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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말랭이가 먹고 싶다는 딸아이 신동숙의 글밭(46) 무말랭이가 먹고 싶다는 딸아이 학교를 가야 하는데 딸아이가 일어날 줄을 모릅니다. 목도 따갑고, 코도 막힌다며 이불을 끌어 안습니다. 학교를 가든 병원을 가든 한 숟가락이라도 떠야 움직일 수 있다고 했더니, 담백하게 끓인 김치찌게를 밀어내고는 삶은 계란만 겨우 집어 먹습니다. 아이들이 열이 나거나 아프다고 하면 동네에 있는 소아과를 갑니다. 진료를 받는 이유는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더 자세하게 알기 위해서입니다. 독감이면 A형인지 B형인지 검사를 받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진료 확인서를 제출해야 병결이 인정이 됩니다. 병원에서 처방하는 해열제, 소염제, 소화제, 항생제를 먹지 않고 신종플루와 독감을 지나온 게 어느덧 7년이 넘어갑니다. 그리고 타미플루는 먹은 적이 없답니다. 양약 대신.. 2019. 12. 31.
수처작주(隨處作主)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65) 수처작주(隨處作主) 벌써 여러 해, 한해가 기울어갈 때쯤이면 이어지고 있는 일이 있다. 선생님 한 분이 카드를 보내주신다. 선생님은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선생님이시다. 선생님이라는 말 앞에 ‘선생님다운’이라 쓰려다가 그만 둔다. 선생님과 선생님들을 함부로 판단하는 것 같은 민망함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말이 오히려 선생님을 거추장스럽게 만든다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늘 자연스럽고 소탈하신 선생님은 필시 그런 수식어를 어색하고 번거롭게 여기실 것이다. 강원도에서 태어나 공부하실 때 외에는 강원도를 떠나지 않고 강원도의 아이들을 가르치셨다. 선생님은 강원도를 사랑하신다. 국어선생님으로 우리말과 우리의 얼, 우리의 문화를 사랑하는 것을 평생 가르치셨고, 몸소 지키셨다. 교장선.. 2019. 12. 30.
행복한 고독의 사랑방에서 신동숙의 글밭(45) 행복한 고독의 사랑방에서 작은 찻잔에 담긴 차 한 잔이 있습니다. 내려오던 햇살은 율홍빛 속에 머물고, 차향은 30년 전 스치운 푸른 바람 냄새를 아련히 기억합니다. 천천히 서너 모금으로 나누어 마십니다. 그리움으로 출렁이던 잔은 빈 잔이 되고, 빈 잔은 하늘로 가득 차 있습니다. 빈 잔 바닥에 내려앉은 햇살은 한 점 하얀 별빛으로. 없는 듯 계시는 빛의 하나님이 잠시 내려앉아 고요히 머물러 쉬는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찻잔에 담긴 찻물을 비우는 순간 얼른 들어차는 하늘처럼 허전한 나를 하늘로 채우길 원합니다. 나의 좁은 창문을 열면, 작고 여린 가슴으로 밀려드는 공허감, 무력감, 가난한 내 마음을 하나님으로 채우길 원합니다. 이제는 알든 모르든 내 안에 있는 나의 연약함과 부.. 2019. 12. 30.
검과 몽치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55) 검과 몽치 그 때 그 순간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어둠을 밟고 조심스레 다가오는 한 무리들, 그들의 손엔 검과 몽치가 들렸다. ‘검과 몽치’라는 말은 ‘칼과 몽둥이’라는 말보다도 원초적이고 음험하게 들린다. 그들이 들고 있는 것은 검과 몽치만이 아니었다. 등과 횃불을 빠뜨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빛으로 오신 분을 붙잡기 위해 그들은 어둠 속에서 등과 횃불을 밝힌 채 다가온다. 제대로 정제되지 않은 기름에선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을 것이다. 어디 그뿐일까, 그 모든 것에 희번덕거리는 눈빛이 보태진다. 횃불보다도 더 강렬했을 눈빛들, 예수가 붙잡히던 그 밤 그 동산에는 온통 광기가 가득하다. 예수의 말씀대로 난폭한 강도를 잡는 현장과 다를 것이 없다. 생각해 보면 누구나 다 자기.. 2019. 12. 29.
말씀과 자연은 단짝 친구 신동숙의 글밭(44) 말씀과 자연은 단짝 친구 허공을 떠도는 외로운 말씀에게 자연을 단짝 친구로 선물합니다 먼지처럼 폴폴 발에 밟히는 말씀에게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땅 고독의 방을 선물합니다 메마른 사막 길을 잃고 헤매는 말씀에게 눈물이 고여 흘러 넘칠 빗물 침묵의 기도를 선물합니다 믿어주지 않아 답답한 말씀에게 언제나 푸른 하늘 산들바람 진리의 자유를 선물합니다 추워서 벌벌 떨고 있는 말씀에게 '빛이 있으라' 따뜻한 햇볕 사랑의 눈길을 선물합니다 외로운 말씀에게 말씀의 주인이 짝지어 주신 말씀과 자연은 단짝 친구랍니다 2019. 12. 29.
나는 아직 멀었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54) 나는 아직 멀었다 하필이면 암호가 입맞춤이었을까? 유다 말이다. 예수를 넘겨주며 무리에게 예수를 적시할 암호로 미리 짠 것이 입맞춤이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예수를 알릴까를 왜 고민하지 않았을까, 그 끝에 찾아낸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었을 것이다. 제자가 스승을 만나 입맞춤을 하는 것은 반가움과 존경의 뜻이 담긴 행동,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일이었다. 껄끄러운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도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으니, 그것이 유다의 제안이었다면 그의 머리가 비상하다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두려움이 읽힌다. “내가 입을 맞추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니, 그를 잡아서 단단히 끌고 가시오.” 라고 무리들에게 말한다. 단단히 끌고 가라는 말을 왜 덧붙였을까? 예수를 놓칠까 걱.. 2019. 12. 29.
'기뻐하라'의 의미를 묵상합니다. 신동숙의 글밭(43) '기뻐하라'의 의미를 묵상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 전서 5:16-18) 제 기억 속의 세월호는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입니다. 잊혀지지 않으며, 잊혀져선 안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이 땅 어디에선가 그와 같은 불합리한 일들이 모습을 달리하고서 엄연히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겨울바닷속처럼 다 헤아릴 수 없는 유족들의 가슴 속으로 따뜻한 햇살 한 줄기 비추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그분들을 만난다 하더라도 따뜻한 말 한 마디, 따뜻한 눈길이 끊이지 않는 파도처럼 우리들 사이에서 잔잔하게 일렁이기를 소망합니다.. 2019. 12. 28.
열둘 중의 하나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53) 열둘 중의 하나 예수를 팔아넘기는 가룟 유다를 두고 4복음서 기자는 모두가 같은 표현을 쓴다. ‘열둘 중의 하나’라고 말이다.(마태복음 26:14, 47. 마가복음 14:10, 20, 43. 누가복음 22:3, 47. 요한복음 6:71) 예수를 배반하여 팔아넘긴 자는 예수와 무관한 자가 아니었다. 예수를 모르던 자도 아니었고, 믿지 않던 자도 아니었다. 오히려 예수와 가장 가까이에서 지냈던 가장 가까웠던 자였다. 돈주머니를 맡겼으니 어쩌면 가장 신뢰받던 자였다. 분명한 것은 열두 중의 하나였다. 열두 중의 하나, 그 하나로 인해 나머지가 덩달아 부끄러워지는 걸 감내하면서 복음서 기자들이 그 일을 기록으로 남긴 이유는 무엇일까? 약속이나 한 듯 굳이 덮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 2019. 12. 28.
밥 한 톨 신동숙의 글밭(42) 밥 한 톨 밥 한 톨도 흘리지 마라 밥그릇 주변을 돌아보고 밥 한 톨도 남기지 마라 밥그릇 속을 들여다보고 2019.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