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03)

 

노동의 아름다움

 

정릉교회 예배당 맞은편에선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다. 감리교 은퇴 여교역자를 위한 안식관을 짓고 있는데, 담임목사실 창문을 통해 바라보면 공사하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지난 겨울 터를 파기 시작할 때부터 2층을 올리려고 준비하는 지금까지 거의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집을 짓는 모습을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자세히 바라보기는 처음인데, 재미있다. 공정마다 서로 다른 장비와 재료와 인원이 동원된다. 신기하게 여겨지는 장비들이 한둘이 아니다. 분명히 다양한 과정과 일들이 있을 터인데 어떻게 그 과정을 이해하고 주어진 일을 해나가는 것인지, 건축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주어진 하루의 일을 하고, 그 하루하루의 결과물이 쌓이면서 조금씩 건물의 형태가 만들어져 간다.

 

 

 

오늘은 1층에서 2층을 올리기 위한 작업을 하는 모양이다. 기둥에 해당하는 곳에 철근 기둥들을 세워 올렸다. 빈 공간을 만들어 그 공간에서 사람들이 살도록 하는 것이 집이지만,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둥이 힘을 떠받쳐야 한다. 힘을 잘 받기 위해 온통 기둥을 세우면 공간을 만들 수가 없다. 기둥과 공간의 절묘한 조화를 누가 어떻게 산출해내는 것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오늘의 주된 작업 중의 하나는 거푸집을 만드는 것 같다. 철근작업과 함께 곳곳에 거푸집을 만들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가면서 꼴을 갖춰가는 형태도 형태지만 이따금씩 궁금해서 밖을 내다보게 하는 것이 따로 있었다. 못을 박는 망치소리였다. 몇 명이 망치를 들고 있는 것인지 망치질을 하는 소리가 마치 연주를 하는 것처럼 들렸고, 그 묘한 소리는 옛 시간 하나를 떠올리게 했다.

 

독일에서 목회를 할 때였다. 어느 날인가 프랑크푸르트 시내 자일(Zeil)거리를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감미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 속에 섞인 향기처럼 낮고 은은한 소리였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한 사람이 연주를 하고 있었다. 머리에 쓰고 있는 둥근 키파와 넉넉하게 기른 수염, 그리고 입고 있는 하얀 옷이 영락없이 랍비를 떠올리게 하는 한 남자가 스스로 음악에 취한 채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가 만들어내는 소리가 놀라웠다. 자일러폰이었는데, 건반 수가 굉장히 많았다. 소리도 깊고 은은했다. 손에 들고 채도 도대체 몇 개야 싶을 만큼 여러 개여서 어떻게 저 많은 채를 한꺼번에 들고 한 사람이 연주를 할까 싶었다. 울려나오는 소리는 여러 사람이 함께 연주하는 소리였는데, 그걸 한 사람이 하고 있으니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단순히 멜로디만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어서 절묘하고 기가 막힌 화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한참을 서서 연주를 듣다가 그가 쉬는 시간 시디 한 장을 구입했다. 그냥 지나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여겨졌다. 연주가 환상적이었다고 인사를 하자 그는 기꺼이 음반에 사인까지 해주었다. 지금도 그 음반을 가지고 있는데 꺼내보니 연주자는 Alex Jacobowitz, 음반의 제목은 <The Art of Xylos>이다. 혹시 나만 모르는 세계적인 거장을 길거리에서 만난 것은 아니었나 모르겠다.  

  

공사 현장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망치질을 하는 소리는 그때 그 연주, 프랑크푸르트 자일거리에서 들었던 연주를 떠올리게 했다. 맞다, 어디 자일러폰의 연주뿐이겠는가. 함께 땀 흘려 집을 짓는 노동 자체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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