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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34

간도 큰 사람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80) 간도 큰 사람 창밖으로 내다보니 권사님이 일을 하고 있었다. 올 들어 가장 무덥다는 날씨, 장마가 소강상태여서 습도까지 높아 그야말로 후텁지근하기 그지없는 날씨였다. 그런데도 권사님은 교회를 찾아와 소나무 다듬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조경위원회 일을 맡으신 뒤론 시간이 될 때마다 들러 예배당 주변을 가꾸신다.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 두 개를 챙겨 내려갔다. 권사님은 내가 온 줄도 모르고 일에 열중이었다. “잠깐 쉬었다 하세요.” 손을 멈춘 권사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조경 일을 하는 권사님은 하루 일을 마친 뒤 집에 가서 땀범벅인 옷을 갈아입고 다시 교회로 달려온 것이었다. 지금이 소나무를 다듬기에는 적기라며 예배당 초입에 서 있는 소나무 가지를 다듬는 중이었다. .. 2019. 6. 30.
만년필을 고치며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79) 만년필을 고치며 만년필을 고치는 곳이 있다는 기사를 우연히 접하고는, 괜히 기분이 좋았다. 만년필이라면 대개가 정이 들고 귀한 물건, 어딘가 문제가 있어 못 쓰고 있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겠다 싶었는데, 실은 나 자신에게 그랬다. 못 쓰는 만년필이 두어 개 있었다. 두어 개라 함은 만년필 하나가 잉크를 넣는 필터가 고장이 나 못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인근에서 모임이 있는 날, 조금 일찍 길을 나섰다. 만년필 고치는 곳을 꼼꼼하게 메모해둔 덕분에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찾아갈 수가 있었다. 좁다란 골목에 들어서서 기사에서 본 곳을 찾아가는데, 그새 달라진 상호가 제법이었다. 이쯤이겠다 싶은 건물의 계단을 긴가민가 하는 마음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어디에도 간.. 2019. 6. 30.
소나무에 핀 꽃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78) 소나무에 핀 꽃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하는 시간, 책상에 앉아 다음날 새벽예배 설교를 준비하다 잠시 창밖을 내다보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저녁 무렵 예배당 초입에 선 소나무를 손질하는 권사님께 시원한 물을 전해드리고 왔는데, 권사님의 작업은 그 때까지도 끝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권사님은 아예 나무 위로 올라가서 전지 작업을 하고 있었다. 따로 돕는 이가 없어 혼자서 작업을 하는데도 나무 위로 올라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중심을 잡는 것인지 소나무의 정중앙 꼭대기 부근에 자리를 잡고 가지를 치고 있었다. 올해 권사님의 나이 일흔셋, 그런데도 소나무 꼭대기에 올라 앉아 가지를 치고 있는 권사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소나무가 꽃을 피운 것처럼 보였다. 소나무.. 2019. 6. 29.
미더운 이발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77) 미더운 이발사 강화에서 집회를 인도하는 동안, 그중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이는 이희섭 목사였다. 감신 후배로 그가 오래 전 원주청년관에서 사역할 때 독서모임을 함께 한 적이 있다. 어느새 세월이 흘러 그는 강화남지방 선교부 총무를 맡고 있었다. 연합성회는 선교부가 주관하는 행사여서 그는 여러 가지로 많은 수고를 하고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강사를 픽업하는 일이었다. 숙소와 집회가 열리는 기도원과는 차로 20여 분 거리, 그는 때마다 나를 태우고 숙소와 기도원을 오갔다. 오는 길에 따뜻한 커피를 준비하는 자상함도 보여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차 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다. 이 목사와 이야기를 나누며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다. 그는 미용봉사를 하고 있었다. .. 2019. 6. 28.
마리산 기도원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76) 마리산 기도원 강화남지방 연합성회에 다녀왔다. 강화 길상면과 화도면에 소재한 28개 교회가 한 지방을 이루고 있었다. 강화남지방 연합성회는 오래된 전통이 있었는데, 집회를 마리산기도원에서 갖는 것이다. ‘마니산’으로 알고 있었는데 기도원 이름은 ‘마리산’, 무슨 차이가 있을까 궁금했다. 설명을 들으니 ‘마니산’(摩尼山)의 ‘니’가 ‘비구니 니’(尼), 그러니 본래의 뜻을 따라 ‘머리’를 뜻하는 ‘마리산’으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내용이 기도원 앞에 있는 ‘마리산 성령운동 100주년 기념비’ 설명문에도 담겨 있었다. “마리산(摩利山)은 마니산(摩尼山)의 본래의 바른 이름으로 강화군에서 가장 높은 산입니다.(해발 472.1m) 마리산은 ‘백두산’(白頭山)과 ‘한라산’.. 2019. 6. 28.
나도 모르는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75) 나도 모르는 철학과 교수가 수업 중 학생들에게 물었다. “현금 출금기에서 10만원을 인출했는데, 확인해 보니 11만원이 나왔어요. 그럴 경우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어요?” 학생들의 의견은 두 가지로 갈렸다. 은행에 돌려주어야 한다는 학생들도 있었고, 행운으로 여기며 모르는 척 갖겠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때 한 학생이 교수님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교수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 “나라면 다시 한 번 10만원을 인출하겠어요.” 우리 안에는 나 자신도 모르는 마음이 있다. 2019. 6. 27.
“무죄(無罪)한 피를 우리에게 돌린다”는 것은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 “무죄(無罪)한 피를 우리에게 돌린다”는 것은 요나 1장 14절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까닭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개역》 요나 1:14). 영어 King James Version(1611) 역시 이렇게 우리말 《개역》과 같은 방식으로 번역하였다. “Wherefore they cried unto the LORD, and said, We beseech thee, O LORD, we beseech thee, let us not perish for this man’s life, and lay not upon us i.. 2019. 6. 26.
어느 날의 기도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74) 어느 날의 기도 당신의 말씀은 맹렬히 타는 불, 그런데도 여전히 멀쩡한 나는 누구입니까? 당신의 말씀은 바위를 부수는 망치, 그런데도 여전히 태연한 나는 누구입니까? 말씀 앞에서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는, 대체 나는 누구란 말입니까? -예레미야 23:29을 읽으며 2019. 6. 26.
그끄저께와 그글피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73) 그끄저께와 그글피 김중식의 시를 읽다가 ‘그끄저께’라는 말을 만났다. 그끄저께라는 말은 마치 광 속 어딘가에 처박혀 있다가 우연히 나타난 것처럼 다가왔다. 하지만 먼지를 닦아내듯 생각을 가다듬자 이내 익숙한 표정을 지었다. 어릴 적 어렵지 않게 쓰던 말이었다. 사전에서는 그끄저께를 ‘그저께의 전날. 오늘로부터 사흘 전을 이른다.’고 설명한다. 재재작일(再再昨日), 삼작일(三昨日)이라는 유의어도 있는데, 한문이라 그런지 영 낯설다. 손가락을 꼽듯 ‘오늘’부터 하루씩을 거꾸로 불러본다. 오늘-어제-그끄제(그제)-그끄저께(그끄제), 마치 신나게 놀이를 하던 아이들이 새로운 놀이를 위해 줄을 서듯 아무 혼란도 없이 시간이 한 줄로 늘어선다. 재미있다 싶어 이번엔 하루씩 앞으로 가.. 2019. 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