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


떠날 준비


강원도 고성에서 출발하여 파주 임진각까지 DMZ를 따라 걷는 거리는 340km였다. 함 장로님이 적어주신 로드맵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열하루의 일정이니 하루 평균 30km씩을 걷는 셈이다. 하지만 한 가지 변수는 있다. 로드맵에 적은 거리가 내비게이션으로 계산한 것이라 했으니 막상 걷는 거리는 다를 것이다.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 리는 없을 것 같았다.


목회를 하면서 열하루라는 시간을 비우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중요한 일들을 있으면 불가능하고, 불가피한 일들이 없다면 다녀올 동안의 일들을 미리 해두어야 한다. 주일을 한 주 비워야 했지만, 다녀오는 동안의 모든 예배는 부목사에게 맡기기로 했다. 두 곳 신우회 예배는 다녀온 다음날로 조정을 했다.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원고였다. <교차로>칼럼 3주분, 주보 <드문손길> 두 주 분을 미리 썼고, 다녀오면 마감일이 아슬아슬한 <기독교사상> 원고는 형편을 보아 결정하기로 했다.


일정을 정하는 또 하나의 기준은 날씨였다. 너무 미뤄지면 장마나 한 여름 더위를 피할 수가 없게 된다. 여러 가지를 확인하던 중 용단을 내리듯 6월 12일(월)에 출발하여 22일(목) 마치는 것으로 일정을 정했다. 10박 11일 일정이 정해졌다.


가장 중요한 준비가 한 가지 남아 있었다. 걷는 연습이었다. 평소 걷는 일과 무관한 생활을 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걷는 연습을 하지 않은 채 떠나는 것은 건강을 과신하는 무모한 일, 필시 중간에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일이 되고 말 것이었다.


일정을 확정하고 떠나는 날까지 남은 시간이 불과 일주일 밖에 없었다. 새벽기도를 다녀와 옷을 갈아입은 뒤 바로 길을 나섰다. 동네를 벗어나 대장동 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걷기 시작했다. 차들이 다니지 않는 농로였다. 김포공항 인근, 새롭게 개발을 앞두고 있는 오쇠동을 끼고 대장동에 이르니 더 이상 농로는 없었다. 부득불 버스와 차들이 다니는 도로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야 했다. 차들이 속도를 낼 때마다 조심스럽고, 먼지를 피워올릴 때마다 숨 쉬는 것이 꺼림칙했다.


                          걷는 연습 중에 만난 저녁 노을


마침내 대장동, 이번엔 베르네천을 따라 걷기로 한다. 이른 시간인데도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름은 그럴 듯하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물은 탁하고 이런저런 부유물들이 보이고, 곳곳에는 쓰레기들이 나뒹굴고 있는데, 이런 물에 어떤 고기가 살고 있는지, 잡은 고기는 먹어도 되는지 걱정이 앞섰다.


걷다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났다. 교회로 나갈 시간을 생각하면 돌아서야 할 시간이다. 걸음을 돌려 집으로 오니 두 시간을 걸은 셈이다. 길을 나서면 하루 열 시간 이상을 걸어야 하는데 두 시간은 너무 짧다. 그런데도 다리가 뻐근하니 걱정이 된다.


베르네천에서 만난 한 건물, 오래 전 예배당이었지 싶은 곳이 창고로 쓰이고 있었다.


걷는 연습 둘째 날은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그냥 쉴까 잠시 망설이다 우비를 입고 길을 나섰다. 일정을 제대로 소화하려면 날씨와 상관없이 걸어야 한다.


빗속 질척거리는 진흙길을 걸어갈 때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하나의 질문이었다. 일정 중 많은 비가 쏟아져도 걸을 거냐고 누군가 묻는 것 같았다.


잠시 망설이다 그러겠다고 마음으로 대답했다. 대신 대답을 하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비가 얼마를 내리든 그 비를 맞고 걸을 테니 부디 이 땅의 가뭄을 해갈시켜 주세요.’


며칠 전 단강마을 병철 씨가 전화를 했었다. 대뜸 하는 말이 “목사님, 기도 좀 해주세요.” 하는 게 아닌가. 무슨 큰 일이 난 줄 알고 깜짝 놀라 이유를 물었더니 병철 씨가 대답을 했다.


“비가 안 와도 너무 안 와요!”


하긴 농부에게 비가 안 오는 것보다 더 큰 일이 무엇 있겠는가.

비가 오면 비를 맞겠다고 대답했던 것은 병철 씨의 기도요청과 무관하지 않았다.


하루 두어 시간씩 사흘을 걸은 것이 전부였다. 턱없이 부족한 준비였지만 떠날 시간이 되었다. 준비가 부족해도 떠날 때가 되면 떠나야 한다.


열하루 동안 DMZ을 따라 <걷는 기도>의 시간을 갖고 오겠다는 목사의 말을 교우들은 어떻게 이해를 했을까 모르겠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걷는 기도를 시작하며 http://fzari.tistory.com/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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