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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은 희망을 품고 반쯤은 두려움을 품은 채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58) 반쯤은 희망을 품고 반쯤은 두려움을 품은 채 “시드기야 왕(王)이 보내어 그를 이끌어 내고 왕궁(王宮)에서 그에게 비밀(秘密)히 물어 가로되 여호와께로서 받은 말씀이 있느뇨 예레미야가 대답(對答)하되 있나이다 또 가로되 왕(王)이 바벨론 왕(王)의 손에 붙임을 입으리이다”(예레미야 37:17). 같은 본문을 읽고 묵상한 다른 이의 글을 읽는 것은 조심스럽기도 하고 유익하기도 하다. 조심스러운 것은 그것이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처럼 자리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말씀과 씨름을 하며 내가 길어올릴 수 있는 묵상의 내용을, 다른 이가 길어 올린 물로 손쉽게 대신하는 우를 범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익함도 크다. 무엇보다도 다른 이의 묵상을 대하며 얻는.. 2016. 6. 21.
파추부 노인, 그 아스라한 생존자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29) 파추부 노인, 그 아스라한 생존자 지난주는 지난해 중동감기로 격리병동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지 일 년이 되는 즈음이었다. 마침 완치자 연구 프로그램에서 검사가 있어 서울대 병원엘 갔다. 의사가 가지고 있는 두꺼운 개인기록 겉장에 ‘생존자’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내가 생존자로구나.’ 그 사실을 기뻐해야할지 축하해야할지 의아스러웠다. 나중에 듣게 된 바로는 당시 입원자들 가운덴 별의별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죽음의 위협과 강제 격리 상태에서의 심각한 불안은 환자들로 하여금 다양한 반응을 일으켰던 것이다. 집에 가겠다고 난동을 부리고 의료진에게 화를 내고 살려달라고 발작을 일으키고, 개중에는 억지로 제압을 해야 하는 피치 못할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나는.. 2016. 6. 20.
두 아이의 어머니, 자식들을 지키고 싶다(1)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44) 두 아이의 어머니, 자식들을 지키고 싶다(1) 1. 두 아이를 종으로 팔아야 하는 어머니. 그 심정이 어떨까? 그런 모진 세상을 살았던 한 어머니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 어머니가 두 아이를 팔아야 하는 안타까운 지경에 처한 까닭은 가난으로 인한 빚 때문이다. 우리 사회도 그렇지만, 고대 이스라엘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가장 흔한 이유는 빚이었다. 사울을 피해서 이리 저리 떠돌던 다윗에게 몰려온 사람들 가운데 빚을 갚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2016. 6. 17.
결국을 산다는 것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27) 결국을 산다는 것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뭘 어찌해야 하는지 허둥대는 꼴이라니!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이건 분명 표절이다.) 그제는 존경하는 목사님의 출판 기념회에 갔었고 서울만 가면 도지는 촌병에 더쳐 뒤풀이도 못가고 파김치가 돼 돌아 왔다. 말 나온 김에 하는 말이지만 언제나 서울에서 느끼는(혹은 확인하는) 바는 170cm도 못 되는 내 단신의 병신스러움이다. 이런 경우 대개 작음과 못남은 짝을 이뤄 병진(竝進)해 나간다. 작음에서 못남이 발생하는 건지 못남에서 작음이 유발되는 건지 모르겠다. 짐작건대 선천적 육체의 작음이 후천적 도시의 거대함 속에 떨어진 게 사회심리학적으로 작용했으리라. 내가 사는 시골에선 작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고 외려 작으.. 2016. 6. 16.
‘성역(聖域)으로 둘러싸인 불법’과 침묵 한종호의 너른마당(43) ‘성역(聖域)으로 둘러싸인 불법’과 침묵 1970년 이후 한국교회의 모토는 ‘성장’이었다. 이것은 박정희 시대 성장정책의 논리와 궤를 같이하면서, 전도의 열정과 함께 결합하여 대형교회의 출현을 가져왔다. 경제계의 재벌과 종교계의 대형교회는 성장주의 시대의 일란성 쌍생아처럼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대형교회는 다른 무수한 교회의 선교적 모델이 되어 성장 자체가 곧 절대가치로 군림하는 환경을 만들어냈다. 성장하지 못하면 발언권이 없고, 성장하지 못하면 그것은 존재 이유가 없는 목회가 되고 말았다. 양적 성장이 곧 목회의 성공이었고, 양적 성장을 이루어내는 목회자가 곧 지도자가 되었다. 성장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성장의 신앙적, 윤리적 기초는 성찰되지 못했던 것이다. 바로 이.. 2016. 6. 14.
내게는 말씀이 있습니다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57) 내게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토굴(土窟) 옥(獄) 음실(陰室)에 들어간 지 여러 날 만에 시드기야 왕(王)이 보내어 그를 이끌어 내고 왕궁(王宮)에서 그에게 비밀(秘密)히 물어 가로되 여호와께로서 받은 말씀이 있느뇨 예레미야가 대답(對答)하되 있나이다 또 가로되 왕(王)이 바벨론 왕(王)의 손에 붙임을 입으리이다”(예레미야 37:16-17). ‘용기’(勇氣)를 사전에서는 ‘씩씩하고 굳센 기운’ 또는 ‘사물을 겁내지 않는 기개’라 풀고 있다. 예수님을 통해 생각하게 되는 용기의 모습이 있다. 풍랑이 이는 밤바다, 어부 출신의 제자들은 놀라 당황했지만, 예수님은 태연히 잠을 주무신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버지께 모든 것을 맡기고 평온함을 누리는 것, 그것이 믿.. 2016. 6. 13.
절체절명의 순간, 그들은 생명의 수호자였다 구약성경 속 여성 돋보기(2) 절체절명의 순간, 그들은 생명의 수호자였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생육과 번성뿐만 아니라 강하고 온 땅에 충만한 것을(출애굽기 1:7) 두려했던 바로는(출애굽기 1:9-10) 인구 억제를 위한 은밀하고 우회적인 방법을 동원했었다. 그러나 스스로 똑똑하다고 여겼던 폭력적인 노동정책과 히브리 산파들을 이용한 교활한 방법은 산파들의 하나님 경외 신앙에 근거한 불복종 앞에서 좌절되었다(출애굽기 1:11-20). 바로는 자신의 은밀한 방법이 실패하자 영아 학살을 위한 전면전에 돌입했다. 그는 모든 백성들에게 아들이 태어나면 나일 강에 던져 죽이라는 왕명을 내린다(출애굽기 1:22). 악하고 잔인한 국가적 법령 선포였다. 이 상황은 오랜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 일어날 사건의 전조였을까. 마치.. 2016. 6. 11.
‘얕은 물’에는 생명이 없다 ‘얕은 물’에는 생명이 없다 김교신은 세상 시스템을 ‘얕은 바다’라는 은유로 표현했다. 은급 제도, 보험제도, 교육, 기업경영 등의 ‘안전한’ 디딜 곳을 만들어 물의 깊이를 얕게 하는 것, 하여 손으로 바닥을 짚고 수영하듯 편안하게 힘 안들이고 살다 가는 인생을 “땅 짚고 헤엄치기”라고 했다. 땅을 짚었으니 빠져 죽을 염려는 없을 터이다. 인생살이가 불안하기는커녕 삶의 자세는 얼마나 여유롭고 당당하겠는가! 이리 사는 사람들은 제 생명 이 위태롭지 않으니 자연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앙망仰望’이 있을 리 없다. 뭐든 ‘내 손 안에’ 있으니… 그리 오래 살다보면 자기가 신神인 것도 같아 어디서나 이웃 생명들을 향해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려 한다. 사회적 생명은 물론 물리적 생명조차 살리고 죽이는 결정이 “땅.. 2016. 6. 9.
하느님이 그럴 리 없다(2) 구약성경의 대량학살(6) 하느님이 그럴 리 없다(2) 출애굽기 11:1-10 하느님이 정말 그런 명령을 내렸을까? 이제 마지막으로 결정적으로 중요하고 가장 궁금한 질문을 다뤄보겠습니다. 정말 하느님이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사람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을까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어린아이들과 짐승들까지 죽이라고 명령했을까요? 사울에게 아말렉 사람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을까요? 젖먹이들까지 말입니다. 또한 출애굽기 11장이 전하는 대로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야훼는 정말 이집트의 장자들을 모조리 죽였을까요? 이스라엘 백성은 그렇게 믿었습니다. 하느님이 자기들에게 그렇게 명령하셨다고 믿었고 또 실제로 그렇게 됐다고 믿었습니다. 자기들이 그 명령을 실행했다고 말입니다. 역사의 기록자들도 그렇게 믿고.. 2016. 6.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