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06) 

 

개구리 함정

 

시간이 지나가도 잊히지 않는 일들이 있다. 그 때는 몰랐지만 마음속 뿌리라도 내린 듯 오래 남는 기억들이 있다. 잊힌 듯 묻혀 있다가도 어느 순간 불쑥 떠오르곤 한다. 때를 기다려 눈을 뜨는 땅속 씨앗들처럼. 


그런 점에서 따뜻한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진짜 부자인지도 모른다. ‘어릴 적 가족들과 나눈 따뜻한 기억 몇 가지가 평생 우리를 지켜준다.’ 했던 도스토옙스키의 말도 그런 의미 아닐까 싶다.
 
마음속에 남아 있는 기억 중에는 초등학교 때 일이 있다. 그날따라 종례시간에 들어온 선생님의 얼굴은 무거워 보였다. 오늘은 중요한 일이 있으니 집에 늦게 가야겠다며 밖으로 나가 개구리를 한 마리씩 잡아오라고 했다.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던 것은 이미 땅이 얼어붙은 겨울, 도대체 개구리를 어디서 잡으라는 걸까 싶으면서도 우리는 각기 흩어져 학교 주변을 헤집고 다녔다. 


땅거미가 깔려들 무렵 우리는 다시 교실로 모였다. 와서 보니 교탁 위에는 시커먼 보자기에 덮인 뭔가가 놓여 있었다. 어항이었는데, 어항 속엔 우리가 잡아온 개구리 중에서 제일 큰 놈 한 마리가 담겨 있었다. 선생님 설명이 그랬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한 명씩 나와서 어항 속에 손을 넣으라고 했다. 두 번째 손가락 검지가 어항 바닥에 닿도록 넣으라고 했다. 선생님이 그렇게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며칠 전 납부금을 잃어버린 친구가 있었는데, 가져간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개구리는 영물이라 누가 가져갔는지를 알아 그 손이 들어오면 꽉 깨물 것이라고 했다. 

 

 


그날 나 말고도 대여섯 명이 걸렸다. 어항에 차례대로 손을 넣게 한 후 선생님은 한 명씩 손가락 검사를 해서 몇 명을 잡아냈다. 개구리가 잘못 알고 내 손가락을 깨물면 어떡하나, 개구리가 손가락을 깨물다니, 맹세코 나는 친구의 돈에 손을 대지 않았지만 그런 두려움에 손가락을 바닥까지 넣지 못했다. 어항에 손을 넣는 척 하다가 중간쯤에서 얼른 빼고 말았고, 그런 내 손에 먹물이 묻을 리가 없었던 것이었다. 


나중에 짐작해낸 것이지만 그때 어항 밑엔 개구리가 없었다. 먹물만 깔려 있었다. 어린 나이, 선생님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은 우리들의 순진함 때문이었다.


다음날 잃어버린 줄 알았던 돈이 친구의 전과책 사이에서 나와 누명은 벗었지만, 개구리 일로 마음에 남은 두려움과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아, 지금까지도 기억의 상자 속에 남아 있다. 어항은 작았지만 내겐 깊고 큰 함정이었던 것이다. 


누군가를 함정을 숨기고 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를 초등학교 시절 나는 개구리 함정을 통해 배운 셈이다. 함정의 정체나 모양이 어떠하든, 그리고 효과가 어떠하든, 함정을 숨기고 누군가를 대한다는 것은 결국 그에게 큰 상처를 남기는 일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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