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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26

새벽(의) 날개 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21) 새벽(의) 날개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개역개정), “새벽(의) 날개 붙잡고 동녘에 가도,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아보아도”(공동번역), 여기 시편 139편 9절에 나오는 “새벽의 날개”란 무엇인가? 이것은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의 “칸페이 샤하르”의 직역이다. 찬송가 뒤 교독문에 인용되어 있는 본문이므로 예배 때 자주 만나게 된다. 일반적인 독자들의 경우 읽으면 읽을수록 모르겠는 것이 아마도 “새벽의 날개”라는 표현일 것이다. 날이 밝을 녘을 일컫는 신간의 한 대목에 새나 곤충이 날 때에는 펴는 신체의 한 부분을 연결시키는 것이 우리말 독자에게는 자연스럽지 못할 것이다. 시편 139편 8-10절의 내용은 하나님의 현존을 피하지.. 2015. 8. 5.
새벽(의) 날개 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21) 새벽(의) 날개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개역개정), “새벽(의) 날개 붙잡고 동녘에 가도,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아보아도”(공동번역), 여기 시편 139편 9절에 나오는 “새벽의 날개”란 무엇인가? 이것은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의 “칸페이 샤하르”의 직역이다. 찬송가 뒤 교독문에 인용되어 있는 본문이므로 예배 때 자주 만나게 된다. 일반적인 독자들의 경우 읽으면 읽을수록 모르겠는 것이 아마도 “새벽의 날개”라는 표현일 것이다. 날이 밝을 녘을 일컫는 신간의 한 대목에 새나 곤충이 날 때에는 펴는 신체의 한 부분을 연결시키는 것이 우리말 독자에게는 자연스럽지 못할 것이다. 시편 139편 8-10절의 내용은 하나님의 현존을 피하지.. 2015. 7. 23.
해킹, 도청하며 “벽에 소변 보는 자” 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20) 해킹, 도청하며 “벽에 소변 보는 자” 좀 지저분한 말이 되어 주저스럽지만, 서서 오줌 누는 이들 때문에 벽들이 애꿎은 수난을 당한다. 벽에다 대고 함부로 소변을 보는 것은 남자하고 개뿐이다. 아직도 서울의 으슥한 골목길 벽은 남자들의 공중 화장실이 되기 십상이다. 소변금지를 알리는 구호도 갖가지다. 어떤 곳에는 가위를 그려놓고 위협을 주기도 하고, 어떤 곳에는 “개 이외는 여기에 소변을 보지 마시오”라고 써서 주정뱅이 오줌싸개들을 개로 깎아 내리기도 한다. 그래도 노상방뇨는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또 이런 것은 동서와 고금을 가리지 않는 것 같다. 히브리어에서 사내를 경멸하여 일컬을 때 “벽에다 대고 오줌 누는 놈”이라고 한다. 즉 “서서 오줌 누는 놈”이.. 2015. 7. 16.
박근혜의 콧바람, 왕의 콧김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20) 박근혜의 콧바람, 왕의 콧김 예레미야애가 4장 20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자” 곧 “왕”을 달리 “우리의 콧김”(개역개정), “우리의 숨결”(공동번역)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히브리어 “루아흐 압페누”를 번역한 것이나 아무래도 석연하지 않다. 즉 히브리어로 이 본문을 읽는 독자와 우리말 번역으로 이 본문을 읽는 독자의 반응이 일치하지 않을 것 같다. “콧김”이라고 하면 그것은 콧구멍에서 나오는 더운 김을 뜻한다. “콧김을 쐬다”라는 말은 어떤 물체를 코 가까이 가져다 대고 거기에 콧구멍에서 나오는 김을 받게 하는 것이다. “콧김이 세다”라는 말은 관계가 가까워서 영향력이 세다는 말이다. “죽은 놈의 콧김만도 못하다”라고 하면 난로나 화로에 불기운이 없어져.. 2015. 7. 1.
짐승을 가리킨 것이 성서 영감설로 오해돼 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18) 짐승을 가리킨 것이 성서 영감설로 오해돼 성서를 번역하다 보면 원문의 대명사를 번역문에서는 실명사로 바꾸어야만 할 때가 더러 있다. 의미전달을 빨리 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때로는 엉뚱한 오해를 막기 위해서도 그러하다. 예전에 대한성서공회 번역자 모임이 있었을 때의 일이다. 번역위원 중의 한 분이 아침 기도회를 인도하면서 ‘개역’ 성서의 이사야 34장 16절을 명상할 본문으로 내놓았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아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이 분의 말에 따르면, 단순한 독자들이 이 본문을 성서영감설과 관련시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 ‘여.. 2015. 6. 7.
아름다운 여인의 보기 좋은 이(치아) 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17) 아름다운 여인의 보기 좋은 이(치아) 아가서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은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을 찬양할 때마다 그 여인의 신체 부위의 아름다움을 묘사한다. 그가 눈여겨 관찰하는 여인의 신체 부위는 머리, 머리채, 눈, 코, 입, 입술, 잇몸, 이, 혀, 목, 젖가슴, 허리, 배꼽, 그곳, 발, 키 등이다. 그는 여인을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에서도 보고 품에 안고서도 본다. 목을 중심으로 하여 목 위가 11곳이고, 목을 포함하여 목 아래가 6곳이다. 그 남자가 사랑하는 그 여인의 아름다움을 본 곳은 얼굴 쪽에 집중되어 있고, 얼굴에서도 입 주변에 관심이 모아져 있다. 비록 목 아래 부위에 대한 언급이 얼굴만큼은 세분화 되어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 표현의 대담성이 놀랍다. 여인.. 2015. 5. 1.
일인칭을 가리키는 삼인칭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16) 일인칭을 가리키는 삼인칭 히브리어에서는 가끔 일인칭을 삼인칭으로 객관화시켜 진술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말의 경우에도 말하는 사람 자신이 자기를 객관화시켜 ‘이 아무개 ’라든가 ‘필자가’라든가 하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우리말에서는 주어의 인칭과 수에 따른 동사의 어미 변화가 없기 때문에 일인칭으로 말하는 이의 삼인칭 표현이 그 성격에 있어서 히브리어만큼 뚜렷하지는 않다. 구약성서(공동번역)에서 예를 들어본다. 출애굽기 20장 1-17절에서 십계명을 선포하는 이는 야훼다. 야훼 자신이 자신을 가리켜 ‘나’라고 하고 십계명을 받는 대상인 이스라엘을 ‘너’라고 부른다(20:1~6 ). 예를 들면,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두지 말찌니라라”(20;3)... 2015. 4. 24.
짧은 본문, 긴 본문 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14) 짧은 본문, 긴 본문 “사울이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 아뢰었다. ‘오늘 소인에게 응답하지 않으시니, 웬일이십니까?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여, 만약 그 허물이 저나 제 자식 요나단에게 있다면 우림이 나오게 하시고, 그 허물이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있다면 둠밈이 나오게 하십시오.’” 위에 인용된 본문운 사무엘상 14장 41절의 내용이다. 밑줄이 그어진 부분은 에는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의 것은 짧은 본문이고 은 긴 본문이다. 히브리어 원문 성서에도 밑줄 친 부분의 내용은 나와 있지 않다. 따라서 의 밑줄 친 부분은 히브리어 본문의 반영이 아니라 그리스어 칠십인역의 본문을 번역한 것이다. 그리스어 칠십인역 성서는 기원전 3세기경부터 번역되기 시작한 것으로서 그때 사용.. 2015. 4. 15.
강포한 남자와 근면한 남자 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13) 강포한 남자와 근면한 남자 강포한 사람과 근면한 사람은 엄연히 다르다. 한번은 일본어 성서와 우리 말 번역 성서를 비교해 읽는 어느 독자에게서 문의가 왔다. 1981년 판 ‘일본어 성서’ 잠언 11장 16절에는 “강포한 남자가 부를 얻는다”라고 되어 있는데, 우리 말 ‘개역성서’의 같은 구절은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느니라”라고 되어 있어 너무나도 내용이 다르니 해명해 달라는 것이었다. 잠언 11장 16절은 세계의 성서 번역자들이 늘 고심해 왔던 구절 가운데 하나다. 지금 우리에게 전해진 원문 히브리어 성서를 따라 읽으면 ‘일본어 성서’의 ‘강포한 남자’가 옳다. 영어 번역판이나 중국어 번역판들 중에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을 가능한 한 그대로 옳기려고 하는 번역들도 .. 2015. 4.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