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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사람에게 그리운 사람에게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던 아버지는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이 보고 싶을 때면 편지를 쓰곤 하셨다. 잘 지내느냐는 안부 인사와 간단한 용건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자중자애 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 전부였지만 아버지의 편지는 아버지의 존재나 다를 바 없었다. 구불구불 써내려간 가전체의 편지를 받아드는 순간 아버지의 정 깊은 눈이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호롱불 밑에서 한 자 한 자 정성껏 쓰신 그 편지는 아버지와 분리할 수 없는 일체였다. 그 편지는 고향의 냄새였고 아버지의 품이었다. 지금은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지만 세들어 살고 있던 집 대문에 걸린 우체통에서 익숙한 아버지의 손글씨를 발견하는 날이면 천하를 얻은 듯 든든했다. 그 편지를 받아들고 눈물짓던 기억은 또렷하다. 외로웠기 때.. 2016. 6. 2.
헤아려본 슬픔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26) 헤아려본 슬픔 "당나귀야! 이를 악물고 지나가자. 오르지 못할 산이 없고 지나지 못할 강이 없단다." -모옌, 붉은 수수밭. 광풍 같은시간들 1년이라는 시간의 매듭을 통해 광풍과 같이 치달렸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본다. 충격과 고통과 슬픔들이 다시금 내 몸과 맘에 재생되는 듯하다. 그 공포스럽고 견딜 수 없었던 감각들이 가족들의 내면에 어떤 상흔들을 어떤 방식으로 남겼을지 생각할수록 가슴 아프다. 그토록 가혹하게 우리를 휘몰아쳤던 세계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기억도 위로도 외면한 채 잠잠하기 야속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세상에게 그런 걸 기대할리도, 한다할지라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가장 오래 기억하는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처럼 기억은 우리들의 몫이다. 그것이.. 2016. 6. 1.
리스바, 누구도 그처럼 모권을 주장하지 않았다(2)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43) 리스바, 누구도 그처럼 모권을 주장하지 않았다(2) 1. 또 다른 비극. 또 다른 아픔. 이미 일어난 비극과 아픔을 해소하기 위해 또 다른 비극을 만들어내고 또 다른 아픔을 겪게 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가혹한 자연재해를 계기로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 했는지를 알기 위해서 과거사를 살피고 과거 역사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자들을 찾아내서 진상을 규명하고 보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진상규명과 보상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처형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가뭄과 기근의 원인으로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집단 살해한 것을 알려주신 하나님도 그것을 결코 원치 않았을 것이다. 2. 하지만 일은 그렇게 흘러갔다. 자연재해의 원인을 찾다가, 과거에 사울이 저질렀.. 2016. 5. 31.
살라! 그리고 살려내라!! 의 종횡서해(26) 살라! 그리고 살려내라!! 책을 읽는다는 것 카프카는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고 말했다. 책을 쓰는 사람은 누구나 이 문장 앞에서 멈칫거릴 수밖에 없다. 얼어붙은 바다는커녕 나태하고 안일한 일상조차 깨뜨리지 못하는 책을 꾸역꾸역 써대는 이들도 있지 않던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일까? 사사키 아타루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 삶의 안정을 교란하도록 허용한다는 것이라면서 결국 독서란 “자신의 무의식을 쥐어뜯는 일”이라 말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렇기에 위험한 일이다. 책장을 여는 순간 평온한 세계가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사키 아타루는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이 한 권의 책을 반복하여 읽는 데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루터는 .. 2016. 5. 30.
리스바, 누구도 그처럼 모권을 주장하지 않았다(1)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42) 리스바, 누구도 그처럼 모권을 주장하지 않았다(1) 1. 리스바와 메랍. 성경기자는 가혹한 삶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이 무력하고 가련한 여인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들 이야기를 슬쩍 들려준다. 성군(聖君)이라는 위대한 왕 다윗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절, 하지만 언제나 살기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혹독한 가뭄과 기근이 3년 동안 이스라엘 땅을 폭력적으로 지배했다. 상황은 참으로 끔찍했을 것이다. 인심이 사나워져서, 자연적인 폭력에 인간적인 폭력이 뒤섞였을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강한 자들이 설친다. 그리고 힘없는 사람들, 노약자들, 여자들과 아이들은 폭력에 희생당하기 쉽다. 2. 사무엘하 21장은 그 참혹한 시대 이야기를 들려준다. 줄거리는 아주 단순해 보인다... 2016. 5. 26.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영화와 함께 읽는 십계명(13)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 어느 희망에 관한 이야기 욕망과 지배 마지막 계명 역시 겉으로 드러난 행위가 아닌 마음에 품고 있는 ‘욕망’을 문제 삼습니다. 성서에서 ‘욕망’이란 말이 처음 등장하는 구절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인 창세기 3장 16절이란 사실을 아셨습니까? 한글성경이 이 구절은 다양하게 번역해서 원래 뜻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는 영어성경을 참고해야겠지요. 우선 한글성경을 보겠습니다. 개역개정판은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라고 번역했고 표준새번역은 “네가 남편을 지배하려고 해도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라고 번역했으며 공동번역은 “(너는) 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겠지만 도리어 남편의 손아귀에 들리라.”.. 2016. 5. 23.
타부의 경계선이 없는 사회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40) 타부의 경계선이 없는 사회 “타부”라는 말은 본래 폴리네시안 즉, 태평양 군도의 원주민들이 사용했던 말입니다. 그 뜻은 “금기”, 또는 “접촉하면 안 되는 대상”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애초의 의미에는, “신성한 존재”, “신적 두려움”등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말하자면, “타부”란, 그 어떤 초월적 존재에 대한 경외감이 사회적 금기로까지 확대된 문화인류학적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타부”는 그 사회의 정신적 중심에 무언가 성스러운 영역이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원시상태에서부터 문명의 상태로 진화해나가는 과정의 현상입니다. 그것이 그 사회의 질서를 나름대로 유지하고 그 구성원들에게 자신을 보다 깊이 성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2016. 5. 20.
하나님의 칼을 맞으려는가 하나님의 칼을 맞으려는가 저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야, 하는 말은 그가 매우 선량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작 그런 사람은 법이 없다면 어디 보호받을 데가 없어 곤경에 처하기 십상이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도 뭔가 석연치 않다. 왜인가? 그건, 법이 선량한 사람들, 약자들을 보호한다는 전제가 서 있을 때 가능한 논리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법이 도리어 그런 사람들을 궁지에 몰아놓고 그 권리를 박탈해버리는 일을 어렵지 않게 본다. 법이 사람 위에 군림하고 법도(法道)가 아니 법도(法刀)를 휘두르기 때문이다. 법은 돈과 권력의 기초 위에 있다 그런데 이는 사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법의 탄생은 언제나 권력자의 의지와 관련이 있다. 법은 그 권력자의 이익을 지켜내고 그에 저항하는 이들을 족쇄에 걸기 위.. 2016. 5. 19.
구원(救援)의 지평, 기어서 넘기 구원(救援)의 지평, 기어서 넘기 - 김기석 목사의 《아슬아슬한 희망》 - 가을의 끝자락, 초겨울의 문턱에서 김기석 목사의 열 번째 책 《아슬아슬한 희망》을 만났다. 꽃들은커녕 곱게 단풍이 든 나뭇잎들에게조차 암담한 계절, 이제는 추운 바람과 눈서리 겪는 일만 남은 계절에, 이 책은 ‘아슬아슬’하게 우리에게 왔다. 이기적으로 저만 챙기게 태어난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신학을 하면서 겨우겨우 애써가며 배워온 것들을, 김기석 목사는 그냥 ‘타고난’ 것 같다. 조개 잡고 갈매기 쫓으며 팔랑팔랑 뛰어다니느라 바닥 볼 일 없이 바빴던 어린 시절 나의 개펄에의 추억이 무색하게도, 그는 어려서부터 시선을 바닥에, 땅에 두며 살았다. “온 몸으로 바닥을 기어가는 것들에 대한 이상한 연민”(12쪽)이 있었다 한다. 개.. 2016. 5.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