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39 친구됨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36) 친구됨 - 전집 5권 『일기 I』 1935년 일기 - 다음 달은 정상적인 발행이 가능할까, 이런 식으로 과연 조선 땅 전역과 오고 또 올 미래의 세대들에게 성서의 산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한치 앞을 모르면서 매달 성실함과 소망으로 이어간 『성서조선』지 발간이 어느덧 10년에 다다를 무렵, 김교신은 뜻밖의 친구들을 만났다. 한센병 환자들의 공간 소록도에서 보내온 문신활의 편지는 김교신 스스로도 고백하듯이 그의 인생에 큰 사건이었다. 문신활과 그의 동료들은 1932년 부산의 감만리나병원을 섬기던 손양원 전도사에게서 성조지를 소개받았다 했다. 전도사님이 들려주시는 말씀 해석을 재미나게, 희열에 넘쳐 들었다고. 그러나 성조지의 불순함을 지적하고 ‘이단’이라 핍박하는 무리들에.. 2015. 11. 17. 페이스메이커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36) 페이스메이커 - 전집 5권 『일기 I』 1934년 일기 - 어려서부터 나는 유난히 잠이 많았다. 덕분에 청교도적 사명감으로 일분일초를 아끼며 사셨던 아버지로부터는 늘 게으르다는 핀잔을 들었고, 모처럼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도 초저녁부터 꾸벅꾸벅 조는 모습에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이 40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선천적인 면역계통 이상으로 간과 신장이 안 좋다는 것을. 아하, 그래서 늘 저녁 8시만 넘으면 몸이 붓고 자면서도 끙끙 고열에 식은땀까지 났던 거구나. 어쩐지, 일년내내 감기일 리는 없고 이상하긴 했다. 하여 ‘무조건 쉬는 게 답’이라는 의사는 모든 환자에게 하는 조언을 내게도 전했다. 스트레스 쌓이는 일 하지 말고 무리하지 말라는 소리 말이다. 그게 말.. 2015. 10. 26. 화(和)의 영이여, 오소서!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35) 화(和)의 영이여, 오소서! - 전집 5권 『일기 I』 1932~33년 일기 - 설마 진짜로 그럴까, 했다. 물론 지난 문명사에 뒷걸음질 친 사례들이 없지 않았으나, 그래도 길게 보면 점차로 ‘앞으로 나아간’ 것이 역사였기 때문이다. 물론 시대마다 기득권자들은 그 ‘나아감’에 저항하다 결국 큰 흐름을 막지 못하고 가장 늦게 승차해오긴 했다. 그래도 그렇지. 과거사의 해석에 있어 단 하나의 ‘정답’은 없는 법이라고, 남아 있는 기록 자체가 이미 ‘승자들의 것’이기에, 과거의 역사를 해석하는 일은 더 많은 시각과 해석을 요하며 중층적이고 입체적인 ‘읽기’를 허해야 한다고, 나는 그렇게 배워왔는데… 군주제였던 조선 시대의 왕들도 안하던 일을 하겠다 한다. 역사 해석은 1차적으로.. 2015. 10. 15. 하루씩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35) 하루씩 - 전집 5권 『일기 I』 1930년~31년 일기 - 살다보면 엉겁결에 맡게 되는 일들이 있다. 물론 ‘하기 싫다’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 상황이 되지 않는데, 공동체의 처한 정황상 ‘독박을 쓰는’ 경우다. 더 우아한 말이 있겠으나 개인에게는 이만큼의 부담이다. 김교신에게는 『성서조선』 편집주간이 된 일이 그러했다. 1930년 5월부터 김교신은 거의 단독으로 잡지의 편집 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 그동안은 정상훈이 했던 일이다. 나라도 어수선했지만 한창 젊은 나이의 6인이었다. 직업면에서도 가정면에서도 이동이 잦은 시기였다. 양인성은 평북 선천에, 함석헌은 오산에, 류석동은 소격동에서 이렇게 저렇게 흩어져 각자의 자리에서 성서모임을 열어가며 ‘버티던’ 한중간.. 2015. 10. 4. 김교신의 그리스도‘론’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34) 김교신의 그리스도‘론’ - 전집 4권 『성서 연구』 「골로새서 강의」 - ‘이단(異端)’이란 ‘다르게 서 있다’는 말이다. 같은 이름으로 혹은 비슷한 주장을 하지만 따라가다 보면 결국 그 끝이 달라지므로 따르는 이들을 미혹케 한다. ‘기독신앙이란 교리 논쟁이 아닌 삶으로 살아내는 산 신앙’이라고 주장했던 김교신과 성서조선 동인들에게는 물론 주된 관심사는 아니었던 단어다. 허나, 김교신과 성서조선 동인들이 끝내 바로잡으려했던 기독 신앙과 정신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로 하여금 ‘바로 서’ 있도록 함이었으니, 결국 큰 범주에서 김교신은 ‘다르게 서 있는’ 이단과의 한판 겨루기를 피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교신은 이단과 치열하게 겨루었던 ‘정통(正統.. 2015. 9. 23. ‘기도의 자살(自殺)’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32) ‘기도의 자살(自殺)’ - 전집 4권 『성서 연구』 「주기도의 연구」 - 우리나라 교인들처럼 기도를 많이 하는 경우도 드물 거다. 물론 일찍이 사도바울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지만, 적어도 시간을 따로 내고 특정 공간에 모여 함께 하는 기도로만 보자면 단연코 한국 기독신자들이 최고다. 거의 모든 교회가 하고 있는 새벽기도회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전통이거니와 금요철야기도회, 봄·가을로 진행되는 ‘특새’(특별새벽기도회)까지 이제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기도회는 우리나라 교인들에게 교회부흥과 영성훈련의 집중적 시간으로 여겨진다. 그뿐인가? 수험생 부모들의 수능대박을 기원하는 기도회, 청년들의 배우자를 찾기 위한 기도회…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수많.. 2015. 9. 7. 율법의 완성, 은혜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30) 율법의 완성, 은혜 - 전집 4권 『성서 연구』 「율법의 완성」 - “이 바리새인 같으니라고!” 만일 이런 말을 들었다면 대부분의 기독교 신자는 매우 불쾌할 것이다. 바리새인에 대해 선입견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바리새인은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 내내 꾸짖으셨던 사람들이 아니던가! 무엇보다 신약 복음서에 나타난 바리새인들은 사랑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냉정한 율법주의자로 묘사되었기에, 기독 신자들은 일단 ‘심정적으로’ 바리새인들을 싫어한다. 더 극단적인 경우는 반(反)하나님적이고 불신앙적이며 위선자, 안하무인에 거짓신앙인과 동의어로까지 생각하면서 반감과 혐오를 표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오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바리새파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가졌던 대안.. 2015. 8. 19. 온유한 자가 차지하는 땅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29) 온유한 자가 차지하는 땅 - 전집 4권 『성서 연구』 「산상수훈」 편 2 - 결국엔 웃었다. 하지만 순간적이나마 ‘괘씸하다’는 생각이 든 걸 보니 마음 한 구석에 ‘교만함’이 자리 잡고 있었나보다. 그래도 감정을 추스른 건 잘한 일이었다. 지난 학기말의 일이다. 처음 가본 작은 사학 공간은 그야말로 ‘어이없는 갑질’의 향연이었다. 대학 강사료가 워낙 낮게 책정되어 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갑’이었다. 그래도 아이들만 예쁘다면 나는 상관없었다. 어차피 ‘교수’의 역할이란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자신의 전공 안에서 얻은 깨달음을, ‘프로페스(profess)’하는 직업이니까. 어느 강단이든, 어떤 대우를 받든, 나는 내 소리를 .. 2015. 8. 4. 권위 나눔, 소유 나눔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28) 권위 나눔, 소유 나눔 - 전집 4권 『성서 연구』 「산상수훈」 편 - 저 이의 입에서 어떤 말이 떨어질까?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고치고 배고픈 이들에게 떡을 먹인 이라는데, 저이가 우리를 구원할 메시아가 아닐까? 예수를 따라 산 위에 오른(마태복음), 혹은 한적한 평지에 다다른(누가복음) ‘무리들’은 온 존재를 집중하여 예수의 입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필시 살리는 말을 할 것이니, 필시 숨통이 트이는 해결책을 제시해 줄 것이니, 그 첫 마디가 어찌 기대되지 않으랴!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복스럽도다, 가난한 이여!” 어이없을 일이다. 1세기 팔레스타인 땅에서 ‘가난한’ 삶이 얼마나 비참한데, 어찌 가난한 이들이 복되다 하는가? “천국이 저희 것인 까닭이다.” .. 2015. 7. 29.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