 
풍요가 넘치는 이 시대에 쌀 한 톨의 무게를 재어보기를 빌 뿐입니다.

홍순관/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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