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속 여성돋보기(25)
리스바, 주검을 지키며
가슴이 미어졌을 그대
진실은 왜 희생자들을 통해서 밝혀지는 것일까? 왜 가난한 자들, 박탈당한 자들, 경계에 선 자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통해서인가? 우리는 누구의 말을 믿어야할까? 성경은 이따금씩 이상하거나 불편하거나 쓰리거나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리스바의 이야기를(사무엘하 21:1-14) 읽노라면 마음 한 구석이 아리다.
리스바 이야기는 ‘사무엘서 부록’이라고 일컫는 사무엘하21-24장에 포함된 일화다. 다윗이 죽은 사울의 후손들을 기브온 사람들에게 넘겨 희생물 삼은 사건의 절정과 결말에서 리스바가 등장한다. 다윗은 왜 선왕 사울의 아들들이 죽도록 내버려 두었을까? 이 사건은 다윗 시대 3년 동안의 기근에서 시작된다. 이때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기근의 이유를 묻자 하나님은 사울과 피 흘린 그의 집, 그리고 사울이 기브온 사람을 죽인 것 때문이라고 알리셨다(21:1). 그러니까 흉년으로 인한 굶주림의 이유가 사울의 살인죄와 연결되었다는 계시였다. 그런데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있다. 왜 사울이 범한 죄 때문에 다윗 시대에 응징을 받고 고통당해야 하는가? 더욱이 사울은 이미 하나님 앞에서 실패한 왕으로서 비극적인 죽음까지 맞이하지 않았던가. 그러면 사울은 생존 당시 왜 기브온 사람들을 죽였는가? 문제는 사울의 일생을 다룬 기록에서 기브온과의 사건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떻든 다윗 혼자만 아는 이 일 때문에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을 호출한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고 아모리 족속의 생존자들이다(2절a). 일찍이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기브온 주민들과 협정을 맺고 그들을 살려주기로 약속했었다(여호수아 9:3-15). 그러나 이스라엘과 유다를 향한 사울의 열정 때문에 기브온 사람들이 죽게 된 것이 보고된다(2절b).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에게 “너희를 위해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3절) 물었다. 기브온 사람들은 신중하게 대답한다. 그들은 사울과 그 집안과의 관계에서 돈의 배상이나 죽음으로 보복할 권한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다윗은 “너희가 말하는 대로 시행하리라”는 적극적인 응대를 한다(4절). 다윗이 먼저 나서서 자신의 왕권으로 일을 바로잡겠다는 뜻이다.
그러자 기브온 사람들은 자기들을 학살하고 이스라엘 영토에서 쫓아낸 사람의 후손 일곱 사람을 내달라고 요청한다. 그들이 일곱 명의 후손들을 “목메어 달겠나이다”라고 하자, 다윗은 내주겠다는 즉답을 준다(5-7절). “목메어 달겠다”(개역개정)로 번역된 히브리말은 구약에서 단 한 번 사용된 표현이다. 사전적인 의미는 “사지를 절단하여 벌여놓는다” 또는 불확실하지만 “태양 아래 십자가형”을 뜻하는 매우 끔찍한 표현이다. 이때 다윗은 단 한순간도 고민하지 않았다. 다윗은 정적의 후손을 제거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것일까? 하나님의 권위에 자신을 복종시키는 다윗이지만(22:1-23:7; 24:11-25), 왕권안정을 위한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고, 폭력적인 보복을 묵인한 것처럼 보인다.
이때 다윗은 요나단과의 약속을 기억하고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살려두었다(7절). 다윗은 사울의 첩으로 알려진(11절) 아야의 딸 리스바가 낳은 두 아들과 사울의 딸 메랍에게서 난 다섯 사람을 붙잡아 기브온 사람에게 넘긴다(8절). 다윗의 허락으로 7명의 사울 자손을 넘겨받은 기브온 사람들은 “여호와 앞에” 있는 산에서 끔찍한 형벌로 그들을 죽였다. 때는 첫 보리를 베는 날이었다(9절). 이 끔찍한 일이 여호와 앞에서 시행되었으니, 이들 모두 죽임을 마치 제의적인 경건의 표시나 애국심의 발현처럼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거기다 이 일이 시행된 때가 절묘하다. 마치 사울의 핏 값에 대한 속죄가 기근의 끝을 가져올 것 같은 기대를 암시하지 않는가.
그런데 기브아 사람에 의해 죽은 7명의 사울의 후손들은 장례절차도 없이 매장되지도 않은 채 방치되었던가 보다. 리스바가 두 아들과 사울의 다섯 명의 외손자들 주검이 있는 곳에 와서 굵은 베를 바위에 펴놓고 낮에는 새가 앉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들짐승이 범하지 못하도록 주검을 지켰다. 이 일은 곡식을 베기 시작한 때부터 비 내릴 때까지 계속되었다(10절). 이 비가 늦은 봄이나 여름비인지 가을비 인지 알 수 없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둔다면, 리스바의 고된 일은 한 달 이상은 말할 것도 없고 6개월을 밤낮으로 주검을 지키며 보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리스바는 이 고행의 시간을 홀로 어떻게 견뎠을까.
폭력적인 행위와 죽음, 혼돈과 파괴의 중심에 섰던 리스바, 그녀 이름의 뜻은 “빨갛게 타오르는 돌”이라는 뜻이다. 그녀는 한때 사울 왕실에서 왕의 총애를 받으며 살았을 첩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어디에도 왕실의 안락함을 상상할 수 없다. 지금은 비참하게 죽임을 당한 아들의 주검이 훼손되지 않도록 밤낮으로 고행을 하고 있다. 그녀는 낮의 새들을 쫓고 밤에는 홀로 타오르는 횃불이 되어 밤의 짐승들과 외롭게 싸우고 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녀의 외로운 침묵과 기브온 사람만을 만족시킨 다윗의 결정이 대조된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드디어 희생자들을 위한 리스바의 고행이 다윗에게 알려졌다(11절). 복수의 희생자요, 죽은 자들의 보호자였던 리스바의 행위가 다윗의 귀에 닿은 것이다. 비로소 다윗은 뭔가 잘못된 것을 깨달았던 것일까. 그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서 요나단의 뼈와 블레셋 사람들에게 죽어 벧산 거리에 매달린 사울의 뼈를 비밀리에 수습하여 가져왔다(12절). 그리고서 다윗은 죽은 7명의 사울 후손들과 함께 베냐민 땅 셀라 지역에 있는 사울 아버지의 묘지에 매장한다. 이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셨다(13-14절)라는 해설로 사건은 종결된다.
리스바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그녀의 버려진 두 아들과 사울의 외손자들의 주검을 보호하려는 투쟁은 다윗을 향한 정치적 행위였던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의 씨름이었을까. 모호하다.
언뜻 보면 사울 집안을 향한 기브온 족의 해결되지 않은 분노와 다윗의 허락아래 사울 자손을 죽인 후 비가 내린 것처럼 보인다. 마치 사울의 상속자들을 제거한 다윗의 직접적인 책임을 면책하려는 의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아니다. 사울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무고하게 보복의 희생물로 죽어 장례도 치르지 못한 아들과 가족을 위한 어미 리스바의 고독한 싸움은 하늘과 땅을 향한 부르짖음이었으리라. 먼 옛날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 하나님은 가인에게 “네 아우의 핏 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창세기 4:11) 말씀하셨다. 리스바의 싸움은 참 인간을 대변하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마치 그녀의 고독한 투쟁에 응답하듯 하늘로부터 비가 내렸다.
하나님은 보복과 증오 섞인 사람들의 행위에 응답하신 것이 아니라 자식의 희생을 지키며 밤낮으로 고행을 자처했던 힘없고 약한 어머니 리스바에게 응답하셨다. 끝내 희생자 편에 함께 계셨던 하나님이었다.
리스바의 고독한 투쟁에서, 차갑고 얼어붙은 겨울들판을 지나 봄의 사순절을 통과하는 지금, 십자가의 희생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의 몸이 무덤에 안치되는 순간까지 마음 조리며 지켜봤을 예수님의 어머니와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이 겹쳐진다. 지나친 확대일까. 아니, 역사의 고비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로운 행위와 결정을 허용하시고 지켜보시며 당신 뜻이 이루어지도록 개입하셨다. 그리고 미어지는 가슴을 움켜쥐고 아들들의 주검을 지켰을 리스바에게서 세월호 희생자들 중 미수습된 9명의 시신을 3년째 기다리며, 침몰된 배 인양을 지켜보았던 가족들의 고행까지 겹쳐진다. 기꺼이 희생자의 편이 되신 주님, 희생자 가족들의 슬픔이 봄을 물들이기 전에 속히 수습되도록 도와주십시오.
김순영/구약학/백석대 교육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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