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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의 심방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03) 열 번의 심방 심방 중에 요양원에 계신 권사님을 찾아뵙고 돌아와서 편지를 썼던 것은, 문득 떠오르는 장로님과 권사님 때문이었다. 요양원의 권사님이 지난 기억을 모두 잊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포대기에 아기 인형을 안고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장로님과 권사님이 떠올랐다. 오래 전부터 교분을 갖고 있는 두 분은 한 평생 살아오며 그러했듯이 지금 가장 지고지순한 시간을 보내고 계시다. 장로님은 자식들의 걱정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권사님을 끝까지 집에서 돌보신다. 사랑 아니면 도무지 불가능한 시간을 보내시는 것이다. 마침 상반기 심방을 모두 마친 어제 저녁, 장로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보내드린 편지를 받고는 전화를 하신 것이었다. 받은 편지를 권사님께 전하며 .. 2019. 7. 28.
잘못된 구함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02) 잘못된 구함 신앙인들이 갖는 대부분의 관심은 ‘구함’에 있다. 무엇을 어떻게 구해야 할지, 어떻게 구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지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일천번제’를 비롯한 프로그램도 많아지고, 설교에서 다루는 중요한 주제가 되고, 책방 기독교 코너에는 그런 내용을 담은 책들도 많다. 하지만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관심 중에는 ‘잘못된 구함’도 있다. 내가 구하는 것이 얼마든지 잘못된 구함일 수 있다는 것을 돌아보아야 한다. 자기 성찰이 없는 구함이야말로 잘못된 구함이기 때문이다. 높은 자리, 좋은 자리,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살만한 자리를 구하는 야고보와 요한에게 주님은 말씀하신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마가복음 10:38) 우.. 2019. 7. 27.
풀벌레 한 마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01) 풀벌레 한 마리 이틀 전이었다. 새벽에 깨어 예배당을 찾기 위해 준비를 하는데, 욕실 작은 창문을 통해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전날까지도 듣지 못하던 소리였다. 가느다랗고 낮지만 맑은 소리, 아마도 한 마리가 울지 싶었다. 벌써 풀벌레가 우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절기를 헤아려보니 ‘대서’, ‘입추’가 아주 멀지 않은 시점이었다. 풀벌레 소리는 어제도 오늘도 이어졌다. 오늘은 빗소리 속에서도 풀벌레 소리가 여전했다. 맞다, 꽃 한 송이 핀다고 봄 아니듯이 풀벌레 한 마리 운다고 가을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변화는 그렇게 시작이 된다. 누군가가 꽃 한 송이 피움으로, 누군가가 노래를 부름으로 계절이 바뀌고, 풍경이 바뀌고, 세상이 바뀐다. 어디선가 피워내는 꽃은 눈에.. 2019. 7. 26.
힘든 기도 한희철의 히루 한 생각(199) 힘든 기도 어디 기도를 평한다는 것이 가당한 일일까만, 힘든 기도를 들었다. 그것은 기도라기보다는 서툰 훈계에 가까웠다. 내용도 그랬고, 어투도 그랬다. 불만의 나열이었고, 결국은 자기 과시와 다르지 않았다. 기도를 들으면서도 저게 기돌까, 내내 마음이 힘들었다. 30여 년 세월이 지났지만 내게는 단강의 한 할머니 집사님이 드리던 기도가 여태 남아 있다. 그분은 기도할 때마다 이렇게 기도했다. “삼시 세끼 밥만 먹으면 되는 줄 아는 우리에게, 으트게 살아야 하는 지를 가르쳐 주옵소서.” 2019. 7. 24.
토마토 한 조각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00) 토마토 한 조각 언젠가부터 교우 가정을 찾아가 예배를 드리는 심방을 할 때면 몇 가지 지키는 원칙이 있다. 감사헌금을 할 이는 교회에 하도록 권한다. 심방을 감사하여 헌금을 드리는 것은 좋으나, 심방을 받는 상에 올려놓는 모습이 썩 흔쾌하게 여겨지질 않거니와, 혹 헌금을 드릴 수 없는 형편에 있는 이들에게는 얼마나 마음이 힘든 일일까 싶기 때문이다. 헌금을 드릴 마음이 있는 이들은 교회 예배시간에 드릴 것을 권한다. 또 하나, 최소 인원으로 찾아간다. 마음속 이야기를 편하게 나누기 위해서이다. 어렵게 나눈 기도제목이 금방 소문으로 번지는 일은 드물지 않다. 어렵게 마음속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게 소문으로 번지면 어느 누가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지키는 원칙 중에는.. 2019. 7. 23.
구도와 순례로서의 독서를 실천한 옛사람의 숨결 구도와 순례로서의 독서를 실천한 옛사람의 숨결 1.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의 한두 편을 외우거나 아니면 몇 구절이라도 암송하는 구절이 있을 듯합니다. 저도 어린 시절 교회에서 시편 1편과 23편을 외우곤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시편󰡕은 제게 어떤 불편함과 곤혹감을 안겨주는 책이 되었고, 그래서 멀리한 적도 있습니다. 까닭은 시인의 탄식과 원망 속에 선인/악인,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타인을 향한 분노와 상대방을 적대하는 표현이 자주 등장했기 때문입니다.(의 표층만을 본 사람의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2. 그러나 어느 날, 을 한 편 한 편 다시 읽어나갔습니다. 무겁고 지친 마음 때문일까, 󰡔시편󰡕이 제 마음을 그대로 대신 말해주고 있는 듯했습니다. 에 이끌리어 책을 찾다 C.S. 루이스의 󰡔.. 2019. 7. 23.
빨랫줄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98) 빨랫줄 에 담긴 이정록 시인의 ‘빨랫줄’을 설교 시간에 인용했다. 글을 읽으며 피식피식 웃음이 났던 글이었다. 빨랫줄은 얼마큼 굵으면 될까요? - 네가 오줌 싼 이불을 버틸 만한 힘줄이면 되지. 전봇대는 얼마큼 굵으면 될까요? - 네가 오줌 쌀 때, 고추를 감출 만한 굵기면 되지. 철로는 얼마큼 굵으면 될까요? - 네가 엿 바꿔 먹으려 할 때, 둘러멜 수 없는 무게면 되지. ‘빨랫줄’을 소개하며 운율은 맞지 않지만, 질문 하나와 대답 하나를 보탰다. 우리의 믿음은 얼마나 무거우면 될까요? - 헛된 욕심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무거우면 되지. 2019. 7. 23.
날을 벼린다는 것 한희철의 히루 한 생각(197) 날을 벼린다는 것 우연히 접한 이야기가 있다. 한 스승이 두 제자에게 칼을 한 자루씩 주며 날을 벼리라고 했다. 잘 벼리는 자를 후계자로 삼겠다는 것이었다. 두 제자는 열심히 칼날을 갈았다. 마침내 검사를 받는 날이 되었다. 한 제자가 갈은 칼은 얼마나 예리한지 바람에 스치는 옷깃마저 베어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다른 제자가 내민 칼은 전혀 달랐다. 스승이 처음 내줄 때보다도 더 무디어진 뭉뚝한 날을 가진 칼을 내놓았던 것이다. 스승은 무딘 날을 가진 칼을 내놓은 제자를 후계자로 삼았다. 그는 칼을 갈다가 칼이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지를 깨닫고 일부러 날을 무디게 만든 것이었다. 얼마든지 더 나갈 수 있지만 스스로를 삼가 날을 무디게 만드는 것, 날을 벼린다는 것의 진정한 의.. 2019. 7. 22.
불씨 지키기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96) 불씨 지키기 오래전 읽은 책 중에 가 있다. 러시아 장교인 아르세니에프가 당시 지도상의 공백 지대로 남아있던 극동 시베리아 시호테 알린 산맥 지역을 탐사하며 탐사의 결과를 자세하게 남긴 책이다. 미답의 땅을 탐사하며 만난 대지의 속살이 아름답고도 장엄한 모습으로 담겨 있다. 오지 탐사가 우리의 경험이나 관심과는 무관한 일인 데다 지역 또한 낯선 곳이어서 무덤덤하게 읽히는 대목이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들이 숨은 비경처럼 담겨 있었다. 탐사 지역은 지도에도 표기되어 있지 않은 오지, 워낙 추운 지역이고 날씨 또한 예측을 불허하기 때문에 성공적인 탐사를 위해서는 각종 준비물을 꼼꼼하게 챙겨야만 했다. 그것은 탐사의 성공 여부를 떠나 생존과 관련된 일이어서.. 2019. 7.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