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할머니 생일은 생신이라고 하는 거야?"
어디서 들었는지 소리가 엽서 하나를 챙겨들고 와선 '생신'에 관해 묻습니다. 내일 모레가 할머니 생신, 소리는 엉덩이를 하늘로 빼고 앉아 뭐라 열심히 썼습니다. 썼다간 지우고 또 쓰고 그러다간 또 지우고, "뭐라 쓰니?" 물어보면 획 돌아서선 안 보여주고.
며칠 뒤 굴러다니는 봉투가 있어 보니 소리가 썼던 할머니 생일 축하 엽서였습니다. 할머니가 분명 고맙다 하며 엽서를 받았는데 웬일인가 알아보니, 그날 엽서를 쓰다 잘못 써서 다시 한 장을 더 썼던 것이었습니다. 엽서에는 연필로 쓴 큼지막한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할머니 생신을 축하합니다."
'할머니 생신을 축하합니다'라고 쓴 엽서는 엉뚱하게도 다음과 같이 끝나고 있었습니다.
'소리, 규민 섰다'
기껏 할머니 생일을 생신으로 물어 쓴 끄트머리에 가서 '소리 규민 섰(썼)다'라니, 아마도 그 때문에 엄마한테 퇴짜를 맞고 다시 쓴 모양이었습니다.
'소리 규민 섰다'라는 글을 보고선 한참을 웃었습니다. 웃다 말고 드는 생각이 진짜 생일 축하 엽서는 제대로 고쳐 써 할머니께 전해진 그 엽서가 아니라, 잘못 써서 퇴짜를 맞은 이 엽서일 거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번 추석 집에 들르면 잘못 쓴 엽서를 다시 전해드릴 작정입니다. 할머니께 드리는 어린 손녀의 웃음, 무엇보다 그것이 가장 좋은 선물이겠기 때문입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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