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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교각살우

by 한종호 2019. 6. 19.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67)

 

교각살우

 

여러 해 전이었다. 교회학교 아이들과 함께 단강을 찾았다. 손으로 모를 심으며 쌀 한 톨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아이들과 함께 단강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마을 어른 한 분이 괜찮다면 소로 밭을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마침 산에 있는 밭을 갈 일이 있는데, 도시 아이들이 언제 소로 밭을 가는 걸 보았겠느냐며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의미 있는 시간이겠다 싶어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섬뜰마을 꼭대기에 있는 저수지를 끼고 산길을 올라 밭에서 일하고 있는 마을 분을 만날 수 있었다. 단강에서 목회를 할 때 섬뜰 반장을 지낸 김사식 씨였다. 아이들은 쟁기질을 멈추고 자신들 앞에 선 마을 어른을 박수로 맞았다. 김사식 씨는 도시에서 온 아이들에게 농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금도 산에 있는 밭은 소를 부려서 간다고, 그런 점에서 소는 식구와 같다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마치고는 다시 밭을 갈기 시작했는데,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금을 긋듯 쟁깃날에 흙이 갈아엎어지는 모습을 아이들은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소를 몰며 외치는 “이럇!” 소리와 소를 멈추며 내는  “외, 워!” 소리 또한 그동안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을 것이다.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아이들에게 젊은 사람 다 떠나고 노인들이 남아 농사를 짓는 농촌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묵묵히 일하는 소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겨릿소’ 이야기를 들려준 뒤에 소에 관한 문제 하나를 냈다. ‘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잡는다(죽인다)’는 말을 사자성어로 뭐라 하는지를 물었다. 그 자리에는 선생님들도 있었는데, 이래저래 일하는 소를 본 시간을 기억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뜻밖에도 한 아이가 대뜸 대답을 했다. “교각살우요!” 그렇게 대답을 한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었다. ‘矯角殺牛’라는 말을 초등학교 학생이 알고 있다니, 너무도 놀라웠다. 문제를 내고서도 아이의 대답이 놀라워 교각살우의 다시 뜻을 묻자,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바로잡을 교’ ‘뿔 각’ ‘죽일 살’ ‘소 우’” 요행히 대답한 것이 아니니, 더 이상 묻지 말라는 것 같았다. 

 

오늘날 목사들이 교우들을 너무 무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모른다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삼아 가르치려고만 하고,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하며 세상 속에서 신앙인으로 살게 하기보다는 손에 쥐어준 대답만을 들고 그것만을 따르게 함으로 생각 없는 존재로 전락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나누던 날,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떠오른 것은 ‘교각살우’를 말한 한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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