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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하늘, 땅, 사람 이야기104

이 성전을 허물라 김기석의 톺아보기(15) 이 성전을 허물라 모두가 안에서 단란하고 오붓한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 같은 데, 홀로 문 밖에 내몰린 듯싶어 외로움에 사무쳤던 때가 있었다. 그때 먼 곳에서 들려왔던 교회 종소리가 한 순간 내 삶의 방향을 바꿔놓았다. 종소리에 이끌려 찾아간 교회, 그곳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 속에 머물고 계신 분을 만났다. 추운 겨울 아침, 기도실 마룻바닥에 햇살이 비쳐들면 곳곳에 보석처럼 빛나는 것이 보였다. 새벽마다 성도들이 흘리고 간 눈물이 얼어 수정처럼 보였던 것이다. 결핍과 고통이 아름다움일 수도 있다는 미학적 깨달음에 가슴 벅차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후, 그 시절은 ‘한 여름 밤의 꿈’처럼 우련한 풍경으로만 남아 있다. 어느 동네든 성채처럼.. 2015. 9. 9.
소멸하는 것을 통해 불멸을 보다 김기석의 톺아보기(14) 소멸하는 것을 통해 불멸을 보다 땅이 있는 한,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아니할 것이다. (창세기 8:22) 1. 시간 여행자인 인간은 순환하는 계절의 리듬을 타고 산다. 그 속에는 패턴이 없는 무질서에서 패턴을 만들어내신 큰 생명의 숨결이 있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의 규칙적인 패턴에 따라 번갈아 찾아오는 낮과 밤, 여름과 겨울에 몸과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그 리듬을 타고 살 때 삶은 흥겹고, 그 리듬을 거스를 때 삶은 힘겹다. 지금은 우주의 리듬과 문명의 리듬이 충돌하는 시대이다. 몸이 고단하고 심성이 거칠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사람들은 왜 시를 쓸까? 시간 여행길에 만난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붙들기 .. 2015. 8. 21.
예수라는 원천에 이르고 싶다 김기석의 톺아보기(12) 예수라는 원천에 이르고 싶다 1. 매미 울음소리가 한참이던 그해 여름, 나는 수영을 배워야한다고 생각했다. 들판 저편, 논배미 곁에 있던 샘을 무시로 뛰어들던 동네 형들의 동작은 날렵했다. 발판을 굴러 한 바퀴 공중제비를 돌며 물에 뛰어드는 그 멋진 비상을 둑에 앉아 감상만 해야 했던 나는 아무도 나와 놀아주지 않는 어느 여름 날 수영학습을 감행했다. 집 앞 논배미 옆에 있던 둠벙에 뛰어든 것이다. 양팔을 바람개비처럼 돌리기만 하면 몸이 앞으로 나갈 줄 알았는데, 어라, 그게 아니었다. 내 몸은 납을 달아맨 추처럼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 죽는구나’ 생각하며 정신이 아뜩해지는 순간, 어떤 강력한 손길이 내 머리채를 잡아 올렸다. 밭에서 농약을 치고 있던 형이.. 2015. 8. 12.
영혼의 둔감을 경계하며 기다릴 뿐 김기석의 톺아보기(11) 영혼의 둔감을 경계하며 기다릴 뿐 교회 종소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도 기독교를, 아니 기독교인들을 싫어했던 내가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다니. 그날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세상 밖으로 떠밀린 자의 고적감에 짓눌려 죽음을 생각하고 있던 내게 저녁 예배를 알리는 교회 종소리는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있던 근원으로부터의 부름이었다. 아니 어쩌면 유수지에 얼비치고 있었던 석양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잔잔한 물결 위에 드리운 부드러운 햇살은 비현실적인 평안함을 내게 안겨 주었다. 그때 교회 종소리가 들려왔고, 마침 어머니가 내 곁을 지나가고 계셨다. 문득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내가 기독교와 맺은 인연의 시작이다. 나름대로 꽤 많은 월급을 받던.. 2015. 8. 5.
대지에서 솟아나는 영성의 향기 김기석의 톺아보기(10) 대지에서 솟아나는 영성의 향기 -장 피에르 카르티에, 라셀 카르티에의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모든 것이 기적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기적 안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또한 영원은 지금 이 순간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나의 종교입니다. 어쨌거나 나는 신이 생명이며, 그것이 바로 풀들을 밀어 올리고 나무들을 자라게 하는 생명력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자각하고 경험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영속적인 기적에, 그 생명력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신을 모독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39-40쪽) 경계인의 운명 자기의식을 가진 인간은 늘 이곳과 저곳 사이를 떠돈다. 일상적으로 직면하는 현실이 자기 동일성에 대한 내적 확신을 뒤흔들기 .. 2015. 7. 30.
영혼은 날고 싶다 김기석의 톺아보기(9) 영혼은 날고 싶다 -파커 J. 파머의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 “온전함은 완전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깨어짐을 삶의 불가피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온전함의 의미를 깨닫게 된 후 나는 우리가 참화를 새로운 생명의 온상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인간의—나의, 당신의, 우리의—온전성이 헛된 꿈은 아니라는 희망을 간직하게 되었다.” (파커 J. 파머) “무대 위에서 내가 맡은 역할을 하는 동안 내 참자아는 내 안의 가장 깊은 가치와 믿음, 그 부서지기 쉬운 희망과 열망을 세상이 부숴버릴까 두려워 무대 뒤에 숨어 있었다.”(파커 J. 파머) 분리된 삶 구름이 짙게 드리운 도시의 뒷골목을 걷노라면 영화 의 주인공인 꽁스땅스의 씩씩한 걸음걸이가 떠오를 때가 있다. 내면의 .. 2015. 7. 23.
이카로스를 그리며 김기석의 톺아보기(8) 이카로스를 그리며 석양에 비낀 해가 유난히 쓸쓸하게 다가오는 것은 올해도 역시 엄벙덤벙 설미지근하게 살아왔다는 자책 때문일 것이다. 누군들 알차게 살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시간 여행자인 우리는 마치 버릇인양 현재를 누리지 못한다. 세상은 요란한데, 마음은 고적하기만 하다. 16세기의 벨기에 화가인 브뤼겔의 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화가는 오비디우스의 《변신》에 나오는 이야기를 모티프 삼아서 삶에 대한 자기 나름의 이해를 화폭에 담고 있다. 미노스 왕의 미궁을 탈출하기 위해 밀랍으로 이어붙인 날개를 달고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던 이카로스는 아버지 다이달로스의 충고를 무시하고 태양에 다가갔다가 밀랍이 녹아내리는 바람에 그만 바다로 추락하고 만 인물이다. 어쩌면 신화는 신의 세계를 넘보.. 2015. 7. 16.
한 걸음 속에 인생이 있다 김기석의 톺아보기(7) 한 걸음 속에 인생이 있다 삶이 암담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흐르는 모래 속에 빠져드는 것 같은 아득한 무력감, 마치 절벽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아스라한 공포가 밀려오면 세상은 아연 잿빛으로 변한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순간 호기롭게 지내던 시절은 가뭇없이 스러지고 늪과 같은 시간이 시작된다. 그 계기는 다양하다. 예기치 않은 질병이나 사고, 이별의 쓰라림이나 실패가 가장 흔한 원인이지만 전혀 계기가 없는 경우도 있다,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게오르그 잠자처럼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벌레로 변한 자기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늪과 같은 시간을 거쳐 온 한 젊은이의 고백을 들었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그는 밤마다 찾아.. 2015. 7. 8.
마음에 핀 꽃 김기석의 톺아보기(6) 마음에 핀 꽃 삶의 특색은 ‘마주함’에 있다. 마주함의 양상을 일러 관계라 한다. 인간관계의 아름다움은 배려에 있다. 배려는 마주 선 이를 위해 마음을 쓰는 것, 곧 제멋대로 하지 않음이다.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 있는 곳은 평화롭다. 반면 매사에 자기중심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사람은 불화를 일으킨다. 세월이 가도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이들이 많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영혼이 미성숙한 이들이다. 세월이 가도 자아의 한계에 갇혀 이웃을 향해 한 걸음도 내닫지 않는 이들을 보며 ‘원판 불변의 법칙’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사람의 본바탕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웃자고 하는 말이겠지만 씁쓸하다. 막무가내로 자기 잇속을 챙기는 사람들, 앞뒤 가리지 않고 뼛성을 내서 주변 사람들.. 2015. 6.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