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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

복음주의 4인방에 대한 회고

by 한종호 2016. 2. 21.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22)

 

복음주의 4인방에 대한 회고

- 실망한 자의 말은 바람에 날아가느니라(욥기 6:26) -

 

4인방 모델

 

인상 비평적이고 경솔한 말일까 두렵고 삼가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늘날의 한국교회(복음주의권)의 목회 현실은 4인방(옥한흠, 홍정길, 이동원, 하용조) 모델에 따른 것이라 말하고 싶다.

 

4인방 모델이란 이런 것이다. 그들은 자주 이 시대의 멘토 혹은 영적 교사(스승), 차세대 지도자로 불린다. ―그런 헌사들을 그들이 선호하는지 거부하는 진 분명치 않다― 인정한다. 그들은 현실 목회에서 일정한 성과를 이루었다. 여기저기 국내외의 각종 집회의 연사로 초빙되어 강연을 하고 설교를 했고 또 그것을 책으로 출판한다. ―그들은 많게는 벌써 수십의 저서를 저술했다!― 이 모든 정력적 활동이 시너지 효과를 낸다.

 

프로선수가 트레이드를 위한 스펙을 쌓아가듯, 자신들의 명성과 영향력을 교계에 알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 내용과 수준을 떠나 이러한 스펙들 ―강연과 설교와 집회와 저술(著述)― 의 최종적인 수용자는 결국 신학생들이거나 목회자 및 예비 선교사들이다. 다시 말해 그들의 강연과 설교와 입으로 쓴 책들과 목회적 라이프스타일은 곧 미래의 설교자와 목회자와 선교사들의 ‘이미테이션(imitation)’이 되었다. 하나의 압도적 모델의 탄생, 나는 이걸 ‘4인방 모델’이라 부르고 싶다.

 

누가 그런 예비 목회자들 앞에 강사로 나서 내가 이런 고뇌와 고충 가운데 살며 목회한다는 실존적이고 고백적인 술회를 토로하겠는가? 내게는 이렇게 피치 못할 양심의 고뇌와 정신의 고민이 있다고 부끄러운 간증을 하겠는가? 실상 그런 게 있는 지도 의구심이 든다. 대개는 개인적, 사회적 고뇌와 갈등이 빚어내는 현실 모순을 기독교적 당위의 명분을 지렛대 삼아 단숨에 건너뛰고 도약해 버리게 된다. 일단 도약에 성공하면 날아오르는 건 쉬운 일이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가 문제가 되겠지만, 수준에 상관없이 그들에겐 자기(自己)를 재고해볼 여지나 기회가 없다. 목회를 시작했을 때 이미 자신에게 돌아올지 모를 ‘왜’라는 공격을 막아줄 연역적(신적) 권위를 획득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저 압도적 모델로부터 온 것인지 분별해야 한다.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바는 그들의 출발점이 우리가 놓인 제1의 현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제1의 현실로부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정신으로 이 제1의 현실을 회의하면 제2의 현실이 자연 나타난다. 곧 십자가의 자기부인 내지는 현실 부인을 통한 제2의 현실이다. 이렇게 되면 지상의 싸움은 단순해지고 선명해진다. 죽어서 가는 천국과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 나라가 신학적, 정신적으로 혼동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이 제2의 현실에 회의한다. 그럼으로써 제3의 현실을 창조해 내었다. 죽어서 가는 천국인 듯하나 그것도 아니고 이미 시작된 지상의 천국인 듯하나 그것도 아니다. 참여도 아니고 도피도 아니다. 그것은 모호함 속에 존재한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복음주의의 주소지이다. 이 제3의 현실이 제1, 제2의 현실과 어떤 이반(離反)과 연합의 결과를 도출할지 주목해야한다. 왜 신학적 보수주의가 곧바로 정치적 보수주의와 결합될 수밖에 없는지. 왜 제3의 현실이 결국 제1의 현실에 대한 긍정과 제2의 현실에 대한 적대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지.

 

 

 

비전(vision) 혹은 비전(祕典)

 

꿈과 비전은 사실 지난 이십여 년 간 한국교회 강단의 마르지 않는 원천(原泉)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목회자들 개인들의 꿈과 비전이었는지 한국교회의 단체적 야망이었는지, 누구의 것이었는지는 오늘날까지 모호하다. 하나님의 꿈과 비전은 아니었다는 증거들은 많다. 이유는 분명하다. 성경에서 비전(vision)이란 언제나 묵시록(黙示錄)적 일깨움을 가리켰다. 그것은 이 견딜 수 없이 답답한 제1의 현실을 돌파해 나가는 신적 실체와 직면(直面)하는 영적(본질적) 체험이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마가복음 8:35).

 

그것은 기본적으로 종말론적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와 강단이 매양 설파해온 꿈과 비전은 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본질은 세속적이고 방식은 도덕적인데 겉포장만은 복음적이었다. 명백히 표명되지 않고 모호한 채 강조됨으로써 신비주의적 색채를 띠기까지 했다. 비밀을 품었다는 의미에서 그것을 ‘비전(祕典)’이라 불러야 마땅하리란 생각을 해본다. 솔직히, 설파해온 자신들조차 어떤 현실태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었을까?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들 역시 누군가에게서 배웠다는 의미에서, 그들의 잘못이라 할 순 없다. 사실 미국으로부터 수입된 꿈이고 비전이 아니던가. 그것들은 우리의 현실(혹은 그들 자신들의 현실)로부터 자생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다. “해를 우러러 절하고 두둥실 떠가는 달을 쳐다보며 슬그머니 마음이 동하여 손으로 입맞춤을 띄워 보내기라도”(욥기 31:26-27)하듯. 그것은 마치 땅에서 유리되어 떠도는 뜬구름처럼,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멀리 달아나는 무지개처럼, 반도의 작은 나라 백성이 흠모하여 마음 설레도록 고상하고 세련돼 보였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했다. 그러나 우리들 각자가 굳건히 지향하여 제각기 삶의 현실에서 제도화할만한 결행의 실체가 없었다. 천국뿐 아니라 지상의 싸움도, 어떤 누구와의 싸움인지도 불분명하게 만들었다.

 

그들을 ‘복음주의권’이라 부르는 것은 그 실제 내용과는 상관없이 적절한 표현이다. 그 말이 당위의 권위를 나타내는 우월한(안전한) 명칭일 것임엔 분명하다. 그러나 언어가 일정한 시간이 흘러 자연스런 사회성을 획득하듯이 그 말이 그들을 제한적으로 규정짓게 되었다. 설교자 자신과 말씀공동체의 현주소를 실존적이고 고백적인 피치 못할 양심의 고민과 정신의 고뇌가 실재하는 현실로부터 전출시켜 버린 것이다. 그래서, 달리 지향할 각자의 현실적 미래를 갖지 못함으로써, 공동체는 지도자를 정점으로 하는 일사불란한 목회적 전체주의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지난 이십여 년 교회가 이유도 모른 채 리더십에 몰두해온 이유다. 성서적 비전(vision)이 집단적 비전(祕典)으로 변태(變態)하는 영리(靈理)가 거기 있음이다.

 

눈치 보기’ 혹은 ‘표절하기’로서의 목회

 

현직 목사의 99%가 남의 설교를 표절한다는 뉴스가 있었다. 물론 남이 써준 원고로 설교를 연기하는 유명배우들도 있다. 주목해야할 것은 이 모든 부패의 배경에는 설교표절 이전에 광범위한 목회의 표절사태가 있다는 점이다. 표절이란 모범답안을 상정한다. ‘이 정도면 된다’, ‘이런 정도면 내놓을 만하다’는…. 그것은 ‘고인 물은 반드시 썩는다’는 말처럼 목사들의 정신의 물줄기가 시대와 더불어 흐르는 게 아니라 4대강 사업의 보(洑)처럼 고여 있음을 말해준다. 그 보의 이름이 흔히 쉽게 말하는 ‘복음주의’라는 애매하고 광범위한 범주(範疇)이다. 그것은 첫째 올바르고 달리 말하면 안전한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신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보수주의’라고 해야 할 것이다.

 

목회표절의 사태는 이 태생의 제한으로부터 나왔다. 여기서 진정한 의미의 신학적 도약이 발생한다. 제1의 현실로부터 제3의 현실로 도약해버린 내용 없는 신앙의 공허는 율법주의로 무장된 도덕을 내세운다. 이 화학적 결합을 통해 자신들이 올바른 윤리와 신학적 집합에 속해있다는 독점적인 영적 상태가 확립된다. 이로써 자신들의 신학적 정치적 보수주의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열린 태도는 원천적으로 차단당하게 되었다. 세속적 욕망이 지향해온 꿈과 비전이 이제는 그것 외에는 허용치 않는 신학적 검열의 테스트가 된 것. 누구든 이 시험 앞에서 나도 거기 속해있노라 대답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목회는 눈치 보기, 혹은 표절하기로서의 고인 물이 되어간다. 그 물에서 하나의 압도적이고 모범적인 목회가 탄생하는 것이다.

 

모두에게 칭찬받는

 

제약의 원천은 정치적이고 신학적인 보수주의다. 이것을 해도 안 되고 저것을 용납해도 안 되는 다양한 제약 속에서 독창적 활로가 모색되었다. 곧 아무것에도 책을 잡히지 않으면서 모두에게 칭찬받는 방식의 실용적 처신이 창조된 것이다. 때문에 강단의 설교든 크리스천의 간증이든 주된 메뉴는 ―정치적으로 신학적으로 보수주의적 테두리 안에서― ‘내가 얼마나 목회를 모범적으로 하고 있는가’, ‘우리 교회가 얼마나 아름다운 사역들을 하고 있는가’ 하는 자기광고가 된다. 이것이 그들의 강연과 설교와 집회와 저술(著述) 곧 스펙의 내용이다. 아무것에도 책 잡히지 않으면서 모두에게 칭찬받는 이야기! 그것이 안전하게 청중들을 단도리 하고 끌어 모으는 부흥의 조건이자 관건이 된다.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의(나의) 모범적인 성공사례를 칭찬하시겠는가? 혹은 자신의 청렴하고 저렴한 사례비를, 혹은 설교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토씨하나 틀리지 않게 암기하는 능력을, 혹은 자신의 성도들을 배려하고 돌보는 헌신의 사연들을, 혹은 자신들이 벌이는 긍휼의 사업들을, 혹은 헌금 없는 주일을, 혹은 선교의 사역들을, 거기서 더 나가면 누구처럼 자신의 가족과 자식들 자랑이 곁들여지거나, 누구처럼 자신의 문화적 기호와 취미가 곁들여 지거나, 누구처럼 자신의 정치적 견해나 십의 이조를 드리는 충성이 곁들여지며, 때론 비장하고 때론 울먹이며 때론 청중을 질타하며 1부, 2부, 3부, 혹은 6부까지 똑같은 제스처와 톤과 포오즈와 인터네이션으로 재탕, 삼탕에 여기 저기 서로 바꾸어 교류하며 사탕, 오탕을 하는데, 그들은 이런 걸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이 모든 것을 제스처와 포오즈라고 할 수 없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나도 누구 못지않게 남을 자주 칭찬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내가 환기하고자하는 것은 그런 정도 착하고 덕스러운 관용정신이 아니다. 압도적인 하나의 풍조, 모두에게 칭찬받고 아무 것에도 책을 잡히지 않는 태도란 결국 이 정치적이고 신학적인 보수주의의 현실 풍토 속에서 어떤 결과를 낳을까? 개개의 것에는 혹 칭찬할 것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뭉뚱그려 전체적인 분위기(영성)를 이룰 때는 그 자체가 대체된 기독교적 메시지가 되고 만다. 그것이 곧 제1의 현실로부터 제2의 현실이 아닌 제3의 현실로 피치 못하고 불가피하게 도약해 버리는 것. 거기서 강조되는 것은 결국 극소수의 성공한 설교자들, 자기광고에 빼어난 말쟁이들, 그들의 자기자랑들, 주님께 충성한다는 것은 이렇게 각광받고 받을 만한 리더가 되는 훌륭하고 숭고하고 세련되고 멋진 것이다,라는. ‘우리를 따르라. 본받으라. 너희도 우리처럼 되리라’ 하는. 이것이 모두에게 칭찬받고 아무 것에도 책 잡히지 않으면서 성공적인 목회의 모델이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공허한….

 

4인방 목회의 회고

 

정작 4인방 모델의 원조 격인 분들께는 무안하고 민망한 말들일지 모르겠다. 그분들은 결코 여기 해당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동원되는 레토릭이 주님을 향한 충성이건 교회개혁이건 선교동원이건 신앙부흥이건 상관없이, 4인방의 아류가 이제는 온 강단에 흐르고 넘친다. 과문한 견해로써 본의는 아니었을지라도 이러한 목회문화를 창조해낸 선구자들이 이른바 복음주의 4인방이라 불리는 분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누군가 그들의 영향력에 관한 보다 치밀한 학술적 분석을 해주기를 바란다. 4인방 이전에 그들에 필적하는 설교자들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속칭 87년 체제로 기술되는 이 새로운 문화의 선도자들은 이전 세대와는 차별점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들은 유난히 교계의 지도자로 불렸다. 즉 선전이 그들의 사역의 중요한 요소였다. 일례로 그들에게서는 본문으로 택한 성경 텍스트의 해설에 들이는 깊이 있는 탐구 같은 것이 목회와 설교의 핵심을 이루지 않았다. 나는 이 점을 소위 스토리텔링 설교의 가장 근원적이고 파행적인 문제라고 본다. 방식 자체가 이미 청중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라는 의미에서다. 그들은 자신들의 논리에 따라 필요한 만큼 성경을 해석하고 이미 설정된 자기 메시지에 그 말씀을 대입해 나가는 방식으로 설교했다. 말씀이 중요치 않다고 가르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결과에 있어선 그렇게 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한결같이 탁월한 설교자라 불릴 수 있었던 이유는 선전 ―반드시 나쁜 의미만은 아니다― 의 효과였다.

 

그것은 청중이 말씀을 듣고 그 안에 담긴 내용을 세심히 따져보게 하는 게 아니었다. 말씀을 탐구하다 현실을 탐구하게 되는 실천력을 배양시키지 못했다. 그 대신, 당신은 이미 대단히 훌륭하고 굉장한 사람이니 더 이상 실존의 고뇌 따위를 잊어버리라 가르쳤다. 곧 우리가 제시하는 복음적이거나 복음을 빛내는 사업에 동참하라고 대중을 독려했다. 도약은 모든 성도들에게서 일어났다. 문제는 말씀이 살아계신 사건 자체로, 그 사람에게 역사하는 영의 자율의 개별적 사건으로 남겨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것은 언제나 이미 규정되고 제시된 모범적 성도의 모델이나 대규모 교회건축 같은 교회적 사업의 동원으로 직행했다. 일치단결로 귀결되는 하나의 사업 ―그 사업들에도 공통분모가 있다― 이것이 가장 지배적이면서도 배타적인 복음주의적 기독교가 형성된 밑거름이다.

 

성공적이고 모범적이었지만 동시에 여러 측면에서 이율배반의 결과들도 나타났다. 그들이 주장했던 차별성이란 선전에 불과할 뿐 동일한 욕망에 다르지 않음이 판명되었다. 말하자면 대형교회를 비판하면서 결국 대형교회가 되는 식이었다. 모든 것이 이러하다가는 저러하게 되고 저러하다가는 이렇게 되고 말았다. 개혁을 설파하면서도 굳이 개혁적 행동엔 반대하거나, 부흥을 재고하는 듯한 양식 있는 비판을 하면서도 굳이 자신들의 부흥에는 재고가 없었다. 세속적 현실과 영적 이상의 말들이 흔히 섞여 있었다. 대중들은 영과 세속 사이 혼동 가운데서 자연 이중적이고 위선적으로 변해갔다. 오히려 위선적인 사람일수록 자신의 세련됨과 윤리성에 대한 과장된 신념을 가지기 쉬웠다. 도약을 통해 획득된 제3의 현실과 꽉 막힌 신학적 도그마의 우물에 이중으로 갇힌 채.

 

스스로 너무 많은 꾀를 내었거나, 바꾸고자하는 현실을 너무 얕잡아봤다고 할까? 하지만 이 모든 진실의 애매모호함은 무대 위에서의 탁월한 설교, 영적 권위, 윤리적 포오즈가 발산하는 영광과 선망의 존경에 가려져 버렸다. 4인방에 국한된 이야기로만 생각진 마시라. 규모의 차이를 막론하고 이 밖에는 상상하지 못하는 한 가지 형태로 획일화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함이다. 곧 예배와 강연의 중심이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인 경우가 실종되었다는 점이다. 이전 세대에게는 없었던 선전의 문화적 세련됨 때문에 이러한 중심의 교묘한 변화는 지금도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다.

 

획일화된 교회의 모습이 신학적으로 사유하는 젊은 크리스천들을 불편하게 만들 긴 했다. 그러나 이 애매모호함을 분석하고 해부하려는 자들은 그들의 표면적으로 훌륭하고 좋은 것들을 굳이 비판해야하는 난처함에 직면해야 한다. 결과는 흔히 부정적이고 비틀렸다는 비난으로 돌아온다. 부족하고 부도덕한 것을 비판하는 것도 위험한데 하물며 훌륭하고 존경받는 것을 비판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그리하여 성찰의 소리는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나고 대부분 후학들과 후배들에게 그들은 교계의 진정한 지도자로 존경과 갈채를 받아왔다. 그러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하나의 확고부동하고 독점적인 목회권력을 구축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권력이 그 자체로 폭력적이고 배타적인 속성을 가진다는 것은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영광이 떠나다

 

지난 이십여 년 간 이러한 4인방 모델의 영향력은 그들 목회 자체의 부흥과 수많은 집회와 매체와 책과 설교의 유포를 통해 전체 한국교회의 거스를 수 없는 한 경향으로 확장되어왔다. 그들 이후 나타난 이른바 차세대 지도자들이란 거의 그들의 뒤를 잇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서 이미 과거의 영광이 떠났음을 보고 있다. 나는 이 모든 게 4인방의 잘못이라 주장하거나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어쩌면 ‘복음주의 4인방’이라는 말의 탄생 자체가 ―그때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겠지만― 이러한 많은 결과를 노정하고 있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나도 그분들을 존경하고 일정부분 스승으로 섬기고 있다.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의 말처럼 내가 도대체 어디서 나왔건 대 그들과 그들의 유산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나 또한 제도가 돼버린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문제일 정도다. 그러나 정말 한국교회에 비통한 반성과 성찰의 해법이 요청된다면, 이제는 4인방(식 목회 부흥)의 영향력에 대한 점검이 반드시 수행되어야 하리라 본다.

 

4인방은 이제 역사의 후면으로 멀어져 가고 있다. 그러나 4인방이 남긴 자취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일어나려면 얼마나 요원한가. 그들의 뒤를 잇는 차세대 지도자들이라는 미성숙한 리더들에게서 ‘이가봇’(영광이 떠남, 사무엘하 4:21)을 보게 되는 소회이다. 그들이 그러할진대 다시 그들의 다음에는 어찌될 것인가? 흡사 루쉰(魯迅, 1881~1936)이 젊은이들이 늙은이들 보다 오히려 반동적이라고 지적했던 것처럼 나는 교회 안 청년들에게서 이러한 한심스러움을 느끼곤 한다. 지난 이십여 년 간 유독 제자훈련과 리더십을 훈육해온 결과가 이런 것이라니 어찌 한심스럽지 않겠는가.

 

최근 이동원 목사님의 한기총 해체의 변이 실린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그보다 먼저 홍정길 목사님의 자신의 목회는 실패했다는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그 전에는 돌아가신 옥한흠 목사님이 우리가 한국교회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회개의 인터뷰도 읽었었다. 민족복음화만 달성하면 한국사회가 나아지리라고 믿었고, 민주화 투쟁의 대열도 외면하리만큼 거기에 매진해 왔으나, 이제는 세속적 성공주의와 사회적 무책임에 대한 통렬한 회의가 든다는 성찰의 말씀들이었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원망의 마음도 없지 않았다. 현역시절 예언자적 메시지가 절실할 땐 침묵하고 있다가 이제 은퇴하니 선지자의 목소리도 내시고 싶으신가 싶기도 하다.

 

고백컨대 이글은 내가 예전에 썼던 ‘4인방을 탄핵한다’는 글을 고친 것이다. 가소롭고 가당찮은 말이겠으나 ‘탄핵’이란 다른 뜻은 아니다. 4인방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기왕에 반성과 성찰을 하시려면 남은 날 동안 보다 분명하고 명백한 실천을 제시해 주십사하는 바람이지만 그리 큰 기대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본인들이 분명 실패라고 하셨건만 행여 ‘과연 겸손하신 홍정길 목사님이십니다!’ 하면서 여전히 4인방의 후광(後光)에 몽롱하게 도취해있을 신학생들과 전도사들이 있을까 걱정되는 까닭이다. 때마침 미국에선 74살의 샌더스가 관성에 의해 밀려나온 기성 정치인들을 격파하고 있다니. 탄핵해야 할 것은 나로다, 내 실망이로다.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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