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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

배낭 챙기기

by 한종호 2017. 7. 2.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4)


배낭 챙기기


첫 출발지를 강원고 고성에 있는 명파초등학교로 정했던 것은 함 장로님의 제안이었는데, 나도 흔쾌히 동의를 했다. 의미 있는 일이다 싶었다.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인데다 우리나라 최북단에 있는 초등학교였기 때문이다.


생각 끝에 월요일 새벽에 출발을 하기로 했다. 명파초등학교 인근에서 점심을 먹고 첫 걸음을 떼려면 주일 밤에 속초로 내려가야 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버스 시간을 알아본 결과 월요일 아침 일찍 떠나도 가능할 것 같았다. 열흘 여 교회를 비우는 것이니 떠나기 전 마무리를 잘 하고 떠나는 것도 사소한 일일 수는 없었다.


덕분에 가방은 주일 밤에 싸도 되었다. 가져갈 짐들을 거실 바닥에 펼쳐 놓았다. 산티아고를 다녀온 정 장로님께 경험상 열흘 여 걸을 동안 꼭 필요한 물건의 목록 열 가지를 적어 달라고 부탁을 드렸더니, 아예 열 가지 물건을 챙겨주셨다. 청년부 교사 일을 하며 심방을 다녀온 주일 밤에 달려와 몇 가지 의약품을 전해준 오 집사님의 걸음도 더없이 고마웠다. 바쁜 일정 중에서도 무더위 속에서 꼭 필요하지 싶은 몇 가지 물건들을 챙겨준 이 전도사님의 배려도 고마웠다. 낯선 길 걷다가 배고플 때 밥 한 끼라도 사먹으라며 봉투를 건네준 몇 몇 노 권사님들의 손길에는 마음이 울렁거렸다.


 짐은 여간해선 줄어들지 않았다. 짐을 줄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것저것 물건들을 펼쳐 놓으니 저게 다 배낭에 들어갈까 싶을 만큼 물건들은 제법 많았다. 마음으로는 가장 홀가분하게 떠나야지 했는데 펼쳐놓고 보니 가져갈 물건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꼭 필요한 물건을 정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겉옷, 속옷, 양말, 수건, 치약, 칫솔, 면도기, 선크림, 핸드폰 보조 배터리, 우비, 스틱, 모자, 바람막이 옷, 혹시 숙소를 못 구해 밖에서 밤을 보낼 경우를 대비해 조금 두툼한 옷 하나, 식당을 못 만날 경우를 대비한 간식 몇 가지, 물병, 몇 가지 약품, 비상용 랜턴, 옷핀…, 일정은 열하루인데 막상 물건을 챙기면서 보니 상당 기간을 오지에서 지내야 할 사람 같았다.


준비한 짐을 다 가져가면 분명 어느 순간 도움은 되겠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은 종일 지고 다녀야 하는 짐이기도 하다. 꼭 필요한 것과 짐 사이의 현명한 선택이 필요했는데, 짐을 챙기다 생각해보니 우리의 인생도 다르지 않겠다 싶었다. 너무 허술하면 걱정이 되고, 너무 많으면 짐이 되는….


짐을 쌌다 풀었다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물품의 종류를 바꾸기도 하고, 개수를 줄이기도 했다. 여벌 신발 한 켤레는 최종적으로 뺐다. 스틱도 한 개만 챙기기로 했다. 나침반도 뺐다. 혹시 몰라 머리에 두르는 비상용 랜턴은 넣었다.


쉴 때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배낭을 벗는 일이었다. 짐을 벗는 것, 그것이 쉼의 시작이었다.


그래도 노트는 세 권을 챙겼다. 얇은 두께의 스프링 노트, 길을 걸으며 마음에 찾아든 생각들을 적기로 했다. 한 권을 넣고 보니 부족할 것 같고, 두 권을 넣으니 혹시 오지를 걸으며 두고 온 한 권이 아쉽지 않을까 싶어 결국은 세 권을 모두 넣었다. 한두 권 책도 챙겨야지 했던 것은 마음뿐이었다.


먼 길 나서려는 사람은 눈썹도 빼놓고 가라 했는데, 이것 빼고 저것 빼고 한참을 조정해도 배낭의 무게는 만만치 않았다. 한 번 져보는 것으로 열하루의 일정을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짐을 모두 챙겨 현관 앞에 두니 길을 떠나는 것이 실감이 났다. 자리에 누워 낯선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생각하다가 언젠지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1. 걷는 기도를 시작하며http://fzari.tistory.com/956

2. 떠날 준비 http://fzari.com/958

3. 더는 힘들지 않으려고http://fzari.com/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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