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 된 자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 하였는데 이상옥 성도님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하고선 성경책을 어디서부터 읽으면 좋겠느냐고 며느리에게 물었답니다. 아버님의 신앙을 위해 오랜 시간 눈물로 기도하던 며느리는 잠언부터 읽으시라 권했다고 합니다. 유교정신에 투철한 분임을 알기에 잠언이 친숙하리라 여겼던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며느리와 통화한 그날 아침 잠깐의 실수로 안경테를 부러뜨렸는데, 이상옥 성도님은 테 부러진 안경을 한쪽 손으로 붙잡고 잠언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도 귀한 말씀에 ‘취한 듯’ 잠언을 다 읽고 나니 시간이 새벽 두시 반, 잠이 오지 않아 내친 김에 사도신경까지 다 외우고 나니 한밤이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믿음이 귀하고, 조금 더딘 출발을 주님께서 한껏 도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얘기마을> 1991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들에게 구한 용서  (0) 2021.11.02
종소리  (0) 2021.11.01
나중 된 자  (0) 2021.10.31
얘기마을  (0) 2021.10.30
그리운 춘향  (0) 2021.10.29
돼지 값  (0) 2021.10.28
posted by

얘기마을



운전하던 형이 몇 가지 물건을 사느라 봉고차가 문막에 섰을 때, 버스를 기다리던 몇 사람이 다가와 같은 방향이면 같이 갈 수 있겠느냐 물었단다. 초행길이라 잘 모른다 하자 사람들은 어디까지 가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때 할아버지는 “얘기마을까지 갑니다.” 대답했다. 얘기마을이 어디에 있는지 사람들은 몰랐다.


“그런 마을 없는 데요.” 갸우뚱 고갤 돌렸다.


지난번 할아버지 목사님께서 단강을 찾아오실 때 있었던 일이다. 그 얘기를 들으며 우린 배를 잡고 웃었다. 주보 <얘기마을>을 받아보고 계신 할아버지께선 얘기마을이 마을 이름인 줄로 알고 계셨던 것이다.

몇몇 사람들의 가난한 마음 한구석 자리뿐, 지도 위엔 그 어디에도 얘기마을 없답니다. 할아버지.

-<얘기마을> 1989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소리  (0) 2021.11.01
나중 된 자  (0) 2021.10.31
얘기마을  (0) 2021.10.30
그리운 춘향  (0) 2021.10.29
돼지 값  (0) 2021.10.28
올라갈 거예유  (0) 2021.10.27
posted by

그리운 춘향



마당놀이 춘향전을 보며 배를 잡고 웃습니다. 번뜩이는 재치와 기지가 웃음을 쉬지 않게 합니다. 그러나 끝내 눈물지고 말았습니다.


변사또의 회유와 강압에도 그 어떤 변절 없이 사랑하는 이 사랑하는, 사랑하는 이가 자기의 기대를 저버린다 하여도 사랑 버리지 않는 예의 익숙한 춘향이의 모습이, 오늘 우리 믿는 자들에게 필요한 참모습 아닐까. 춘향이가 외워대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새겨지듯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춘향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습니다.

-<얘기마을> 1991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중 된 자  (0) 2021.10.31
얘기마을  (0) 2021.10.30
그리운 춘향  (0) 2021.10.29
돼지 값  (0) 2021.10.28
올라갈 거예유  (0) 2021.10.27
물러가라  (0) 2021.10.26
posted by

하나님으로 불붙은 사람



“그는 천사들의 노래를 듣고 황홀해하고, 하나님의 노여움에 아찔하도록 현기를 느끼며, 창조의 오묘함을 보고 말을 잃고, 하늘의 자비를 두고 노랫가락을 읊은, 하나님으로 불붙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 앞에서 내 모습이 어떤가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다.”(롤런드 베인턴, <마르틴 루터>, 이종태 옮김, 생명의 말씀사, p.301)

주님의 은총과 평화를 기원합니다.

늦가을의 정취가 가득한 나날입니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가끔은 먼 산도 바라보고, 하늘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땅만 바라보며 살면 시야가 협소해지고 감정이 메말라가기 쉽습니다. 먼 데 눈길을 줄 때 중력처럼 우리를 잡아당기는 잡다한 일들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앞으로 나아감과 뒤로 물러남의 통일이었습니다. 주님의 활동의 비밀은 “아주 이른 새벽에, 예수께서 일어나서 외딴 곳으로 나가셔서, 거기에서 기도하고 계셨다.”(막 1:35)라는 말씀 속에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옛날 개역 한글 성경은 ‘아주 이른 새벽에’라는 구절을 ‘새벽 오히려 미명에’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새벽’과 ‘미명’ 사이에 틀어박힌 ‘오히려’라는 부사가 낯섭니다. ‘오히려’는 “생각한 바와는 달리 도리어”라는 뜻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낯섦이 묘한 맛을 냅니다. 이 구절을 떠올릴 때마다 어떤 예외적 행동을 예상하게 됩니다. 어둠과 밝음이 교차하는 그 시간은 뭔가 새로운 것이 도래할 것 같은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 외딴 곳이 숲이라면 오직 새들의 지저귐이 새벽의 고요함을 깰 것이고, 광야라면 바람 소리만이 귓전을 스칠 것입니다.

아,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갈릴리 호숫가에서 맞이한 새벽 시간이 떠오르는군요. 몇 해 전 교우들과 ‘성서의 땅 답사 여행’ 중 잠시 머물렀던 갈릴리 숙소에서 호수는 불과 몇 십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대추야자가 지붕 위로 후둑후둑 떨어지는 소리에 잠을 못 이룬 분도 계셨습니다. 아주 이른 새벽 저는 호숫가로 나가 누군가 내놓은 흰색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찰랑거리는 물소리를 들었습니다. 호수에 배를 띄우고 언덕에 앉은 사람들에게 가만가만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큰 물결이 일어나 어쩔 줄 몰라 하는 제자들을 향해 물 위를 걸어가시던 주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십자가 사건 이후 갈릴리로 돌아와 밤새 그물을 던졌으나 빈 그물만 건져 올린 제자들의 쓸쓸함도 짙게 느껴졌습니다. 아주 고요하게 찰랑대며 기슭으로 밀려오는 물소리가 마치 제자들의 수런거림처럼 들렸습니다. 지금도 마음이 스산할 때면 그 호숫가에서 맛보았던 고요함이 그리워집니다. 아, 그리고 갑자기 물이 흔들리면서 수달처럼 보이는 동물이 나와 내 곁을 재빠르게 스쳐지나가던 광경도 떠오르네요. 교우들과 함께 성서의 장소들을 다시 답사할 수 있는 시간이 속히 왔으면 좋겠습니다.

엊그제 강화도에 다녀왔습니다. 심방 차 간 것이지만 오가는 길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활짝 핀 억새가 바람을 맞아 나붓거리고 있었고, 아직 베지 않은 벼들도 추수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비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고구마를 수확한 농부들이 박스에 고구마를 담는 광경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미 말라버린 고춧대에 붉은 고추가 달려 있었습니다.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병이 들어 수확을 포기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다음 일정이 있어 가을 풍경을 더 눈에 담지 못하고 황급히 돌아온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분주함은 우리 삶을 빈곤하게 만듭니다. 경제적 빈곤을 말하는 게 아니라 정서적 빈곤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아름다움과 만나기 어렵습니다.

 


도반이며 형인 시인 고진하 목사가 얼마 전 <야생초 마음>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강연 차 서울에 올라온다 하여 인사동에서 만나 저녁을 먹었습니다. 밥값도 형이 냈습니다. 얼마 전 박인환 문학상을 받았는데 상금이 꽤 많았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주 흔쾌히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가 제게 건네준 책은 참 예뻤습니다. 스물 네 개의 야생초에 얽힌 이야기를 다각도로 들려주는 책이었습니다. 그 책이 더욱 빛난 것은 그의 딸인 화가 고은비가 정성을 다해 그린 들풀 그림 때문이었습니다. 화가는 각각의 식물들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발견하기 위해 발품을 팔고, 그것을 꼼꼼히 살펴보고 만져보면 저절로 뭘 그려야 할지가 떠올랐다고 말합니다. 그림 하나하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저자는 “지구의 다른 생명체들을 위해 자기 존재를 아낌없이 선물로 내어주는” 그 식물들을 일러 성스럽고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자연을 바라보는지를 보여주는 구절이 있습니다.


“텃밭에서 새싹을 틔우는 생명의 기척을 내 몸을 낮춰 주의 깊게 바라보는 일, 꽃몽우리가 열린 후 씨앗으로 여물기까지의 수고로운 과정을 지켜보며 박수를 보내는 일. 그렇다. 지구별 위에서 공생한다는 것은 그렇게 너와 나를 살피고 응원하는 일. 그런 알뜰살뜰한 살핌과 응원은 결국 너와 나를 살게 하는 에너지원이 아니던가. 이것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식물도 오감五感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의 섭생을 살피고, 무심한 듯한 자비로 지구라는 광대한 몸의 세포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며 그 창조적 자발성을 발휘하지 않던가.”(고진하 글/고은비 그림, <야생초 마음>, 디플롯, p.8-9)

 

 


일을 하다가도 책상 위에 놓인 그 책을 무심코 집어 들어 이곳저곳 들춰보다보면 “대지의 미소인 꽃들처럼 ‘쉴 새 없이 명랑하자!’고” 사람들을 꼬드기는 그의 마음이 떠올라 저절로 흐뭇해집니다. 각박한 세상에 ‘쉴 새 없이 명랑하자’고 말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싶지만, 날마다 징징대며 살자고 말하는 것보다는 얼마나 좋습니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상에 가득 찬 신비와 기적을 보지 못하기에 그들은 빈곤합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신의 허기증에 시달립니다. 밑 빠진 독에 아무리 물을 부어도 채울 수 없습니다. 바닥짐(ballast)이 없으면 배는 작은 파도에도 일렁입니다. 옆질과 키질을 견디지 못할 때 배는 좌초되기 쉽습니다. 마음의 바닥짐이 없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소한 일에도 화를 벌컥 내고, 작은 차이를 용납하지 못합니다. 자기를 통제하지 못하기에 실수 연발입니다. 능숙한 뱃사람이 넘노는 파도를 타고 가야 할 목적지로 나아가는 것처럼, 믿음의 사람은 우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인생의 파도를 타고 나아갑니다.

이번 주일은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기념주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비텐베르크의 성채 교회 문에 가톨릭의 면벌부 판매를 비판하는 95개 조의 신학 논제를 게시했습니다. 루터는 그때까지만 해도 자기의 행동이 어떤 파문을 일으킬지 예측하지 못했음이 분명합니다. 알았더라면 그런 싸움을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있지만 때로는 ‘모름’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때도 있습니다. 베이징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개를 퍼덕임으로 뉴욕에 폭풍우가 몰아칠 수도 있다지요? 이것은 물론 극단적인 예이긴 합니다만, 세상의 모든 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으로 새겨도 될 것입니다. 95개 반박문의 제1조는 의미심장합니다. “우리의 주요 선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 4:17)고 하신 것은 신자의 전 삶이 돌아서야 함을 명령한 것이다.” 어찌 보면 평범한 듯 보이는 명제입니다. 그러나 이 선언을 관통하고 있는 아주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신자의 전 삶이 돌아선다는 것은 욕망에 휘둘리던 옛 삶과 결별한다는 말입니다.

개혁되어야 하는 것은 시스템으로서의 종교만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과 지향의 변화가 더 근원적입니다. 물론 제도 혹은 형식이 내용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기에 제도를 바꾸는 것도 중요합니다. 시대가 바뀌면 시대정신도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대가 찢어지기 쉽습니다. 각 교단이 보고한 통계를 보면 신자들의 수가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가파른 하락세가 심각할 정도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과연 교회의 미래가 있겠느냐고 우려 섞인 음성으로 묻습니다. 신학교는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시절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지금은 기회의 시간입니다. 비본래적인 것들을 덜어내고 본래적인 가치를 확고하게 붙들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가을이 깊어가면서 나뭇잎이 하나 둘 떨어집니다.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나면 나무는 졸가리만으로 겨울을 견딥니다. 잎이 진 후에야 우리는 나무의 상처와 옹이를 살피게 됩니다. 상처는 나무가 견뎌온 세월의 풍경입니다. 고급 가구를 만들 때 귀하게 쓰이는 먹감나무 무늬는 안으로 스며든 나무의 상처입니다.

지금 교회의 내상이 깊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나 예수 정신을 저버린 목회자들로 인해 세상이 소란스럽습니다. 교회에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암담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2,000년 동안도 교회는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앞을 향해 전진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실수까지도 받아들여서 당신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릇된 것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하는 동시에, 바른 것을 옹골차게 붙드는 것입니다. 결과는 주님께 맡기면 됩니다. 쓸데없는 싸움에 힘을 다 빼느니 차라리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한 창의적 노력을 하는 게 낫습니다.

이제 서서히 기지개를 펴야 할 때입니다. 절망의 말, 비평의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용감한 사람은 지금 여기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멋진 일에 초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정과 환대의 공간을 넓히고, 하늘빛을 이 눅진눅진한 일상 속에 끌어들이는 일이야말로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이들의 소명이 아닐까요? 힘겨운 시간을 견디고 계신 분들을 위해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용감하게 주님을 신뢰하며 생명과 평화의 씨를 뿌리며 사십시오. 우리의 방패이신 주님이 우리를 지켜주시리라 믿습니다. 

2021년 10월 28일
담임목사 김기석 드림

posted by

돼지 값

 


그동안 외상으로 먹인 사료 값이 삼십만 원이 넘었는데, 그렇게 키운 돼지를 사료 값인 삼십만 원에도 안 사간단다.


윤제숙 성도님. 열 마리도 넘게 난 새끼를 하루 다르게 크는 재미에 키우긴 모두 키웠는데, 결국은 헛고생했다며 차라리 웃고 만다.


빨리 명절이나 돌아와야 동네에서라도 잡아먹을 텐데 명절은 멀고, 게다가 혼자만 돼지를 키우는 것도 아니다. 


주인 속도 모르고 때 되어 배고프면 우리에서 뛰쳐나올 듯 시끄러운 돼지들이라니.

-<얘기마을> 1989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얘기마을  (0) 2021.10.30
그리운 춘향  (0) 2021.10.29
돼지 값  (0) 2021.10.28
올라갈 거예유  (0) 2021.10.27
물러가라  (0) 2021.10.26
조롱하듯  (0) 2021.10.25
posted by

올라갈 거예유


“올라갈 거예유. 이것 다 때문 올라갈 거예유.”


허름한 광이며 부엌 빼곡했던 나무 단이 제법 허술해졌습니다. 연이은 매운 추위 수은주 내려가듯 키가 줄었습니다.


겨울이 언제 다 갈지 아직 모르는데 나무 모자라지나 않을까 할머니께 물었더니, 답을 준비해 놓은 듯 대답이 쉬웠습니다.


“올라 가다뇨?”
“나무 다 때문 서울 자식 네로 올라가든지, 산으로 올라가든지 할 거예유.”


유난히 춥고 유난히 눈 많은 이번 겨울, 홀로 살며 일일이 불 지펴 추위를 쫓아야 하는 할머니의 아픔과 외로움이, 자식 네든 산으로든 장작 떨어지면 어디든 올라 갈 거라는 할머니는 말씀에 아릿하게 배어 전해져왔습니다.

-<얘기마을> 1991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운 춘향  (0) 2021.10.29
돼지 값  (0) 2021.10.28
올라갈 거예유  (0) 2021.10.27
물러가라  (0) 2021.10.26
조롱하듯  (0) 2021.10.25
말씀을 읽다 가슴이 미어지는 건  (0) 2021.10.24
posted by

물러가라

이종후 작, 봉기[蜂起] 



기쁨도 잠시, 우리는 불안에 사로잡혔다. 온 식구가 예배당에 나온 그날 밤 늦게까지 잠 못 이루던 아주머니가 ‘쾅’하고 울어대는, 마치 천장이 무너지는 듯한 괴상한 소릴 들은 것이다. 


놀래 온 집안 식구를 깨우고, 플래시를 들고 온 집안을 둘러보는 등 수선을 피웠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불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잠을 설쳐야 했다. 


듣는 사람들 마음속엔 개종을 허락지 않으려는 역사로 다가왔다.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낮에 예배를 드렸지만 밤중 괴상한 소리는 여전히 났다.


이번엔 남편도 그 소리를 들었다. ‘쾅’하는 소리에 온 집안이 울릴 정도였다. 또 다시 온 식구가 밤잠을 설쳐야 했다.

괴상한 소리의 이유는 다음날 밝혀졌다. 한 모임에 나갔던 남편이 그 얘기를 조심스레 했고, 그 얘기를 들은 사람으로부터 슬래브 집은 날이 추우면 으레 그런 소리가 나는 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몇 군데 알아보니 다들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미심쩍어 하는 아주머니를 이번엔 남편이 단호하게 타이른다. 그제야 남편은 간밤 일을 웃음으로 얘기한다.


맘이 불안해 성경을 읽고 있던 중 부인이 들었다는 그 쾅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 소리가 보통소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일이 그 지경에 이르자 남편은 마당으로 뛰어 나가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는 것이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아 물러가라.”


얘기를 들은 서울 사는 동생이 전화로 가르쳐 준 대로였다. 앞집 할머니가 잠자다 말고 놀랬을 거라는 말에 우리는 배를 잡고 웃었다. 남아있던 불안한 마음의 기운을 모두 털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뜻밖의 하찮은 일도 때로는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는 법, 하마터면 걸려 넘어질 뻔했던 장애물을 잘 넘게 되어 다행이었다. 이젠 더 큰 걸림돌이 가로 막아도 능히 건너 뛸 수 있으리라. 한 새벽, 어둠을 향해 “물러가라!” 외칠 그 믿음이 있는 한.

-<얘기마을> 1991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돼지 값  (0) 2021.10.28
올라갈 거예유  (0) 2021.10.27
물러가라  (0) 2021.10.26
조롱하듯  (0) 2021.10.25
말씀을 읽다 가슴이 미어지는 건  (0) 2021.10.24
토끼몰이  (0) 2021.10.21
posted by

시월의 기와 단장





그 옛날에는 지게로 등짐을 지고 올랐다 한다
나무 사다리를 장대처럼 높다랗게 하늘가로 세워서

붉은 흙을 체에 쳐서 곱게 갠 찱흙 반죽
기왓장 사이 사이 떨어지지 말으라며 단단히 두었던

50년 동안 지붕 위에서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살다가
도로 땅으로 내려온 흙덩이가 힘이 풀려 바스러진다

이 귀한 흙을 두 손으로 추스려 슬어 모아
로즈마리와 민트를 심기로 한 화단으로 옮겼다

깨어진 기와 조각은 물빠짐이 좋도록 맨 바닥에 깔았다
그림 그리기에 좋겠다는 떡집에서 골라가도록 두었다

기와를 다루는 일은 서둘러서도 아니 되고
중간에 지체 되어서도 아니 되는 느림과 호흡하는 일

일일이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는 암막새와 수막새
더러는 소나무가 어른 키만큼 자란 기와 지붕도 보았다

기와를 다루는 일은 일 년 중에서도 시월이 참 좋다
덥지도 춥지도 않으며 비바람도 잠잠한 하늘 품에서

칠순의 고개를 넘긴 두 어른이 민살풀이 장단에 맞춰
정중동 동중정 넘실넘실 기와 고개를 잘도 넘나드신다

'신동숙의 글밭 > 시노래 한 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 폭의 땅  (0) 2021.11.08
가을잎 구멍 사이로  (0) 2021.11.01
시월의 기와 단장  (0) 2021.10.26
목수의 소맷자락  (0) 2021.10.21
  (0) 2021.10.14
하늘은 애쓰지 아니하며  (0) 2021.10.08
posted by

조롱하듯



모든 게 올랐다. 정말 모든 게 겁나게 올랐다.


‘제사상 차리기도 어려워졌다’는 말이 빈 탄식이 아니다. 
단하나, 농산물만이 멀뚱멀뚱 한다. 바보처럼. 


무엇 그리 억센 놈에게 발목 잡혔는지 땀 벅벅 한숨 벅벅 농산물만 남겨두고, 비웃듯 조롱하듯 모든 게 올랐다.

-<얘기마을> 1991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올라갈 거예유  (0) 2021.10.27
물러가라  (0) 2021.10.26
조롱하듯  (0) 2021.10.25
말씀을 읽다 가슴이 미어지는 건  (0) 2021.10.24
토끼몰이  (0) 2021.10.21
통곡소리  (0) 2021.10.20
posted by

말씀을 읽다 가슴이 미어지는 건



“축제의 모임. 환희와 찬미소리 드높던 그 행렬, 무리들 앞장서서 성전으로 들어가던 일,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미어집니다.”(시 42:4) 

말씀을 읽다 가슴이 미어지는 건, 시인의 마음 충분히 헤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떠나간 이 모두 돌아와 함께 예배할 그날은 언제일지, 이 작은 땅에서 그려보는 그날이, 옛일 그리는 옛 시인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얘기마을> 1991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러가라  (0) 2021.10.26
조롱하듯  (0) 2021.10.25
말씀을 읽다 가슴이 미어지는 건  (0) 2021.10.24
토끼몰이  (0) 2021.10.21
통곡소리  (0) 2021.10.20
하나님 하고 못 사귄  (0) 2021.10.18
posted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