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가지 손

사진/신동숙

 

 


마른 나뭇가지에서
꽃이 피고 잎이 피듯

어머니의 손끝이 갈라져서
연분홍 꽃이 피어나고

아버지의 손마디가 툭툭 불거져서
푸르른 잎이 피어난다

오늘도 찻잎을 매만지는 손이
나뭇가지를 닮아갈 무렵

저녁밥 먹으러 오너라
부르는 소리 없는 쓸쓸한 저녁에

나뭇가지가 나뭇가지에게 
어진 손을 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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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웃음 하나 만나기 위해 -애광원을 다녀오며

사진/한희철



웃음 하나 만나기 위해
작은 웃음 하나 만나기 위해
먼 길을 걸어왔어요.
돌아설 수도 비켜갈 수도 없는 길이었어요. 
내가 잡은 것 무엇인 줄 모르고
나를 잡은 것 무엇인 줄 모르는 길이었어요.

웃음이 무엇으로 소중한지 몰랐어요.
무엇으로 웃음이 터지는지도 몰랐고요.
버릴 수 없는 표정들을 버리지 않았을 뿐,
더는 몰랐어요.
이처럼 예쁠 수가 있을까요?
이처럼 고울 수가 있을까요?
아무 것도 없이
기막히게 없이
줄기도 가지도 없이
문득 문득 하늘로 피어나는 천상의 꽃.

웃음 하나 만나기 위해
작은 웃음 하나 만나기 위해
하루처럼 걸어온 
먼 길.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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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께 바쳐지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입니다.”(엡 1:10)

주님의 평화와 은총을 빕니다.
잘 지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시절은 여전히 어수선하기만 합니다. 주말부터 주초께 코로나 확진자 수가 줄어드는가 싶어 기대를 품어 보지만, 주중에는 어김없이 늘어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희망 고문처럼 느껴집니다. 조금 무심해져 보려고 하지만 교회 문을 닫고 있는 입장에서 그럴 수가 없군요. 이 곤고한 시간이 속히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교우들 가운데는 병원에 입원하신 분들도 계시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도 계십니다. 주님께서 힘겨운 시간을 견딜 힘을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지난 월요일 모처럼 아내와 용산가족공원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오전 내내 서재에 갇혀 지내다가 나오니 아내 표정이 어두웠습니다. 햇빛 좋고 바람 서늘한 모처럼의 휴일, 일에 붙들려 지내는 남편 때문에 속이 상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간 곳이 용산가족공원입니다. 산사나무 하얀꽃 그늘에 앉아 책을 읽는 이들의 모습이 평화스러워 보였습니다. 바닥에 깔린 참꽃마리의 앙증맞은 꽃잎이 사랑스러웠습니다. 미나리아재비, 골담초, 큰꽃으아리, 등나무꽃을 찬찬히 살피며 오후를 다 보냈습니다. 거리 곳곳에 서있는 이팝나무도 흰꽃을 머리에 인 채 외로움에 지친 사람들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모처럼 분주한 마음에는 깃들 수 없는 따뜻하고 아늑한 평화를 누렸습니다. 아름다운 계절에는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서 자연과 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금주에 사람들의 시선은 온통 윤여정 선생의 오스카상 수상에 쏠려 있었습니다. <미나리>라는 영화를 아직 보지 못해서 영화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지만, 다양한 매체와 한 윤여정 선생의 인터뷰는 많은 이들에게 유쾌함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유창한 영어는 아니지만 자기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 가학적이지 않으면서도 뭔가 깊은 곳을 찌르는 촌철살인의 유머, 젠체하지 않는 태도가 외국인들에게도 인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당당함은 온갖 풍상을 겪으며 살아온 깊은 연륜에서 나오는 것일 겁니다. 고통의 세월을 겪는다고 하여 모든 사람이 깊고 그윽한 멋을 품게 되는 것이 아님을 생각할 때 윤여정 선생의 경우는 제게도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시상식에서 그가 한 말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나는 경쟁을 싫어합니다. 5명 후보 모두 각자 다른 영화에서의 수상자입니다. 오늘 제가 여기 있는 건 단지 조금 더 운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축약한 형태이긴 하지만 대략 이런 뜻의 발언이었습니다. ‘운이 좋았다’는 말이 그저 겸양의 말처럼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가 시상식 직후 온라인 간담회에서 했다는 말도 참 크게 울려왔습니다.

 

“사람을 인종으로 분류하거나 나누는 것은 좋지 않다. 무지개처럼 모든 색을 합쳐서 더 예쁘게 만들어야 한다.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고, 백인·흑인·황인종으로 나누고, 게이와 아닌 사람을 구분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따뜻하고 같은 마음을 지닌 평등한 사람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끌어안아야 한다.”

 

소박하지만 분명한 메시지입니다. 이런 메시지가 일회적으로 소비되지 않고 많은 이들의 삶의 태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가오는 5월 첫 주는 어린이 주일인 동시에 우리 교회 설립 113주년 기념주일입니다. 그 동안 설립의 의미를 되새기느라 어린이 주일을 소홀히 해 온 감이 있습니다. 며칠 전 딸이 손녀들의 근황을 전해주었습니다. 학교에 다녀온 언니가 여섯 살 동생과 상황극을 하며 놀았습니다. 언니는 동생에게 로봇 역할을 맡기고는, 동생의 등에 배터리를 넣는 시늉을 했습니다. 그런데 동생은 언니의 뜻대로 움직여주질 않았습니다. 왜 그러냐고 묻자 배터리를 거꾸로 넣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맹랑하지요? 그러다가 자기 역할에 몰입한 동생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나는 왜 로봇으로 태어났을까? 나는 왜 엄마가 없을까?” 아이들도 이처럼 존재론적 질문을 할 줄 압니다. 동생은 급기야 언니에게 자기 역할을 고양이로 바꿔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어린이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칼릴 지브란의 말을 떠올립니다.

“그대들의 아이라고 해서 그대들의 아이는 아닌 것.
아이들이란 스스로 갈망하는 삶의 딸이며 아들인 것.
그대들을 거쳐 왔을 뿐 그대들에게서 온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비록 지금 그대들과 함께 있을지라도 아이들이란 그대들의 소유는 아닌 것을.”
(칼릴 지브란, <예언자>, 강은교 옮김, 문예출판사, 1979, p.22)

‘그대들을 거쳐 왔을 뿐 그대들에게서 온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올곧게 받아들일 부모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맘껏 뛰놀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들풀 하나 앞에 멈추어 서고, 땅바닥에 쪼그려 앉아 부지런히 발을 놀리는 개미를 살피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꿈을 꾸는 아이들이 보고 싶습니다. 신비와 경이에 대한 감각을 잃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빈곤을 택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학교 교육을 담당하는 분들에게 생태적 감수성을 키워주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이것은 비단 어린이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있는 공허함, 무력함, 분노 등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런 현실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석하려면 상당한 공력을 들여야 하겠지만, 우리 시대가 속사람의 건강보다는 겉사람을 꾸미는 일에 더욱 몰두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겉사람을 잘 훈련시킨다. 그러나 우리는 속사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정보를 알린다. 또한 우리는 고마운 감정을 길러야 한다. 우리는 기술을 가르친다. 또한 우리는 통찰력을 길러야 한다. 우리는 잡다한 행위에 가담하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고요함의 의미를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더불어 삶을 장려한다. 동시에 우리는 홀로 있음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능변은 중요하다. 그러나 침묵도 그만큼 중요하다. 기술은 살아가는 데 절대 필요하다. 그러나 자기 억제도 그러하다.“(아브라함 요수아 헤셸 선집 3, <누가 사람이냐>, 이현주 옮김, 종로서적, p.205)

공교육이 소홀히 하는 가치들이 실은 인생에 더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독교 교육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요? 고마운 감정 기르기, 통찰력, 고요함, 홀로 있음, 침묵, 자기 억제 등을 배울 때 우리 삶이 균형을 잃지 않을 겁니다. 교회에서, 가정에서 이걸 꼭 명심하면 좋겠습니다.

교회 설립 기념주일에도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상황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교회의 지난 역사를 돌아봅니다. 수많은 낮과 밤이 갈마들며 세월을 이루는 것처럼, 정말 많은 이들의 기도와 땀과 헌신으로 쌓아올린 역사이기에 감사의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긴 역사의 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 했습니다.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일진대 교회의 교회됨은 그러한 일치를 지향하는 데 있다 하겠습니다. 이번 주 내내 제가 읽으며 기도로 삼은 것은 함석헌 선생님의 시 ‘님께 바쳐지이다’입니다.

“이 몸을 님께 바쳐지이다.
세포 하나 남기지 말고
털끝 하나 아끼지 말고
내 것이라곤 하나 없이
나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다 님께 바쳐지이다.

님께서 이 잘난 것을
소용되어서가 아니오라
내게는 둘 수가 없어서
두어둘 터무니가 없어서
님께 바쳐 처분해 주시기를 비오니
이 나를 온통 맡으소서.”

시인은 님께 바친 몸이니 쓰시거나 버리거나 님 곁에 두시거나 아무 상관없다고 말합니다. 그가 이렇게 처절하게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까닭은 자기 몸의 세포 구석구석에 죄와 더러움이 가득 차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욕망에 이끌려 살던 사십 년이 이제는 피곤하고 싫증까지 났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누르고 또 눌러도 미욱한 것이 자꾸 나오고, 내쫓으려 해보아도 지싯지싯 들어오는 염치없는 것을 혼자 힘으로는 떨쳐낼 수가 없습니다. 그 힘겨운 싸움 다 이기고 깨끗한 기쁨으로 얼굴 들고 주님께 가고 싶지만 그럴 능력이 없음을 잘 압니다. 그래서 부끄럼을 무릅쓰고 더러운 보자기 채로 자기를 님께 바치려는 것입니다. 받아주시기만 바라면서. 시의 마지막 연을 읽으며 숨이 가빠졌습니다.

“그리워!
님의 영광 그리워!
그 영광의 얼굴 그리워!
그 영광의 목소리 그리워!
그 영광 내 얼굴 비치소서,
내 가슴 흔드소서.
그 영광 내 입고, 내 찬송하고 싶어.
아아, 그 영광 그 영광!
나를 둘러싸소서 감추소서 삼키소서,
나를 녹여버리소서,
영광 영광 아아, 그 영광!”
(함석헌 전집6 <시집 수평선 너머>, 한길사, p.266-269)

이것은 우리들 개인이 바쳐야 할 기도이기도 하지만, 지금의 교회가 바쳐야 할 기도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은총이 우리를 흔드시고, 녹이시어 그분의 영광 속에 머물 수 있기를 빕니다. 올해 우리는 교회 설립을 기념해서 ‘세이브 더 칠드런’을 통해 인근 지역의 학대받는 어린이, 청소년들의 생필품 지원과 위기 청소년들의 상담 지원 사업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린이 주일을 교회 생일로 삼고 있는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들을 돕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 하나 실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머무는 삶의 자리 어디에서나 어둔 그늘에 갇힌 채 살고 있는 이들에게 햇살 한 줌이라도 전해주려는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어제도 오늘도 우리를 통해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시고 싶어하십니다. ‘주님, 우리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를 평화의 도구로 삼아주십시오.’ 주님의 사랑이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에 머무시기를 빕니다. 평화.

2021년 4월 29일
담임목사 김기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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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3분

 


라벤더의 연보라빛
곡우 무렵 찻잎의 연두빛

식물이 물과 만나 물들어가는 시간
처음 3분의 만남에서 태초의 우주를 본다

찻잎을 물에 넣고 3분을 우려내면
라벤더와 찻잎은 향이 좋고 단맛을 머금는다

하지만 3분을 넘기면
식물은 쓴맛과 불순함을 내뿜는다

한민족의 경전인 단군의 천부경
일시무시일 석삼극무진본

하나에서 시작해 하나로 돌아가고
그 하나는 시작도 끝도 없으며

그 하나 속에는 천지인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두 들어있는 3의 원리

우주 탄생 빅뱅의 처음 3분은
수소와 헬륨 원자가 결합하는데 걸리는 시간

한밝, 크고 밝은 민족
배달민족의 피 속에 각인된 숫자 3의 신비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작심 3일이라는 옛말과 겹쳐본다

사람의 마음은 3일이 지나면 변한다지만
하루에 수 십 번도 나는 그 3분의 고개를 넘지 못한다

마음이 물처럼 흐를 수 있다면
마음이 구름처럼 흐를 수 있다면

마음에 떨어진 씨알이 3분이 지나 변한다면
3분을 단위로 새로운 마음을 먹기로 한다

처음 3분의 박자로
새로운 마음을 먹는다

처음 3초의 호흡으로
새로운 숨을 쉰다

몸은 땅이 되었다가 
하늘이 되었다가

그러나 한마음 먹기의 무게가 
우주의 무게가 될 때가 있다

찻잔 속에는 3분
4월의 하늘이 푸르게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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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광원

  

이번 여름을 보내면서 가장 인상적인 일은 애광원을 방문한 일이었다. 거제도, 한 정치가의 고향으로만 알고 있었던 그곳은 차로 열 시간 이상이 걸리는 먼 곳이었다. 지도를 펴 놓고 확인해보니 남쪽의 맨 끄트머리 한쪽 구석이었다. 춘천의 권오서 목사님과 사모님, 서울의 유경선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나 다섯 명이 동행하게 되었다. 


애광원은 산과 바다 그리고 하늘이 아름답게 어울린 장승포의 한 언덕배기에 있었다. 건물자체가 애광원의 성격을 말해주는 듯 했다. 


애광원은 정신지체아들을 돌보는 특수기관이었다. 물리치료, 작업치료, 언어치료 등 의료재활 활동과 직조·봉제·도예·조화·축산.칠보·염색·원예 등 작업재활 활동, 화훼·버섯재배·무공해 채소재배 등 자립작업장이 운영되는 애광원과, 중증 장애자를 수용하고 있는 ‘민들레 집’이 언니와 동생 두 분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 


도착한 다음날 원장님의 안내로 애광원을 두루 돌아본 우리는 내내 말을 잃고 말았다. 무책임한 말이라 할진 몰라도 수용되어 있는 한 아이 한 아이는 그야말로 ‘버려진 생명’들이었다. 누구하나 관심 갖지 않아 외면 받은 생명들을 애광원과 민들레 집은 이유를 묻지 않고 곱다랗게 품어주고 있었다. 
중증 장애자들의 모습은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였다. 막대기처럼 가느다란 손과 발을 가진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온몸이 움직여지질 않아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방마다엔 그들을 돌봐주는 사랑의 손길들이 있었다. 

 


대부분 자원봉사자들인 그들은 그 야윈 손을 붙잡고, 자신의 힘으론 꼼짝도 할 수 없는 손을 마주 잡고선 시간도 잊은 채 무언가를 그들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나아도 나았다 할 수 없을 생명들 앞에 포기하지 않고 손을 잡는, 따뜻한 체온으로 체온 이상의 것을 전해주는 그들의 모습은 엄숙했고 거룩했다. 


아이의 작은 웃음 하나하나에 우주가 열리는 기쁨을 맛보는 그들 앞에, 말로 설교하며 살아가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참 신앙은 말 너머의, 말 이상의 것임을 그들은 말없이 우리에게 깨우치고 있었다. 


혼자서 허리 운동을 하는 한 아이를 만났는데, 원장님의 설명으로는 그 아이가 그 정도가 되기까지는 한 봉사자의 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었다. 꼼짝도 못하는 한 아이를 위해 바친, 오직 한 생명만을 위해 바친 5년의 시간. 그 한결같은 5년의 시간이 일으킨 미미한 변화, 그러나 그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랑의 기적이었다.


한 방 한 방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우리가 벗어놓은 신발은 신기 좋도록 나란히 정돈되어 있었다. 온몸이 뒤틀어져 마음대로 몸을 못 놀리는 아이들이었지만, 그들의 손길은 그리도 고왔다. 단지 성한 몸으로 살아간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요구받고 있는 것인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시설을 둘러보며, 그만한 시설이 있기까지의 어려움이 얼마였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자꾸만 머릿속엔 딴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아무런 도움의 손길도 없이 어이없는 모습으로 방치되어 있을 이 땅의 수많은 생명들, 그들의 모습이 괴로움으로 떠올랐다. 아이들의 손을 마주 잡으며 ‘그래도, 너희들은 행복한 아이들이란다.’ 마음속으론 그렇게 말했다. 


우연히 눈에 띤 자그마한 네잎 클로버를 나중에 원장님께 전해 드렸다. 성경 갈피에 꽂겠다며 원장님은 당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오셨다. 작고 보잘 것 없는 드림을 훌륭하게 받아주신 셈이다. 그런 마음이 모여 오늘의 애광원이 되었지 싶었다. 


애광원의 일을 돕고 있는 독일의 쿠르제 목사님은 그날 모습이 보이지 않았는데 얘길 듣고 보니 그날 오전은 목사님의 일주일 생활 중 ‘편지를 쓰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한 주일 생활 계획 중 편지 쓰는 시간을 따로 마련해 놓은 모습이 특이했고 배워야 할 일로 여겨졌다. 


애광원은 아름다웠다. 애광원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랑의 손길도 아름답고, 언덕배기에 선 애광원 건물 자체도 아름다웠다. 장애복지시설 건축 설계를 전공한 강 박사(원장님은 그분을 천사라 불렀다)가 설계한 애광원은 장승포 포구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언덕이라기보다는 낭떠러지였을 그 땅에 튼튼하고 아름답게 서 있었다. 


위태한 생명들을 사랑으로 감싸 안듯 비탈진 언덕에 아름답게 선 애광원, 건물 자체가 애광원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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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축하 엽서

 

 



"아빠, 할머니 생일은 생신이라고 하는 거야?" 

 


어디서 들었는지 소리가 엽서 하나를 챙겨들고 와선 '생신'에 관해 묻습니다. 내일 모레가 할머니 생신, 소리는 엉덩이를 하늘로 빼고 앉아 뭐라 열심히 썼습니다. 썼다간 지우고 또 쓰고 그러다간 또 지우고, "뭐라 쓰니?" 물어보면 획 돌아서선 안 보여주고. 


며칠 뒤 굴러다니는 봉투가 있어 보니 소리가 썼던 할머니 생일 축하 엽서였습니다. 할머니가 분명 고맙다 하며 엽서를 받았는데 웬일인가 알아보니, 그날 엽서를 쓰다 잘못 써서 다시 한 장을 더 썼던 것이었습니다. 엽서에는 연필로 쓴 큼지막한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할머니 생신을 축하합니다." 


'할머니 생신을 축하합니다'라고 쓴 엽서는 엉뚱하게도 다음과 같이 끝나고 있었습니다. 


'소리, 규민 섰다'


기껏 할머니 생일을 생신으로 물어 쓴 끄트머리에 가서 '소리 규민 섰(썼)다'라니, 아마도 그 때문에 엄마한테 퇴짜를 맞고 다시 쓴 모양이었습니다. 


'소리 규민 섰다'라는 글을 보고선 한참을 웃었습니다. 웃다 말고 드는 생각이 진짜 생일 축하 엽서는 제대로 고쳐 써 할머니께 전해진 그 엽서가 아니라, 잘못 써서 퇴짜를 맞은 이 엽서일 거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번 추석 집에 들르면 잘못 쓴 엽서를 다시 전해드릴 작정입니다. 할머니께 드리는 어린 손녀의 웃음, 무엇보다 그것이 가장 좋은 선물이겠기 때문입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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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신동숙

 



2021년 새해 일지의 제목을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으로 정했다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일신우일신, 날마다 새롭게 
무엇을 새롭게 한다는 뜻인가

아무래도 그 뜻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그 말을 떠올릴 적마다 새로운

깊은 산골 돌 틈에서 샘솟는 
석간수 한 모금 마시는 듯하다

이제 머지않아 
물은 오월의 신록빛으로 물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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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 번째 일요일마다 목욕탕에 간다

  • 함께 자라갈 수 있게 귀한 얘기 나눠줘서 너무 감사해요~♡

    에버브라이드 2021.04.28 10:53


살아오면서 나는 여러 사람에게 많은 빚을 지었다. 내가 머물 곳이 없을 때  어떤 이는 자신의 작은 방에 나를 재워 주었고, 어떤 이들은 얼굴도 모르는 내게 장학금을 주었으며, 학창시절 선생님들은 문제집이나 참고서를 주셨다. 가난했던 나는 여러 사람들의 돌봄과 배려로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세상을 향해 빚을 지고 있다는 마음의 부담이 있다. 누군가에게 돈을 빌렸다면 이자를 포함해서 그 돈을 갚으면 그만이지만 나를 도왔던 많은 이들은 내게 돌려받고자 빌려준 것이 아니기에 내가 갚을 수 있는 형편이 되어도 나는 갚을 수가 없다. 그들 중 어떤 분은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도 모르기에 어떤 식으로도 갚을 수 없는 은혜와 빚이 있다. 나는 갚을 수 없는 많은 빚을 지고 살아왔고, 이제는 가능하면 살면서 조금씩이라도 그 빚을 탕감해 가고 싶다. 그래야 내 마음이 조금은 홀가분해질 것 같다. 어떻게 하면 그 빚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는지 생각해보았고 또 지금도 생각한다. 내가 받았던 방식대로 되갚기도 하고, 때론 다른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그렇게 되갚는 방식중 하나로 택한 것이 장애인 목욕봉사였다. 

오래전 내게도 할머니가 계셨다. 할머니는 소여물을 자르는 작두에 손이 잘려서 오른손이 없는 장애를 가지셨다. 하지만 할머니는 어떤 경우에도 장애를 핑계 삼지 않으셨다. 왼손 하나로 모든 집안일을 해내셨고, 농한기엔 봇짐장사도 하셨다. 


할머니가 삶의 고통들을 참아내며 그리 억척스럽게 사신 이유는 아버지 없이 자라는 손주들 때문이었다. 손주들을 잘 먹이고 싶어서 한 손으로 음식을 만들고, 텃밭을 가꾸셨으며, 손주들 손에 약간의 용돈이라도 쥐어주고 싶어서 봇짐장사를 나가셨을 게다. 나는 그 할머니의 네 번째 손녀였다. 내가 서울로 대학을 가서 시골집을 떠나던 날 할머니는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집 앞 골목길에 서서 손을 흔드셨다. 내 나이 20살에 할머니는 78세의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나셨다. 언젠가 내가 어른이 되어 돈을 벌면 할머니에게 시장에서 파는 꽃무늬 덧버선이나 몸빼가 아닌 고운 빛깔의 좋은 옷을 선물해드리고 싶었는데 할머니는 그날을 기다려 주지 않으셨다. 그 할머니 때문에 나는 손이 없는 분을 만나면 ‘손이 많이 시리시죠? 라고 물으며 잘린 손끝을 만져 보게 되고, 장애를 가진 분들에게 자꾸만 마음이 쓰인다.  

장애인 목욕봉사를 참여했던 첫날, 목욕탕에는 대체로 나이가 많으면서 장애나 기력저하로 인해 혼자서 목욕하기 어려우신 분들이 와 계셨다. 나는 그날 왼손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왼손과 팔을 스스로 닦을 수 없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할머니는 자신의 왼팔을 어찌 닦으셨을까?’ 난 한 번도 할머니를 닦아 드린 적이 없었다. 같이 목욕을 한 적도, 때를 밀어 드린 적도 없고 그 왼손을 씻어 드린 적도 없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처음으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던 할머니의 왼손을 생각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던 나의 할머니를 생각했다. 할머니에 대한 나의 미안함과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한 번의 목욕봉사는 열두 번이 되었고, 그 열두 번의 반복이 16년이 되었다. 

목욕봉사는 그냥 맘 편하게 그 시간만 채우면 될 것 같아서 별 생각 없이 시작했던 일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한 달에 한 번 목욕탕에 가서 장애를 가진 분들의 때를 밀어드리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봉사를 하되 어떤 책임도 의무도 가지지 않고 적당히 하다가 그만두고 싶을 때 쉽게 빠져나오고 싶어서 가능한 매달 참석하지만 절대 앞에 나서지 않았고 말없이 맡겨진 일만 했다. 개선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말하지 않았다. 그 일에 대해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여러 의견을 내놓다 보면 종국엔 일에 대한 책임을 맡게 되는 위치에 있게 된다. 그러면 내가 그만두고 싶을 때 쉽게 빠져나올 수가 없다. 언제든 맘이 바뀌면 도망칠 수 있게 적당히 한발 뺀  모습이 처음 목욕봉사에  임하는 나의 태도였다. 그 당시 어린 자녀들과 근무시간이 긴 약국은 나의 이런 태도에 대한 적절한 변명거리가 되어주었다. 언제라도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는 나의 태도는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겉으로 드러난 내 모습은 성실해 보였지만 나만 알고 있는 나의 내면은 언제든 힘들어지면 발 뺄 생각을 하는 불성실함 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런 나의 마음과 태도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내리는 이슬비에 옷이 젖듯 봉사활동을 함께하는 다른 봉사자들을 지켜보면서 내 태도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목욕봉사는 내게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목욕봉사는 봉사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대중탕에서 벌거벗은 채 장애를 가진 분들을 씻기고 때를 밀어 드리는 일은 여러모로 힘든 일이다. 몸으로 때우면 되는 봉사라고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이 일은 결코 몸으로만 때울 수 있는 봉사가 아니었다. 장애인 목욕봉사가 육체적으로 힘든 건 두말할게 없는 사실이다. 밖에서 남녀가 같이 하는 봉사는 힘든 일은 남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 여성 목욕탕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온전히 목욕탕 안에 있는 우리가 감당해야 한다.


거기다 장애를 가진 분들은 육체적 장애뿐만 아니라 불편한 몸으로 인한 피해의식과 정신적 장애를 동반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분들이 가진 모순적인 면도 함께 겪어야 했으며, 장애인을 전염병을 옮기거나 더러운 사람처럼 생각하는 이들의 따가운 시선과 차가운 말을 들어야 할 때도 있어서 종종 마음이 상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최현진 목사 작품(<그래서 하는 말이에요> 중에서)


나도 피하고 싶은 분이 있었다. 우리는 이분을 투덜이 여사님이라고 부른다. 투덜이 여사님을 뵌 지는 9년 정도 된 것 같다. 긴 머리를 하고 긴 부츠를 신고 전동 휄체어를 타시는 하반신 장애를 가지신 분이다. 처음 뵈었을 때 이분은 다른 분들과 떨어진 곳에서 홀로 목욕하시기를 원하셨다. 그분은 자신의 개인용 목욕세트를 갖고 다니셨고, 자신은 몸에 열이 많아 온탕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하시며, 샤워부스 근처에 따로 앉아서 나중에 등이나 밀어달라고 하셨다. 그 뒤로 나는 이분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혼자 씻기를 좋아하시는 분으로 생각하고 혼자 씻기 좋은 자리를 잡아 드린 후, 다른 분들의 때를 미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이 분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비난을 듣게 되었다. 
 
“저것들은 지들 몸 닦으러 목욕탕 왔나? 이렇게 내 팽개쳐두고 지들만 웃고 떠들고 난리야! 봉사하러 왔으면 봉사를 해야지!” 

뭐 대충 이런 불평이었는데 표현이 너무 직설적이어서 듣는 사람들을 민망하게 만들었다. 7-8명 정도 되는 봉사자가 12-3명 정도의 장애인이 목욕하는 것을 도우려면 정말 힘이 든다. 옷을 벗는 것부터 탕으로 옮겨드리고 나중에 때를 밀어드리고 옷을 입는 것까지 도우려면 정수리에서 흘러내리는 짠물이 눈에 들어가고 입에 들어가도 닦을 틈조차 없을 때가 있다. 목욕봉사를 한 날은 정말 온 몸이 노곤해지곤 한다. 나름 그렇게 애를 쓰고 있는데 그 봉사를 받으시는 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나는 많이 당황스러웠다. 그 뒤로 나는 이분을 더욱 피했다. 다행히 우리 팀엔 이해심 많고 헌신적인 봉사자들이 계셔서 내가 피한 자리를 누군가 항상 채우고 계셨다. 

몇 년쯤 지나 나이를 먹으니 마음이 조금 넓어졌는지 어느 날 나는 투덜이 여사님을 맡아서 최상의 서비스를 해드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투덜이 여사님을 휄체어로 옮겨서 여사님이 원하시는 목욕자리를 골라 드리고 몸을 비누로 깨끗이 닦아 드렸다. 여사님의 몸에 비누칠을 하면서 나는 여사님의 다리가 얼음처럼 차가운 것에 깜작 놀랐다. “여사님, 다리가 너무 차요. 오늘은 온탕에 들어가서 몸을 좀 따뜻하게 하시면 어떨까요?” 투덜이 여사님은 그러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온탕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하반신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여사님은 상체를 들어 올리셔야 온탕으로 들어 갈수가 있는데 온탕은 생각보다 너무 높았다. 나는 “제가 안아서 올려 볼게요. 팔에 힘을 넣어서 엉덩이를 올려보세요!” 라고 말했다. 여사님은 힘들겠다고. 그러다 나도 다친다고 하셨지만 그 망설임에는 따뜻한 온탕에 몸을 담그고 심은 여사님의 마음이 보였다. 나는 다시 힘을 내었고 우리는 온탕으로 진입을 성공했다.  우리가 1초면 들어갈 수 있는 목욕탕 욕조가 이렇게 높아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여사님이 그동안 왜 탕에 들어가지 않으셨는지 알았다. 여사님은 온탕이 싫은 게 아니라 탕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신의 장애를 사람들이 보는 게 싫으셨던 거였다. 나는 투덜이 여사님의 얼음처럼 차가운 다리를 만지면서 그분의 차가운 아픔에 마음이 닿았고, 그분과 함께 온탕의 높이를 넘어서면서 그분이 만나는 세상의 벽을 만났다.

 

그제서야 나는 자존심 강한 그분의 투덜거림에 조금은 이해의 마음이 생기면서 온유해지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투덜이 여사님의 목욕이 끝나고 다시 밖으로 모시고 나올 때 여사님은 환히 웃으며 말씀하셨다. “오늘 내가 호강했네! 몸도 마음도 따뜻해. 너무 고마워!” 투덜이 여사님도 차가운 벽 하나를 넘어서 몸에 온기가 스미니 따뜻한 미소를 지을 수 있고 감사의 말을 나눌 수 있는 분인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목욕봉사는 서로를 벌거벗고 만난다. 봉사를 받는 사람도 봉사를 하는 사람도 벌거벗은 채 자신의 취약한 몸을 드러낸다. 우리를 꾸미는 화려한 의상도 없고 지위와 이름이 새겨진 가슴팍의 명찰도 없다. 얇은 피부 속에 뼈밖에 남지 않아서 조금만 세게 문지르면 부서질 것 같은 나약한 육체를 만지기도 하고, 작은 발목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버린 거대한 육체를 씻기기도 한다. 그분들의 몸을 구석구석 씻기면서 보게 되는 수술자국과 간신히 아문 욕창자국을 만지게 될 때 그들의 지나온 아픔과 현재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통감하게 된다.  

‘누군가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다면 그 사람이 마주한 벽을 같이 넘어보라. 같이 넘으려고 시도하는 순간 그 아픔을 이해할 것이고,  마침내 같이 넘는 순간, 둘은 같이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목욕봉사를 통해 배웠다.

딸이 고등학생이 된 이후, 나는 가끔씩 목욕봉사에 딸을 데려 가곤 했다. 딸이 일에 참여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다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이 일을 하면서 서로 함께 나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더 늘어났다.  


우리는 투덜이 여사님과 뚱뚱이 할머니와 시각장애를 가진 복림할머니의 미소에 대해서 애기할 수 있었다. 목욕탕의 욕조가 보행장애를 가진 분들에게는 얼마나 높은 벽인지 애기할 수 있었고  휄체어를 조작하는 법에 대해서 가르치고 배울 수 있었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건강한 육체와 그로인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었고 공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 아이들과 함께 하는 목욕봉사는 내게 더 값진 시간이 되었다. 

나는 오랜 시간에 걸쳐 배운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 느리게 성장한다. 내가 장애를 가진 분들과 목욕탕에 가는 것은 봉사의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게 배움의 시간이고 성장의 시간이고 사람을 이해하는 시간이었으며, 내가 세상에 진 빚을 갚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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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숙 님은 사별 3년 차로 10살에 아버지를, 20살에는 어머니와 할머니를 한날에 잃었다. 그리고 47살에 남편과 사별하였다. 그녀는 47살에 또다시 찾아온 사별로 인한 슬픔과 고통, 좌절과 희망이 담긴 글을 써서 사별 카페에 공유했고, 그녀의 솔직한 고백과 희망이 담긴 글은 사별 카페의 많은 사별자들에게 공감의 위로와 더불어 희망과 도전을 주었다. 얼마전 사별 카페에서 만난 네 분과 함께 사별 이야기를 담은책 <나는 사별하였다>를 출간하였다. 이제는 사별의 아픔을 딛고, 사는 날 동안 봄바람의 꽃잎 처럼 삶의 풍경 안으로 들어오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인생을 공유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지금은 화성에서 작은 시골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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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애



저녁무렵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김정옥 집사님이 교회에 들렸렀니다. 밥 해 날랐던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있었고, 손엔 들꽃을 한 다발 꺾어 들었습니다. 


집사님은 제단의 꽃을 방금 꺾어온 꽃으로 갈았습니다. 때를 따라 다르게 피어나는 들꽃을 꺾어 집사님은 즐겨 제단을 장식하곤 합니다. 그 일을 당신의 몫으로 여기며 기쁨으로 감당합니다. 제단에 놓이는 들꽃은 그 수수함 하나만으로도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합니다. 


제단에 꽃을 갈은 집사님이 예배당 마당으로 내려서더니 “어휴, 개똥!” 하며 벽돌 몇 개를 집어 들었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모여 노는 곳이다 보니 예배당 마당엔 동네 개들도 적지 않게 모이고 그러다보니 여기저기 개똥이 널리기 일쑤입니다. 며칠만 안 치워도 티가 날 정도입니다. 

 

 


집사님은 벽돌을 가지고 이상한 모양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벽돌 두개를 양쪽으로 놓고 그 위에 벽돌 한 개를 가로질러 얹었습니다. 돌멩이를 두 개 놓고서 그 위에 벽돌을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이내 서너 개의 작은 돌문이 세워졌습니다. 


"아니, 집사님, 그게 뭐하는 거예요?" 


아이들 소꿉장난하듯 돌을 세우는 집사님의 모습이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이게 방애라는 거예요. 이렇게 놓으면 개들이 똥을 안 눠요. 부엌에 솥단지 걸어둔 줄로 아는 거죠." 


돌을 걸어두면 그걸 솥단지로 알고 개들이 똥을 안 눈다니, 그런 일이 다 있을까. 집사님 말이 쉬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못 믿겠다는 표정 앞에 집사님은 


"옛날부터 그랬어요. 작은 강아지들은 몰라도 웬만한 개들은 이걸 보곤 똥을 안 눌 거예요." 하며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시골에 살다보면 가끔 방애와 같은 신기한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언젠가는 승학이네 개의 목에 신발이 여러 날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본적이 있는데, 이유를 물으니 개가 자꾸 신을 물어가면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신을 며칠 목에 매달아 놓으면 그 다음부턴 신을 물어가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방애를 만들어 놓은 다음날 은근히 결과가 궁금해졌습니다. 정말 개들이 알아보고 똥을 안 눴을까, 알아보고 똥을 안 눴다면 그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그래서 '개만도 못한 놈'이란 말이 나왔나. 궁금한 마음이 여간이 아니었습니다.


교회 마당, 어제 방애를 쳐 놓은 그 자리에 갔을 땐 한마디로 어이없는 모습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집사님이 공들여 자신 있게 만들어 놓은 ‘솥단지’ 앞엔 보란 듯이 개똥이 휘갈겨져 있었습니다. 그것도 한 무더기 굵다란 똥이 ~~


‘저런, 저런. 저런 개 같으니라구…….’ 


아직도 그런 효험을 믿고 있는 집사님에게 보다는 그런 것도 모르고 똥을 싸댄 개에게 턱없는 실망이 갔습니다. 하기야 사람도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하는 터에 개에게 그런 것을 요구 한다는 것이 무리이긴 하겠지만요.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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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점의 꽃과 별과 씨알

 


한 점의 꽃
한 점의 별

꽃밭에서 눈 둘 곳 잃을 때
어디 한군데 마음 둘 곳 없을 때

머리위 한 점의 별을 찾듯
발아래 한 점의 꽃을 찾는다

여기 흔한 
한 점의 꽃은

낮아지고 작아진 가장 가까운 얼벗
이 땅에 흩어놓으신 별자리

오늘도 하루를 걷다가
마음이 길을 잃으면 

한 점의 꽃과 별
그 사이에 사는 나를 지운다

숨으로 나를 지우며 
나도 한 점이 된다

한 점의 숨으로 머문
한 점의 빛, 씨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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