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2648

말씀 신동숙의 글밭(194) 말씀 나는 한 알의 씨앗 오늘은 빈 가슴 어디쯤에 앉아서 새순을 틔울까 말없이 기도의 뿌리를 내리며 2020. 7. 21.
고픈 얘기 한희철의 얘기마을(31) 고픈 얘기 수요예배를 마치고 방에 들어와 잠시 쉬는데, 부엌문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나가보니 광철 씨였다. 작실 분들과 돌아가다가 다시 내려온 것이었다. “웬일이에요, 광철씨?”“지난 번 가져다 드린 밤 잡수셨어요?” 밤이며, 땅콩이며, 호박이며, 광철 씨는 늘 그렇게 먹을 것을 전하려 애를 쓴다. 예배시간 이따금씩 제단에 놓이는 들꽃도 광철 씨 손길이다. 그게 광철 씨 믿음이요 사랑이다. 들꽃을 꺾어서, 밭뙈기 호박을 심어서, 남의 집 일하곤 한 줌 땅콩을 얻어서 못 드리는 헌금 대신 드리는 광철 씨, 가장 가난하고 가장 깨끗한 드림이다. 광철 씨는 밀린 얘기를 했다. 안쓰럽다 여길 뿐, 아무도 그의 얘기 귀담아 들어주는 이가 없다. 엄마 돌아가셨을 때 장례 치러주어 고마웠다.. 2020. 7. 20.
청소년 담배, 차마 모른체 할 수 없어서 신동숙의 글밭(193) 청소년 담배, 차마 모른체 할 수 없어서 길을 걷다가 자녀 또래의 아이들을 만나면, 꼭 우리 아들 같아서. 덩치가 크던 작던, 피부가 희든 검든, 집에서는 천금 같은 자식일텐데 싶어, 말 한 마디 눈빛 하나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마음입니다. 저를 낳아주신 엄마의 마음이 그러하였고, 산동네 길고양이 새끼 같은 어린 저를 바라보던 동네 아주머니들의 눈길이 그 옛날 그때 그 시절에는 그렇게 봄햇살처럼 따스하였습니다. 큰아이가 7살이던 가을입니다. 우리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서 건너편에 있는 피아노 학원에 딸아이를 데려다줄 때의 일입니다. 피아노 학원 수업 시간이 4시니까 큰아이를 데려다 주던 그때는 방과후 수업이 있고, 고학년들이 가방을 메고 정문을 나서던 시간대입니.. 2020. 7. 20.
시간이 은총으로 가득 차는 충만함 시간이 은총으로 가득 차는 충만함 -“김기석 목사의 365일 날숨과 들숨” 전 3권- 민영진/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내가 만난 올해의 첫 책이 “김기석 목사의 365일 날숨과 들숨” 전 3권이다. 1권 , 2권 , 3권 . 모두 출판사 “꽃자리”가 2020년 1월 6일에 펴낸 책들이다. 말 그대로 1년 365일 매일 읽을 성경 본문, 저자의 본문 해설, 저자가 작성한 기도문이 이 책의 뼈대다. 이것이 성도의 영성 훈련을 위한 하루 분, 한 꼭지의 주요 구조다. 날마다 읽고 명상할 자료의 하루 분 분량은 3.5쪽 미만이다. 책을 펴면, 날자 표시와 함께 그 날의 명상의 주제가 제목으로 실려 있다. 성경 본문은 66권 안에서 저자가 임의로 선택한 5절 안팎의 발췌 본문이다. 인용된 성경본문은 (1993)이 개.. 2020. 7. 19.
어떤 기도 한희철의 얘기마을(30) 어떤 기도 새벽 세 시경 일어나 세수하면 그나마 눈이 밝습니다. 성경 몇 줄 읽곤 노트를 펼쳐 몇 줄 기도문을 적습니다.머릿속 뱅뱅 맴돌 뿐 밖으로 내려면 어디론가 사라지고 마는 서툰 기도 몇 마디, 그것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한 두 방울 물 받듯 노트에 적습니다.그러기를 며칠, 그걸 모아야 한 번의 기도가 됩니다. 그러나 그걸 한 데 모았다고 끝난 건 아닙니다.흐린 눈, 실수하지 않으려면 몇 번이고 읽어 익숙해져야 합니다.그 때마다 흐르는 눈물,같이 자는 남편 놀라 깨기도 하고, 몇 번이고 눈물 거둬 달라 기도까지 했지만, 써 놓은 기도 읽기만 해도 흐르는 눈물, 실컷 울어 더 없을 것 같으면서도 기도문 꺼내 들면 또다시 목이 잠겨 눈물이 솟습니다. 안갑순 속장님의 기도는 늘 그.. 2020. 7. 19.
오늘 뜬 아침해 신동숙의 글밭(192) 오늘 뜬 아침해 오늘 뜬 아침해가그토록 닿길 원하는 후미진 땅은 밤새 어두웠을 내 깊은 마음 속 땅인지도 빈 하늘인지도 오늘 아침 햇살이 가장 먼저 닦아주는 얼굴은 밤새 적시운내 눈가에 맺힌 눈물인지도빈 들에 이슬인지도 내 뺨을 스치운 바람이 늘 무심결에 부르는 노래인 듯춤사위인 듯 2020. 7. 19.
널 닮고 싶구나 한희철의 얘기마을(29) 널 닮고 싶구나 오후에 작실로 올라갔다. 설정순 성도님네 잎담배를 심는 날이다.해질녘 돌아오는 길에, 일을 마친 이 속장님네 소를 데리고 왔다. 낯선 이가 줄을 잡았는데도 터벅터벅 소는 여전히 제걸음이다. 하루 종일 된 일을 했음에도 아무런 싫은 표정이 없다. 그렇게 한평생 일만 하고서도 죽은 다음 몸뚱이마저 고기로 남기는 착한 동물. ‘살아생전 머리에 달린 뿔은 언제, 어디에 쓰는 것일까?’ 깜빡이는 소의 커다란 눈이 유난히 맑고 착하게 보인다. 알아들을 리 없지만 내려오는 길, 소에게 말을 건넨다. -소야, 난 네가 좋구나. 널 닮구 싶구나. (1990) 2020. 7. 18.
두 손 신동숙의 글밭(191) 두 손 구름은땅으로 낮아지려 그토록제 살을 깎아 빗줄기가 되는지 나무는말의 숨결이 되려 그토록제 살을 깎아사각이는 연필이 되었는지 두 손은따스한 가슴이 되려 그토록거친 나무를 쓰다듬어굳은살 배긴 나무가 되었는지 어둠은한 점 빛이 되려 그토록긴 밤을 쓰다듬어두 눈가에 아침 이슬로 맺히는지 2020. 7. 18.
오늘 앉은 자리 - 옥빛 나방과 능소화 신동숙의 글밭(190) 오늘 앉은 자리 - 옥빛 나방과 능소화 가지산 오솔길을 오르다 보면 으레 나무 그루터기를 만나게 됩니다. 둥그런 그루터기 그늘 진 곳에는 어김없이 초록 이끼가 앉아 있고, 밝은 곳에는 작은 풀꽃들이 저절로 피어있습니다. 개미들은 제 집인양 들락날락거리는 모습에 생기가 돕니다. 저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잘려 나갔을 낮고 낮은 그루터기지만, 언제나 우뚝 키가 높고 높은 나무보다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저 멀리 그루터기가 보이면, 점점 눈길이 머물고, 발걸음은 느려지고, 생각은 저절로 깊어집니다. 작고 여린 생명들에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 집이 한껏 낮아진 나무 그루터기인 것입니다. 하늘로 뻗치던 생명을 잃은 후에도, 주위에 흔한 작은 생명들을 품고서 스스로 집이 된 나무 그루터기. .. 2020. 7.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