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35)

 

맞은편에서 보면

 

경북북지방 연합성회에 다녀왔다. 안동과 영주를 중심으로 구성된 경북북지방은 4개 시(市)와 6개 군(郡)으로 이루어진 지방이었다. 한 개 도시에도 여러 개의 지방으로 나누어져 있는 도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한 지방의 이 쪽 끝에서 저 쪽 끝까지 가는데 차로 3시간이 걸린다니, 29개 교회가 얼마나 넓게 퍼져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집회는 영주에 있는 영주성민교회에서 열렸는데,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두 시간 가량을 오가는 교회도 있었다. 두 시간 가령을 달려와 말씀을 듣고 다시 밤길 두 시간을 달려 돌아가야 하니 지극한 마음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싶었다.


대부분은 오지에 있는 작은 교회들, 모두가 또 하나의 단강이라 여겨졌다. 그래서 그랬을까, 말씀을 나누는 마음이 남달랐다. 그야말로 우리들의 이야기로 여겨졌다. 그것은 말씀을 듣는 이들도 그랬고, 말씀을 전하는 나도 그랬다. 말씀을 전하는 자와 듣는 자의 경계가 사라진, 드문 경험을 한 셈이었다.

 

지역을 중심으로 식사를 하게 되어 한 시간 이상을 달려 점심을 먹기도 했다. 지역의 문화와 전통을 사랑하는 목회자들이 많아 배울 것이 많았다. 듣는 이야기마다 범상치 않은 이야기들이었다.


마지막 날은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농암 이현보 선생의 집인 농암종택에 들렀다. 돌아오는 길목이기도 했거니와 강사에게 잘 어울리는 곳일 것 같다며 지방 목회자들이 꼭 보여주고 싶어 하던 곳이기도 했다.


첩첩산중, 들어가는 길 자체가 너무도 아름다웠다. 미스터 선샤인이라는 드라마를 촬영한 곳이기도 했단다. 퇴계 이황이 거닐었던 길이 ‘예던길’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어, 언제 한 번 찬찬히 걷고 싶다는 바람을 아름다운 풍광을 담듯 설레는 마음으로 담아두기도 했다.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있는 농암종택은 원래의 자리가 아니었다. 본래 있던 곳은 분천마을, 1976년 안동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되면서 안동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던 종택과 사당, 긍구당(肯構堂)을 영천이씨 문중의 종손 이성원 씨가 한 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었다.

 

새롭게 농암종택이 들어선 ‘가송리’는 그냥 생긴 이름이 아니었다. ‘佳松’, 아름다운 소나무의 마을이었다. 가송리의 협곡을 끼고 흐르는 낙동강은 낙동강 700리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라 했다. 마을 앞을 흐르는 낙동강과 강물을 따라 병풍처럼 둘러선 단애(斷崖), 푸른 빛 가득한 소나무와 은빛 모래가 빛나는 강변, 감탄이 아깝지 않은 절경 속에 절경을 거스르지 않는 모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모든 것이 아름답다며 감탄을 하자 동행을 했던 호대원 목사님이 내게 말했다. 그는 누구보다도 지역 곳곳에 서린 정신적인 유산을 소중히 여기는 목사님이었다.


“이곳도 아름답지만 실은 옮기기 전의 본래 자리가 훨씬 더 아름다웠다고 해요.” 


이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 어디 있을까 싶은데, 호 목사님은 강 건너편 산 중턱쯤을 가리키며 한 마디를 더 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아름답지만, 저곳에서 이곳을 바라보면 더 아름다워요.”

 

맞은편에서 바라보면 더 아름다운, 우리가 평생 꿈꿔야 할 삶이 그 한 마디 속에 다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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