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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강유철의 '음악정담'26

두 거장의 클래식 산책 지강유철의 음악 정담(8) 두 거장의 클래식 산책 무라카미 하루키가 재즈에 관심이 많다는 건 오래 전 읽은 그의 책에서 알았습니다. 프란츠 리스트가 작곡한 를 주제로 장편 소설을 냈다는 기사를 접했을 땐 그래서 좀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몇 줄 언급하는 정도가 아니라 를 소재로 장편 소설을 썼다니 대단해 보였던 거죠. 주변에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클래식에 깊이 빠진 마니아들이 많아서 하루키도 그 수준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래서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크루와 그가 떠난 순례의 해》를 안 읽었습니다. 최근 번역된 하루키와 오자와 세이지의 대담집 《오자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를 읽고 나니 하루키가 새롭게 보입니다. 클래식 음악을 이렇게 깊고 폭 넓게 알고 있을 줄 몰랐거든요. 아시아를 대표하는 지휘자 오자와 .. 2015. 2. 16.
“악보가 웬수다!” 지강유철의 음악 정담(6) “악보가 웬수다!”30여 년을 성가대 지휘자로 봉사하면서 대원들에게 악보 읽는 법을 가르치지 못한 저는 나쁜 지휘자였습니다. 대원들에게 악보 읽는 능력을 키워줬다면 연습 시간이 대폭 줄었을 텐데 그런 노력은 안 하고 환경 탓만 했던 것입니다. 대원들이 거의 외울 정도로 연습을 하고도 악보를 손에 놓지 못하는 것이, 악보를 못 읽기 때문에 생기는 불안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깊이 헤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악보가 웬수다!” 성가대 연습을 시키면서 입에 달고 살았던 말입니다. 예배 시간은 다가오는데 대원들이 악보에서 눈을 떼지 못할 때는 악보를 빼앗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거의 외워 놓고도 악보에서 눈을 못 떼는 대원들을 보며 속이 터졌던 겁니다. 악보에 시선을 고정시키면.. 2015. 2. 9.
“악보에 머리를 처박지 말고” 지강유철의 음악 정담(6) “악보에 머리를 처박지 말고” 악보를 외워 지휘하는 게 대세라지만, 누구도 지휘자들에게 암보(暗譜)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지휘 콩쿠르라면 모를까, 지휘자는 원칙적으로 암보에서 면제됩니다. 암보보다는 더 중요한 역할이 지휘자에게 있다는 음악계의 오래된 합의가 아직은 유효합니다. 그러나 직업적인 지휘자가 생긴 19세기 후반에 이미 암보로 포디엄에 오른 지휘자들이 있었습니다. 직업 지휘자의 원조 격인 한스 폰 뷜로가 최초로 악보를 외워 지휘한 장본인이었다는 사실은 역설적입니다. 멘델스존이나 바그너처럼 지휘까지 했던 “작곡가의 손에서 뷜로나 니키슈 같은 직업 지휘자의 손으로 지휘봉이 넘어”간 것은 19세기 후반이었습니다. 음악계에 대단한 변화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중부 유럽의 산업 발.. 2015. 2. 2.
연주자들의 공공의 적, 암보 지강유철의 음악 정담(5) 연주자들의 공공의 적, 암보 성악이나 기악을 막론하고 모든 전문 연주자는 악보를 외워야 합니다. 오케스트라나 실내악에 참여하거나 반주를 맡았을 때는 악보를 봅니다. 오라토리오나 베토벤의 교향곡 등의 솔리스트, 그리고 창작곡을 초연하는 독주나 독창자들도 악보 암기에서 면제됩니다. 하지만 자기 연주라면 반드시 악보를 외워야 합니다. 악보 암기에 대한 거의 공포 수준의 부담감은 음악을 배우기 시작하는 학생 때부터 연주 무대에서 은퇴할 때까지 계속됩니다. 연주자가 된다는 것은 악보가 생각이 안 나 얼굴이 벌개져서 퇴장을 하거나, 연주 도중 엉뚱한 곡을 치다가 등에 식은땀을 흘리며 원곡으로 되돌아오는 정도의 실수가 언제든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다음에야 가능합니다... 2015. 1. 29.
나만의 명품 지강유철의 음악 정담(4) 나만의 명품 제 서재에 있는 책이나 음반의 대다수는 좋게 말하면 삼류, 나쁘게 말하면 쓰레기입니다. 가방끈이 짧고 책이나 음악에 관한 좋은 친구나 선생을 만난 적이 없던 제게 시행착오는 불가피했습니다. 가장 책을 바지런하게 읽던 80-90년대에도 신문에 신간 소개란이 있었고, 이란 격주간지도 발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서울에 살면서도 큰맘을 먹어야 광화문이나 종로의 대형 서점엘 갔을 뿐, 보통의 경우는 동네 서점을 단골로 드나들었습니다. 살던 곳이 숭실대 근처였고, 출근하던 교회 근처에 인문, 사회 과학 서적을 많이 갖춘 서점이 있었지만 그래도 책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즘처럼 북 콘서트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인터넷이나 스마트 폰을 통해 궁금한 책을 실시간으.. 2015. 1. 22.
잡음 지강유철의 음악 정담(3) 잡음 2000년대 중반 이후 오디오 마니아 중에는 CD 플레이어로 음악 듣기를 포기하고 턴테이블을 다시 들인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디지털로 음악을 들으면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서 일찍이 턴테이블로 되돌아 간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의 오디오 마니아들은 CD 플레이어와 턴테이블을 동시에 즐기거나 CD로 만족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CD플레이어가 처음 출시될 때부터 디지털 음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외국에서는 모든 음악 마니아들이 CD 플레이어로 말을 갈아타지 않았다고 합니다. LP와 턴테이블 제작하던 회사들이 거의 문을 닫았거나 CD 플레이어 회사로 바뀌었음에도 LP나 릴데크(Reel deck)를 고집하는 마니아들이 적지 않았던 것입니다. .. 2015. 1. 13.
미안, 슈베르트 지강유철의 음악 정담(2) 미안, 슈베르트 베토벤 음악은 제게 그 존재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사는 공기나 물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베토벤 음악에 대해선 웬만한 찬사가 호들갑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6번 교향곡은 예외입니다. 은 베토벤의 다른 교향곡과 달리 너무 단순하기 때문인지 재미가 없습니다. 때론 지루하기까지 합니다. 베토벤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명반을 여러 차례 찾아 들어보았지만 아직도 을 뜨겁게 만나지 못했습니다. 연주자나 교향악단에 따라 이 가끔 새롭게 들리긴 합니다. 그렇지만 은 다른 음악처럼 입을 벌리고 멍하게 몰입하게 되지 않습니다. 설교를 듣다가 절로 ‘아멘!’이 튀어나오듯 을 들으면서는 감탄했던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과는 끝내 인연이 닿지 않는 것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슈베르.. 2015. 1. 6.
180초 지강유철의 음악 정담(1) 180초 광화문에 있는 예술전용극장 시네큐브에서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일입니다. 광고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로 영화가 시작되더군요. 중학교 때 단체 관람으로 극장을 드나들기 시작한 후로 이제까지 광고 없이 영화가 시작되는 걸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건 뭐지?” 했습니다. 더 놀라운 일은 영화가 끝났을 때였습니다.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단 한 사람도 일어나 나가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하나” 싶더군요. 영화 시작과 끝에 일어났던 이 두 차례의 경험은 그날 본 영화만큼이나 또렷하게 제 기억 속에 남아있습니다. 2010년 여름 스위스 루체른에 있는 문화컨벤션센터 콘서트홀에서는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하는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말러 교향곡 9번 .. 2015.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