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36)

 

은퇴(隱退)와 염퇴(恬退)

 

은퇴(隱退)는 ‘숨길 은’(隱)과 ‘물러날 퇴’(退)로 된 말이다. 직임에서 물러나거나 사회 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낸다는 사전적인 의미를 넘어 물러나 숨는 것, 혹은 숨기 위해 물러나는 것이 은퇴였던 것이다. 물러난 뒤에도 숨지 못하는 이들이 많고, 포곡은사처럼 어설프게 나섬으로 뒷모습이 아름답지 못한 경우들이 적지 않으니 물러나 숨는다는 의미는 얼마든지 새겨둘 만한 것이었다.

 

농암 이현보를 통해 알게 된 말 중에 ‘염퇴’(恬退)가 있다. 염퇴란 명리(名利)에 뜻이 없어서 벼슬을 내려놓고 물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얼마든지 출세의 길이 있음에도 그 모든 것을 등지고 고향을 찾은 농암에게 어울렸던 말이 ‘염퇴’였던 것이다.

 

염퇴의 길을 나서며 농암은 시 한 수를 남긴다.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말뿐이오 간 사람 없어
전원이 황폐해지니 아니 가고 어쩔꼬
초당에 청풍명월이 나며 들며 기다리나니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온 농암은 聾巖에 올라 감격적인 시 한 수를 다시 읊었다.
 
농암에 올라보니 노안이 더욱 밝아지는구나
인간사 변한들 산천이야 변할까
바위 앞 저 산 저 언덕 어제 본 듯하여라

 

 

 

 

농암(聾巖)은 ‘귀먹바위’ ‘귀머거리바위’다. 바위치고 귀먹바위 아닌 것이 없는데, 고향의 바위 하나 자신의 호로 삼았으니 가히 은퇴와 염퇴의 길을 갈만한 삶이다 싶다. 聾巖은 남의 말에 솔깃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 일 저 일에 기웃거리지도 않을 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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