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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26

‘불임’인가 ‘불모’인가 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12) ‘불임’인가 ‘불모’인가 같은 히브리어 본문에서 서로 다른 이해를 반영하는 두 가지 번역이 나올 때 일반 독자들은 퍽 의아해 한다. 그러나 같은 히브리어 문장이 그렇게 서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처음 느꼈던 그 의아함은 히브리어에 대한 폭넓고 깊은 이해로 바뀔 것이다. 열왕기하 2장 19-21절을 과 이 어떻게 달리 번역하고 있는지 비교해 보고 그렇게 달리 번역된 배경을 살펴보자.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19절) …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21절)” “저희 성읍은 매우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이 나빠서 이 고장에.. 2015. 3. 31.
“에돔에는 내 신을 던지리라” 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10) “에돔에는 내 신을 던지리라” 이것은 틀림없이 어떤 비유적인 뜻을 지니고 이는 표현인데, 그 뜻을 알아내기가 어려워 전통적인 번역들은 대부분 히브리어 글자의 뜻을 그대로 번역하였다. 우리말 과 도 예외가 아니다. 문제는 이렇게 글자대로 정확하게 번역해 놓았는데도 우리말 독자들에게 이것이 아무런 뜻을 전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불행하게도 때로는 엉뚱한 뜻을 연상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구절은 “모압은 내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내 신을 던지리라 불레셋아 나를 인하여 외치리라 하셨도다”(시편 60:8, 개역성서)라는 문맥 안에 들어 있다. 가능한 한 뜻을 옮겨보려고 애쓴 에는 같은 본문이 “모압은 발을 대야로 삼고 에돔은 신 벗어 둘 신장으로 삼으리라. 블레셋을 쳐부수.. 2015. 3. 18.
나를 개 대가리로 아시오? 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9) 나를 개 대가리로 아시오? 사울 왕실과 다윗 왕실 사이에 오랫동안 싸움이 계속되었다. 다윗 왕실은 갈수록 강해졌고, 사울 왕실은 갈수록 약해졌다. 사울의 뒤를 이어 이스보셋이 왕이 되긴 했지만 실권은 사울 밑에서 사령관을 지내던 아브넬 장관이 쥐고 있었다. 실권을 과시하려는 의도에서 아브넬 장관은 사울의 후궁이었던 리스바를 범하였다. 이스보셋이 자기 아버지의 후궁을 범한 아브넬을 꾸짖자 아브넬은 몹시 화를 내며 항의한다. “아브넬은 몹시 화를 냈다. 나를 개대가리로 아시오? 이 날까지 나는 당신의 선친 사울의 왕실과 그 동기간과 동지들에게 충성을 바쳐 당신을 다윗의 손에 넘기지 않고 있는데, 당신은 오늘 하찮은 여자 일로 나를 책잡으시오?”(공동번역, 사무엘하 3;8).. 2015. 3. 12.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8)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 독립 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 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한강(漢江)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白頭山) 높았다 선열(先烈)하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 날을 길이 빛내자” 독자는 서로 다른 견지(見地)에서 본문을 본다. 그가 어디에 서서 그 본문을 보는가에 따라 번역은 축소(縮小)이기도 하고, 확대(擴大)이기도 하고, 굴절(屈折)이기도 하다. 원문과 번역문에 사용된 낱말의 의미 분야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원문의 단어와 대응어의 단어가 의미론에서 완전히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번역은 어떠해야 한다는 온갖 규정이 언어체험이 각기 다른 다양한 독자의 서로 다른 접근 앞에서는.. 2015. 3. 2.
한 남자가 자기 형제에게 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4) 한 남자가 자기 형제에게 1. 성서 히브리어 본문에 니오는 “이쉬 엘-아키브”(ish el-achiv)라는 표현은 글자대로는, “한 남자가 자기 형제에게”라는 말이다. 이 표현은 일반적으로는 동사를 수식하는 부사적 기능을 지닌 것이어서 우리말 번역에서는 부사 “서로”라는 말로 번역이 된다. 다음 예에서 그 현상을 볼 수 있다. 《개역》 창세기 37:19 “[요셉의 형들이]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개역》 창세기 42:21a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하였도다.” 《개역》 출애굽기 16:15a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개역》 출애굽기 25:20 “그룹들은 그 날개를 .. 2015. 1. 22.
벽에 소변 보는 자 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3) 벽에 소변 보는 자 좀 지저분한 말이 되어 주저스럽지만, 서서 오줌누는 이들 때문에 벽들이 애꿎은 수난을 당한다. 벽에다 대고 함부로 소변을 보는 것은 남자하고 개뿐이다. 아직도 서울의 으슥한 골목길 벽은 남자들의 공중 화장실이 되기 십상이다. 소변금지를 알리는 구호도 갖가지다. 어떤 곳에는 가위를 그려놓고 위협을 주기도 하고, 어떤 곳에는 “개 이외는 여기에 소변을 보지 마시오”라고 써서 주정뱅이 오줌싸개들을 개로 깎아 내리기도 한다. 그래도 노상방뇨는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또 이런 것은 동서와 고금을 가리지 않는 것 같다. 히브리어에서 사내를 경멸하여 일컬을 때 “벽에다 대고 오줌 누는 놈”이라고 한다. 즉 “서서 오줌 누는 놈”이란 말이다. ‘남자’나 .. 2015. 1. 17.
한 여자가 자기 자매에게 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2) 한 여자가 자기 자매에게 우리말 “서로”는 명사로도 쓰이고 부사로도 쓰인다. 명사로는 “짝을 이루거나 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를 일컫는 말이다. 부사로는 “관계를 이루는 둘 이상 사이에서, 각각 그 상대에 대하여. 또는 양방이 번갈아서”를 뜻한다. “서로”에는 이처럼 “둘 사이의 짝 관계”가 들어 있다. 히브리어에는 “한 여자가 자기 자매에게”(“a woman to her sister”) 라는 표현이 있다. 히브리어로는 ‘잇샤 엘-악호타’라고 한다. 이 표현이 바로 특수한 문맥에서 “서로”를 뜻한다. “한 여자가 자기 자매에게”는 문자대로는 두 자매의 관계를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이 표현이 출애굽기 26장에서만 집중적으로 다섯 번 나온다(출 26:3,3,5,6,17).. 2015. 1. 8.
“놈”과 “아들” 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1) “놈”과 “아들” 옛날 사람들은 “보통 사람”을 일컬어 “놈”이라 했다. 자식을 귀엽게 이를 때도 “저 놈이 제 아들입니다”라고 하여 “놈”을 썼다. 그래서 오래된 한자 자전 옥편(玉篇)에도 “者”를 “놈 자”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양을 치는 목자(牧者)나 교인을 돌보는 목회(牧會者) 등에서 보듯이 직업 뒤에 붙는 “놈 자(者)”에 대해 별로 거부감이 없었다. 얼마 전 국회 본회의에 참석한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가 추가 공개한 '정윤회 국정개입 문건'에 정씨가 이 의원(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을 “근본도 없는 놈”이라고 비하한 표현에 대해 메모를 적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바 있다. 이 의원은 “저 보고 근본 없는 놈이라는 말이 있더군요. 맞는 말인지 모릅니다. 호남 .. 2015.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