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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향기로 존재를

by 한종호 2019. 6. 6.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55)

 

향기로 존재를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목양실에 올라와 앉으면 세상이 고요하다. 아직 만물이 깨어나지 않은 시간, 시간도 마음도 고요해진다. 설교를 준비하기에도 좋고, 글을 쓰기에도 좋고, 책을 읽기에도 좋은, 가히 아낄만한 시간이다. 때로는 음악을 듣기도 하지만, 그것조차 고요함을 깨트린다 싶으면 얼마든지 삼간다. 

며칠 전이었다. 그날도 새벽기도회를 마치고는 목양실로 올라와 책상에 앉아 원고를 쓰기 시작을 했는데, 어디선가 알 수 없는 향기가 전해졌다. 모르던 향기였다. 흔한 향기가 아니었다. 애써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그러느라 무심결에 드러났다 잠깐 사이 사라지는 향기였다. 내가 맡은 것은 그런 향기의 뒷모습이지 싶었다. 그럴수록 향기는 예사롭지가 않았다. 마음을 베는 듯 뭔가 날카롭고 깊은 느낌이었는데, 무디고 마른 감각을 일깨우는 향기였다. 

내 방에 들어온 낯선 향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향기의 근원을 찾아보기로 했다. 향기의 근원을 찾다니, 이런 일도 다 있구나 싶었다. 처음 맡은 향기였고 짐작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향기였지만 의외로 금방 향기의 근원을 찾아냈다. 

 

 

 


목양실 창가 쪽에는 화분이 몇 개 있는데, 못 보던 화분 하나가 눈에 띄었다. 한창 꽃을 피운 난이었다. 유난히 키가 작은 화분에서 꽃대가 올라와 꽃을 피웠는데, 꽃의 빛깔도 범상치 않았다. 검은 빛을 머금은 진한 적색이었다. 현란한 탱고 춤사위를 떠올리게 하는, 방금 맡은 향기와 그럴 듯이 어울리는 빛깔이었다. 얼굴을 가까이 대고 맡으니 방금 전에 맡았던, 바로 그 향기였다.

알고 보니 권사님 한 분이 전한 것을 사무 간사가 올려다 놓은 것이었다. 며칠간 집회를 인도하고 돌아와 화분을 전했다는 것도, 창가 쪽에 놓아두었다는 것도 몰랐던 일이었다. 

향기만큼이나 나를 즐겁게 한 것이 있다.
숨겨진 자신의 존재를 향기로 알리는 것이 세상에 있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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