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55)
난도질 당한 말씀
“왕(王)이 여후디를 보내어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하매 여후디가 서기관(書記官) 엘리사마의 방(房)에서 가져다가 왕(王)과 왕(王)의 곁에 선 모든 방백(方伯)의 귀에 낭독(朗讀)하니 때는 구월(九月)이라 왕(王)이 겨울 궁전(宮殿)에 앉았고 그 앞에는 불 피운 화로(火爐)가 있더라 여후디가 삼편(三篇) 사편(四篇)을 낭독(朗讀)하면 왕(王)이 소도(小刀)로 그것을 연(連)하여 베어 화로(火爐) 불에 던져서 온 두루마리를 태웠더라 왕(王)과 그 신하(臣下)들이 이 모든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거나 그 옷을 찢지 아니하였고 엘라단과 들라야와 그마랴가 왕(王)께 두루마리를 사르지 말기를 간구(懇求)하여도 왕(王)이 듣지 아니하였으며 왕(王)이 왕(王)의 아들 여라므엘과 아스리엘의 아들 스라야와 압디엘의 아들 셀레먀를 명(命)하여 서기관(書記官) 바룩과 선지자(先知者) 예레미야를 잡으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그들을 숨기셨더라”(예레미야 36:21-26).
어느 날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그동안 주님이 하신 말씀을 모두 두루마리에 기록하라 하신다. 혹시라도 기록된 말씀을 듣고 깨달아 나쁜 길에서 돌이킨다면 주님께서도 백성들에게 내리시기로 한 재앙을 거두시려는 일말의 기대 때문이었다. 한없이 약한 주님!
예레미야는 자신이 들은 주님의 말씀을 바룩에게 들려주었고, 바룩은 예레미야가 들려주는 말씀을 받아 적었다. 바룩을 통해 주님의 말씀을 받아 적게 한 데는 이유가 있었는데, 당시 예레미야는 감금이 되어 성전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두루마리에 말씀을 적어 기록된 말씀을 백성들에게 선포하기 위함이었다. 말씀은 외침을 통해서만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기록을 통해서도 전해진다.
예레미야는 기록된 말씀을 금식일에 성전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읽을 것을 명한다. 회개를 할 때나 큰 재난이 닥쳤을 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이거나 주님의 뜻을 간절한 마음으로 찾고 기다릴 때 금식을 했다. 말씀은 아무 때나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되었을 때 선포되는 것이 마땅할 터이다.
마침내 금식이 선포되었고, 바룩은 성전에 모인 이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낭독한다. 바룩이 읽는 말씀을 들은 미가야가 그 사실을 왕궁에 보고를 한다. 왕궁의 관리들은 여후디를 바룩에게 보내 백성들에게 읽어준 두루마리를 가지고 오게 한다. 그들은 두루마리에 기록된 말씀을 듣고는 깜짝 놀란다.
두루마리에 주님의 말씀을 적게 된 과정을 알게 된 관리들은 바룩과 예레미야를 보호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르는 곳에 숨으라 하고는, 왕을 찾아가 두루마리에 관하여 보고를 한다.
이야기를 들은 여호야김 왕은 그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했고, 주님의 말씀은 다시 한 번 왕 앞에서 낭독된다. 주님의 말씀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다양한 상황 속에서 여러 사람에게 들려진다. 문제는 누가 어떤 마음으로 말씀을 듣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씀을 듣는 왕의 태도가 뜻밖이다. 말씀이 서너 쪽씩 낭독이 될 때마다 왕은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소도(小刀)로 베어 화롯불에 태웠다(23절).
왕이 두루마리를 벤 소도(小刀)는 서기관들이 글을 쓸 때 쓰는 갈대 촉을 날카롭게 하거나 파피루스 판(板)을 자를 때 쓰는 작은 칼을 가리킨다. 서기관들이 두루마리에 글을 쓸 때 쓰는 도구를 왕은 예언을 적어 놓은 두루마리를 잘라 망가뜨리는데 쓴 셈이 되었다.(박동현) 말씀을 기록하는데 사용했던 칼을 말씀을 난도질하는데 썼던 것이다.
왕이 주님의 말씀에 대해 갖는 태도가 그러하니 주변 신하들도 다를 것이 없었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주님의 말씀을 난도질하여 불에 태우는 모습을 보면서도, 전혀 두려움이 없었다.(24절)
두루마리를 찢어 불태우는 왕의 행위를 만류한 신하가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여호야김 왕은 듣지 않았고(25절), 오히려 예레미야와 바룩을 잡을 것을 명령한다.(26절) 두루마리를 모두 불태웠다 할지라도 말씀을 전할 예언자가 남아 있으니 아예 말씀의 근원까지를 제거하려고 했던 것이다.
말씀을 들으며 찢어야 했던 것은 말씀을 듣는 이의 옷과 마음이었다. 그런데 여호야김 왕은 주님의 말씀을 찢었다. 그것도 주님의 말씀을 분명히 기록하기 위해 사용하던 칼로 말씀을 난도질했다.
말씀을 들으며 불태워야 할 것은 말씀을 듣는 이의 죄악이었다. 그런데 여호야김 왕은 주님의 말씀을 불태웠다.
두렵다. 주님의 말씀 앞에서 가질 수 있는 인간의 거만함이 어디까지인지, 왕의 소도(小刀)에 베인 듯 섬뜩하게 다가온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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