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하늘, 땅, 사람 이야기104 우리는 지지 않는다 김기석의 톺아보기(25) 우리는 지지 않는다 차이를 내포한 반복 손석춘 선생님, 하염없이 내리는 장맛비를 바라보면서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오규원 선생의 시구가 떠올랐습니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강은 젖지 않는다. 오늘도/나를 젖게 해놓고, 내 안에서/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가는/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 부분) 혼자 비감해져서 “비가 온다, 비가 와도/젖은 者는 다시 젖지 않는다.”는 마지막 연만 되뇌고 있습니다. 뭔가를 적어야 한다는 생각에 컴퓨터를 켜놓고 앉아 있지만 모든 언어가 물살에 떠내려갔는지 아니면 물기를 머금어 무거워진 것인지 도무지 떠오르질 않습니다. 뜬금없이 ‘슬픔’이라는 단어만 또렷하게 떠오릅니다. 나이가 들면 젊은 날 나를 온통 .. 2016. 3. 16. 교회는 자동세탁기가 아니다 김기석의 톺아보기(23) 교회는 자동세탁기가 아니다 손석춘 선생님, 뵌 지 오래되었습니다. 경칩에서 춘분을 향해가는 이즈음 봄기운을 잘 타고 계신지요? 며칠 전 저는 겨우내 입었던 내복을 벗었는데, 그 때문인지 몸에 한기가 들어 잔뜩 옹송그린 채 책상 앞에 앉아 있습니다. 부실하기 이를 데 없는 저의 몸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래도 매일 물이 오르고 있는 산수유나무와 개나리와 눈맞춤하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어 흘낏흘낏 창밖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잠포록한 날씨 탓인지 제가 늘 눈길을 주고 말을 건네는 삼각산이 지금은 보이지 않습니다. 높은 빌딩과 거대한 크레인만이 제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있음’과 ‘없음’의 경계가 무엇인가가 새삼 떠올랐습니다. 요 며칠 만나는 사람마다 일본 동북부에서 일어난 지진과 해.. 2016. 3. 1. 나란히 걷는 법을 배울 때 김기석의 톺아보기(22) 나란히 걷는 법을 배울 때 “길은 처음부터 있는 것이 아니다. 자꾸 가다보면 생기는 것이다.” 루쉰의 이 말과 처음 만난 것은 80년대 초반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말을 실감하고 있다. 20여 년 전 임수경과 문익환 목사는 갈 수 없는 땅, 가서는 안 되는 땅, 길이 끊긴 땅에 들어갔다. 그들에게는 반역자라는 붉은색 찌지가 붙었다. 하지만 그들이 걸었던 그 자리에 난 발자국을 따라 사람들이 오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길이 열렸다. 그 길은 시작은 꿈이었다. 이사야는 주전 8세기,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충돌하고 있던 그 암울한 시대에 이집트에서 앗시리아로 통하는 큰길을 보고, 이스라엘과 이집트와 앗시리아, 그 세 나라가 이 세상 모든 나라에 복을 주게 될 것을 꿈꾸었다... 2016. 2. 22. 순례자로 산다는 것 김기석의 톺아보기(22) 순례자로 산다는 것 ‘즐거운 망각’의 탐닉 에덴 이후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누구나 시간에도 이빨이 있음을 자각한다. 시간은 우리 몸과 영혼에 지우기 어려운 흔적을 남긴다. 시간이 우리에게 새겨놓은 무늬를 사람들은 문화라고도 부른다. 사람의 모듬살이는 문화를 형성하지만, 그 문화는 동시에 우리의 존재조건이 되기도 한다. 외부 세계와 낯을 익히는 과정, 그것이 삶이다. 나의 ‘있음’은 늘 ‘~이다’라는 술어로만 표현된다. 나의 있음은 늘 ‘더불어 있음’이다. 누군가와 맺는 관계 속에서만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추한다. 사람은 신 앞에 선 단독자이지만, 그래서 늘 우주의 중심이지만, 그의 있음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다른 이들의 존재이다. ‘관계맺음’이야말로 인생이다. 문제는 이 관.. 2016. 2. 10. 행동하라는 요구 김기석의 톺아보기(18) 행동하라는 요구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주장의 기본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권위 때문에 맹목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데 있지 아니하고, 그 변혁하고 자유하게 하는 힘을 인식하는 데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체적인 경험 속에서 인식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그 말씀은 참으로 듣는 사람에게 무엇인가 작용하기 때문이다.(토마스 머튼) 속이 허할수록 말은 부박해진다 속에서 들끓어 오르는 사념이 덧없게 느껴지고, 말의 부질없음이 아리게 다가올 때마다 나는 고진하 시인의 시 을 읽는다. 마치 해독제를 들이키듯…. 하루종일 입을 封하기로 한 날, 마당귀에 엎어져 있는 빈 항아리들을 보았다. 쌀을 넣었던 항아리, 겨를 담았던 항아리, 된장을 익히던 항아리, 술을 빚었던 항아리들, .. 2016. 1. 29. 몽상과 꿈 사이에서 김기석의 톺아보기(17) 몽상과 꿈 사이에서 일주일에 하루, 새벽 기상 시간에 매이지 않기로 한 아침, 모처럼의 숙면을 꿈꿨지만 몸에 내장된 기억은 의지보다 강했다. 어김없이 일찍 눈이 떠졌다. 그래도 침대 속에서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따라가며 30분 쯤 뒹굴거리는 호사를 누렸다. 아내가 아침 6시만 되면 트는 FM 라디오 방송을 대신 틀고, 아침을 준비하여 함께 먹고, 설거지까지 마치고 나니 문득 세월의 무상함이 저릿하게 느껴졌다. 속으로 ‘지금 이곳이 참 낯설다’ 하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익숙한 노래가 흘러 나왔다. 존 레논의 이었다.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봐요, 하려고만 한다면 어려운 일은 아니죠. 저 아래 지옥이 없고, 저 위로 푸른 하늘만 있을 뿐. 상상해봐요,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2015. 12. 24. 힘내라, 젊은이들 김기석의 톺아보기(18) 힘내라, 젊은이들 입동이 지난 후 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뒤쳐지지 않으려고 재바르게 살다가 마음이 묵정밭으로 변해버린 이들일수록 영문모를 영혼의 헛헛함으로 인해 울적해지는 때이다. 그래서인가? 노란 은행잎이 소복히 쌓인 거리를 걷노라면 그 따스한 노란빛이 마치 위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쌀쌀한 초겨울 풍경에 눈길을 주다가 이상하게 거리가 살짝 들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그 활기가 수능시험을 치른 이들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알았다.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것 같은 홀가분함으로 거리를 채우고 있는 젊은이들. 옅게 화장한 얼굴이 쑥스러운지 서로 바라보며 까르르 웃는 여학생들, 어른들의 세계에 틈입하기 위한 절차인지 염색과 퍼머로 멋을 낸 남학생들,.. 2015. 11. 13. 오랜 외로움을 넘어 김기석의 톺아보기(17) 오랜 외로움을 넘어 - 도로시 데이의 《고백》- “우리는 모두 숙명적으로 외로움을 느낀다. 이 외로움 앞에 내놓는 이번 삶의 유일한 답은 공동체다. 함께 살고,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 사랑하는 그 형제와 공동체를 이루어 가까이 살아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보여야 한다”(425쪽). 불안의 시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한 활동가이자 명상가’, ‘지난 100년 동안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톨릭 신자’, ‘미국의 마더 테레사’라고 일컬어지는 도로시 데이, 월간 잡지 을 창간했고,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을 열었던 이 전사적 인물의 자서전이 《고백》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그런데 자서전의 원제는 《.. 2015. 11. 5. ‘회심이 뭐예요?’ 김기석의 톺아보기(16) ‘회심이 뭐예요?’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나서도 여전히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찾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한 지인은 자기의 번민을 파스칼의 말을 빌어 표현했다. “저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그의 눈빛은 먼 허공을 더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실존의 심연을 응시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런 아득함 앞에 선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문득 필화사건으로 정보부에서 겪었던 시달림의 후유증을 끝내 극복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시인 박정만이 떠올랐다. 해 지는 쪽으로, 나마저 없는 저쪽 산마루로 가고 싶다고 말하던 시인은 에서 “나는 사라진다/저 광활한 우주속으로.”라고 노래한 후 우리 곁을 떠나갔다. 산다는 게 이렇게 힘겹고 눈물겹다. 무정한 세상에서 살다가 이름 없는 .. 2015. 9. 22. 이전 1 ··· 7 8 9 10 11 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