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39 존재의 원칙, 나(우리)대로!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17) 존재의 원칙, 나(우리)대로! - 1935년 4월, 1935년 7월 - 살다보면 별 사람을 다 만나는 법이다. 나에게 호의를 가진 사람, 적대감을 가진 사람, 무관심한 사람, 비웃는 사람… 그 모든 사람들에게 나를 온전히 이해시켜야 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겐 그럴 능력도 없다. 그런데 문제는 호의를 가지고 계속 다가오는데, 정말 나를 오해하고 있는 경우이다. 선한 의도와 애정을 생각하자니 무심할 수 없는데, 내 주장이나 의도를 정말 잘못 알고 자꾸 함께 하자하니 그야말로 ‘미칠’ 노릇이다. 『성서조선』을 통해 ‘무교회’의 주장을 꾸준히 이어오던 김교신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무교회의 소명을 열심히 읽어주는 것은 좋은데, 조선 구석구석 필부까지도 성서를 스스로 읽고 .. 2015. 4. 26. 안식일의 혁명성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16) 안식일의 혁명성 - 1938년 9월 - 우리가 사는 후기근대 사회의 구조적 속성이 그런 줄은 이미 알고 있었다. 쉴 수 없는 구조 말이다. 고용마저 ‘유연’하게 대체되는 마당인데, 내가 여전히 쓸모 있다고, 더 잘 기능할 수 있고, 더 싸게 기능할 수 있으며, 더 순종적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매일 입증하며 살려하니, 쉴 틈이 어디 있겠나! 생계를 위한 일상의 수고가 ‘젊어서 사서 하는’ 한시적 고생이 아니라는 것쯤은, 대한민국 서민이라면 다 아는 일이다. 쉼이 있다면 그것은 고용상태를 벗어났을 때에나 가능하겠지만, 그 상태는 대부분의 서민에게 ‘조만간 아사’를 의미한다. 사회학을 배운바 없어도 가장 일선에서 매일 이 구조를 몸으로 살아내는 서민들은 이미 사회학자이다.. 2015. 4. 19. 부활의 믿음으로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15) 부활의 믿음으로 - 1932. 5월 - “도대체 우리는 이 시간에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걸까요?” 출근시간이라 그 어느 때보다도 지나가는 이들의 발걸음이 바쁜 광화문 한복판에 앉아 열심히 노란 리본에 고리를 달다가 한 지인이 내게 말을 건넸다. 그러게 말이다. 수업시간에 맞춰 10시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유난히 손을 빨리 놀리며 노란 리본 고리를 달던 내게서도 한숨이 나왔다. 신학자 두 사람이 서로 마주 앉아 하고 있는 일로는 분명히 ‘낯선’ 장소 ‘낯선’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바로 앞에는 지난 1년 간 고행하는 수도자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가 허리를 반듯하게 하고 앉아 계시다. 세월호 노숙자, 스스로를 이렇게 부르고.. 2015. 4. 12. ‘위대한’ 인간의 품성에 대하여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14) ‘위대한’ 인간의 품성에 대하여 - 1940년 12월 - 어려서부터 고난주간에는 꼭 독한 감기를 앓곤 했다. 환절기에 치르는 몸살일 터인데, 올 해도 거르지 않았다. 끙끙 괴롭게 누워 ‘머리’는 차질을 빚은 글쓰기와 밀린 연구를 걱정하고 있었는데, 누워 있는 상황이 비슷하다보니 마치 데자뷰처럼 ‘몸’은 작년 이맘때 고난주간의 괴로움이 떠올랐다. 2014년은 부활 주일이 꽤 늦은 편이어서 4월 중순도 훨씬 지나 고난주간을 맞았었다. 4월 16일, 세월호가 소중한 생명들을 304명이나 품고서 검은 바다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난 그 끔찍한 날 이후에, 우리는 고난주간을 맞았다. 이미 생존가능시간을 넘기고 있는 시점이었지만, 제발 한 생명이라도 더 살아라, 살아서 구조되라,.. 2015. 4. 1. “영원히 청년의 영으로”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13) “영원히 청년의 영으로” - 1932년 6월/ 1936년 2월 - 내 이름은 ‘소영’이다. 물론 한자어의 뜻은 다르지만 발음에서 착안하여 영어권 사람들을 만나면 늘 내 소개를 이렇게 한다. “I’m so~young~(저는 정말 젊어요)” 모두가 한바탕 웃는다. 중년이 되어버린 요즘엔 그 웃음소리가 더욱 크다. 웃음이 잦아들 무렵을 기다렸다가 기어코 덧붙이는 한마디가 있다. “And, I want to be forever~young~(그리고 영원히 젊고 싶어요.)” 젊어 보이는 동안 얼굴이 대세라는 요즘에 나이보다 어려보이겠다는 욕심은 아니다. 사는 동안 나이와 상관없이 젊고 싶은 것은 내 영이고 내 신앙이고 삶을 살아가는 내 자세이다. 나는 이것을 김교신을 비롯한 .. 2015. 3. 22. ‘푸러리’ 이야기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12) ‘푸러리’ 이야기 - 1938년 7월 - ‘푸러리’는 김교신이 키우던 개 이름이다. 라는 사뭇 진지한 글 제목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개 ‘푸러리’! 하지만 ‘푸러리’는 이 글이 있게 한 핵심‘견’물이다. 빈틈없고 매사 엄격하던 김교신이 동물들에 대해 이렇게 속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미처 몰랐다. 그의 일기를 읽다보면 나라 걱정, 교회 근심, 가족 이야기와 더불어 기르던 가축들의 소소한 이야기도 종종 등장한다. 이 글을 쓰던 즈음의 일기에는 짧은 한 줄이라도 ‘푸러리’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었다. “나간 개가 오늘까지 소식이 없다.”(6월 22일자) “오늘까지도 소식이 없으면 ‘푸러리’ 돌아오는 것을 단념하는 수밖에 없다.”(6월 23일자) 그러나 ‘단념’.. 2015. 3. 15. 구체적이고 보편적인 사랑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11) 구체적이고 보편적인 사랑 - 1936년 8월 - 성서를 읽다보면 종종 당황스런 내용을 접한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기에 하나님의 계시를 담고 있다고 고백하던 신앙이 도전받을만한 구절들이다. 구약 본문에서 그런 ‘시험’에 들 만한 부분을 얼마나 많이 발견했으면 초대 기독교 신학자였던 마르시온은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을 아예 다른 존재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물론 마르시온은 이단으로 정죄 받은 인물이나, 적어도 그가 신앙의 눈으로 성서를 읽다가 이스라엘만을 위해 이방민족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을 향해서도 마치 ‘분노조절장애자’처럼 행동하는 신의 묘사에 얼마나 당황했을지, 그 ‘심정’만큼은 이해가 된다. 하나님은 전 인류, 아니 이 우주의 .. 2015. 3. 8. ‘닮지 못한’ 세대를 탄식하다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10) ‘닮지 못한’ 세대를 탄식하다 - 1936년 12월 - 그러고 보면 유교적 가치와 문화적 관성이 꽤나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것 같다. 명백한 현대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나조차, 어린 시절 학교에서 부모님께 편지를 쓰는 숙제를 할 때면 뜻도 모르고 ‘불초 여식’ 운운했었던 기억이 난다. 불초(不肖), 닮지 못함! ‘자식이 자신을 낮추어 표현하는 말’이라고만 알고 썼던 이 단어의 본 뜻은 ‘닮지 못했다’는 말이다. 아니, 부모보다 더 나은 자식이 있을 수도 있는 일이고, 부모의 어떤 부분은 닮으면 안 될 면도 있을 텐데, 유교 사회의 어른들은 그렇게나 자기들의 모습에 자신이 있었나? 물론 부모가 자녀를 향해 강요한 바는 아닐 지라도, 자녀들 입에서 ‘닮지 못한’ 것을 .. 2015. 2. 27. 우리의 가정에 천국을 투사(投射)시키라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9) 우리의 가정에 천국을 투사(投射)시키라 - 1939년 6월 - 김교신은 아내를 아끼기로 유명했다. 부부금슬도 좋았을 뿐더러 안팎으로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늘 들고 나는 사이 소위 ‘남정네’의 손이 필요한 곳이 없나 살뜰히 살피고 미리 손길을 뻗었던 근면 성실한 가장이었다. 교사의 빠듯한 수입으로 지 출간과 우송비를 감당하고 학생들의 어려운 사정 또한 외면하지 못하는 성정이었으니, 필시 넉넉한 생활비를 제공하지는 못했을 터이다. 그러나 자녀들의 회고를 들어보아도 김교신은 당시로는 드물게 집안을 챙기는 사랑 많은 가장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컸던 김교신이었다. 그러니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배운 까닭에 자연스레 터.. 2015. 2. 20.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