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80)
간도 큰 사람
창밖으로 내다보니 권사님이 일을 하고 있었다. 올 들어 가장 무덥다는 날씨, 장마가 소강상태여서 습도까지 높아 그야말로 후텁지근하기 그지없는 날씨였다. 그런데도 권사님은 교회를 찾아와 소나무 다듬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조경위원회 일을 맡으신 뒤론 시간이 될 때마다 들러 예배당 주변을 가꾸신다.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 두 개를 챙겨 내려갔다. 권사님은 내가 온 줄도 모르고 일에 열중이었다.
“잠깐 쉬었다 하세요.”
손을 멈춘 권사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조경 일을 하는 권사님은 하루 일을 마친 뒤 집에 가서 땀범벅인 옷을 갈아입고 다시 교회로 달려온 것이었다. 지금이 소나무를 다듬기에는 적기라며 예배당 초입에 서 있는 소나무 가지를 다듬는 중이었다. 소나무가 오랜만에 이발을 하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나누던 권사님이 쓴웃음을 지으며 한 마디를 했다.
“참 간도 커요.”
무슨 이야긴가 싶어 물었더니, 다시 꽃 이야기였다. 예배당 마당에 심어놓은 꽃을 캐가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고민 끝에 파고라 기둥에 CCTV를 설치해 두었다. 누가 캐 가는지를 밝히려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카메라가 충분한 각성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권사님의 말에 의하면 여전히 꽃을 캐가는 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여전히 좋은 꽃만 골라서 캐간다는 것이다.
간이 너무 커져서 내가 원하는 것 외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 CCTV 다음의 대답은 무엇이 되어야 할지 문제가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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