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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영의 '구약성경 속 여성 돋보기'

여러 민족의 어머니, 사라

by 한종호 2017. 2. 27.

구약성경 속 여성돋보기(23)


여러 민족의 어머니, 사라


창세기는 태곳적 역사(1-11장)와 아버지 족장들의 이야기다(12-50장). 이스라엘이 하나의 국가로 탄생하기까지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을 위한 약속의 담지자가 된다. 유프라테스 강이 흐르는 수메르의 수도 우르에서 살던 아브라함, 그에게 하나님은 땅과 수많은 자손을 약속하시면서 불러내셨다(창세기 12:1-3; 15:5; 22:17). 땅과 후손의 약속은 아브라함에게서 멈추지 않고 그의 아들 이삭(26:3-5), 손자 야곱(28:13-14; 35:11-12)에게로 이어져 반복되고 확증되었다. 고대 사회의 장자 권리를 타파하고 작은 자를 선택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이 작동하지만, 창세기는 혈통의 부계 권리를 보강한다.


그런데 생육하고 번성하여 이스라엘 나라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끼어들기 시작하는데, 그 첫 번째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불임이다(11:30; 16:1). 약속의 성취를 맛보기까지 아내 혹은 어머니의 상태가 묘사되지만, 여성들의 등장이 여성의 권리 옹호는 아니다. 여성들은 결정적 순간에 이야기 경계 밖으로, 관심 밖으로 사라진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로 이어지는 약속에서 어머니들은 그저 아버지의 주도권 아래 종속된 존재다.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는 순간에(12:1-3),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는 중대한 국면에서 아내들과 어머니들은 없다.


사라졌던 어머니들은 자기 아들을 위해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등장한다. 이것은 고대의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들의 신분 보장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아들 출산과 관련되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역설적으로 약속의 계보를 이어가야 할 창세기의 어머니들은 모두 불임의 문제를 안고 있지 않은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이삭의 아내 리브가(25:21), 야곱의 아내 라헬에 이르기까지(30:1-21) 아들을 원했지만 쉽지 않았다. 때문에 이들은 다른 여자를 통해서라도 아들을 얻는 방식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어머니의 이미지를 고착시켰다. 여성들도 한 사회의 유익을 도모하는 사회적인 실체이지만, 창세기의 어머니들 묘사는 가부장적인 사회의 측면들과 일치했다.


또한 이스라엘과 이웃하는 나라들은 복잡한 아브라함 가족관계의 서술 속에서 드러난다. 이스마엘, 에돔, 암몬, 모압, 미디안, 동쪽의 아랍 족이 동일한 부계로 통일되지만(26:1-6), 이스라엘만 하나님 약속의 계승자였다. 일부다처제가 용인된 사회의 가족은 아내들 사이의 다툼을 가져왔고, 서로의 이익 충돌은 분열의 원인이었다.


때때로 남성들의 갈등과 지배력 문제들은 여성들을 통해서 결정되기도 했지만, 가족 갈등의 중심에 여성이 자리 잡게 된다. 이스마엘과 하갈은 사라 때문에 쫓겨나야했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어머니 조상들의 적극적인 행동은 자식 편애로 나타나곤 했다. 이것이 가족 관계의 갈등을 불러왔지만, 아버지들도 자유롭지 않다. 에서를 더 사랑했던 이삭, 요셉을 유달리 사랑했던 야곱의 편애는 형제들 간의 불화와 갈등을 만들었다. 여러 갈등이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언약 위기로 이어져도 하나님의 극적인 개입이 구속 역사의 원동력이었지만, 가족의 갈등은 불가피했다.



약속의 위기를 가져오는 이야기들 중에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이 부부가 처음 등장할 때의 이름은 아브람과 사래다(12장). 그러나 17장에 이르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재확인시키면서 그들의 이름은 아브라함과 사라로 바뀐다. 이로서 그들은 민족의 아버지(17:5), 민족의 어머니(17:15-16)로 부름 받는다. 하나님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은 위기에 처해지는데, 그 첫 위기는 사라가 두 번에 걸쳐 이방 나라 왕의 아내로 취해질 때다. 이들이 이집트에 머물게 되었을 때, 아브라함은 현지인들이 자기 아내를 탐내고 자기를 죽일까 염려하여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다(12장). 두 번째는 그랄 땅의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원할 때였다(20장).


이렇게 여자 조상인 사라의 위기는 하나님의 약속의 위기와 궤를 같이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룰 것과 땅을 약속하셨을 때, 어떻게 아내 사라 없이 자손을 얻을 수 있는가. 그런데 사라는 여성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남성들에 의해 주고받는 존재로 취급당한다. 아브라함은 이집트에서 사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나의 누이라고 하시오… 내가 당신 덕분에 대접을 잘 받고, 또 당신 덕분에 이 목숨도 부지할 수 있을 거요.(12:13, 새번역)


사라가 이집트 왕에게 보내지는 과정에서 사라의 반응은 생략되었다. 사라는 아무 말이 없다. 사라는 남자들의 관계에서 하나의 대상일 뿐이다. 사라는 자기 몸의 결정권을 갖지 못했고, 사라의 몸은 남자들끼리의 문제로 넘겨졌다. 이미 하나님의 약속까지 받은 자가(12:2-3) 자기 목숨을 구하겠다고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보내는 것이 가능한가. 구차해 보인다. 아내를 보호하려는 일에는 관심이 없지 않은가.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의 통로가 될 것은 물론이고 땅을 소유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자기 아내를 다른 이방 남자에게 넘겨주는 것을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것일까.


그런데 아브라함 때문에 발생한 위기 상황을 하나님이 해결하신다. 이 사건 이후에도 아비멜렉과 사라의 이야기 속에서 본문은 둘 사이에 어떤 성관계도 없었다는 것을 애써 밝힌다(20:4). 하나님이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 사라가 남편 있는 여자라는 것을 알리시고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셨다(20:4-7).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은 아비멜렉의 말과 행동으로 사라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쪽으로 진행되었다(20:16).


다행히 하나님의 개입으로 이집트(12장)와 그랄 땅(20장)의 이방 왕은 사라가 아브라함의 아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녀를 남편에게 되돌려 보냈다. 물론 두 이방의 왕들은 돌려보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다. 아브라함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인 것이 원인이지만, 결과적으로 이방 왕에게 재앙을 가져왔거나 죽음과 민족말살의 위협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하여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화해의 선물로 양과 소떼, 남종과 여종, 그리고 땅을 주었다. 그는 아브라함의 은밀한 행동과 달리 공개적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아내를 도구삼아 안전을 확보하려고 했던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야기는 후대의 신앙인들에게 가부장적인 문화 안에서 생겨난 문제들에 대한 비판적 수용과 태도를 갖게 했다. 베드로 사도는 사라의 순종을 언급하면서 동시에 하나님 언약의 담지자로서 남편과 아내의 동등함의 모범으로 사라 부부를 제시한다(베드로전서 3:6-7).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 사라에게 사려 깊은 배려를 하지 않은 것은 비판받지만, 사라는 칭찬을 받는다. 이 칭찬은 베드로가 살았던 그리스-로마 문화의 강력한 가부장적인 질서에 익숙한 남편들에게 자기 아내를 하나님 일의 동등한 협력자로서 대우하도록 도전하는 가르침이었을 것이다.


남편 된 이 여러분, 이와 같이 여러분도 아내가 여성으로서 자기보다 연약한 그릇임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은 사람으로 알고 존중하십시오. 그래야 여러분의 기도가 막히지 않을 것입니다(베드로전서 3:7)


이렇게 베드로 사도는 사라를 자기 시대로 끌어내어 신앙 공동체의 남편들에게 아내는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은 사람”으로 동등하게 존중하도록 요청했다. 남편 아브라함 때문에 위태로운 순간을 넘겼던 사라가 남편과 동등하게 “여러 민족의 어머니”(창세기 17:16)로서 부름 받은 사실은 후대 신앙인들의 말과 글로 재현될 때에야 묻히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신앙의 독자는 구약성경에 서술된 고대 이스라엘과 구속 역사에 묻어난 문화적인 간격들과 마주해야 한다. 이때 현대 독자의 눈에 납득되지 않는 불편함이 여럿 있기 마련이다. 때문에 때로는 ‘불편한 지적질’을 하게 되는데, 불편함을 슬쩍 넘기지 않고 제기하는 것은 사소한 트집이 아니다. 거기서 질문이 생기고, 어쩌면 정곡을 찌르는 답을 얻을 수도 있을 테니까.


김순영/구약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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