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웅의 인문학 산책
도리어 애틋한 시작
시간이 빈틈을 보이는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어김없는 순서로 계절은 우리에게 육박해 들어오고, 우리는 때때로 그것을 마치 기습이나 당한 것처럼 여기기조차 합니다. “어느 새”라는 말은 우리의 무방비한 자세를 폭로하는 것이지 시간의 냉혹함을 일깨우는 말은 아닙니다.
활을 한 번도 쏘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마저도 한해의 마지막 달력을 응시하는 순간, “세월이 쏜 살 같다”는 표현이 전혀 낯설거나 또는 자주 들었다고 해서 구태의연하지 않음을 느끼게 됩니다. 나이만큼 그 속도는 비례한다고 하는 이야기는 그리 헛되지 않습니다. 남은 시간에 대한 자세의 차이가 가져오는 속도감의 격차입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만 볼 수는 또 없을 지도 모릅니다. 나이보다는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가도 사실 더 관건일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점차 이루어내고 있는 이들에게는 그 기대를 완성시키는 기쁨이 다가오는 듯하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느끼면 자신에게 허락된 여유를 치밀하게 측정해야 하는 초조함이 깊어질 것입니다.
한 번 이상을 살아볼 수 없는 인생에서 아쉬움은 늘 아물지 않는 상처처럼 있게 마련입니다. 뿐만 아니라 “만일”이라는 가정은 현실에서 어떤 환경과 상황을 만들어 본다 해도 실험할 수도 없는 가상의 시나리오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단 한번 주어진 인생의 기회는 도저히 낭비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낭비라는 것도 애초에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라면, 그래서 결과론적으로 평가할 때 비로소 생기는 후회나 억울함이라면 사전에 이를 막을 도리는 아예 없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오만하려 해도 도저히 전지전능할 까닭이 없는 인간의 숙명 같은 조건에 기인한 사태일 것입니다.
알고 보니 쓸모없는 경험, 이제 와서 보니 굳이 돌아갈 필요가 없었던 여정, 안목이 좁았던 탓에 미루거나 거부해버렸던 결정과 선택, 결코 놓쳐서는 안 되었던 인연 들 모두가 다 따지고 보면 충분히 기회를 용납해주었던 시간 앞에서 빈틈을 보인 자신의 모습 그 자체입니다. 이를 뚜렷이 절감하기까지는 역시 시간의 훈련으로 마음이 익어가는 과정이 필요한 가 봅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잃은 듯하지만 얻는 것이 있고, 얻는 듯하지만 잃어가는 것이 있습니다. 상실했다고 슬퍼해도 그걸 넘는 깨우침이 있으면 그는 새로운 자아를 얻을 것입니다. 반면에, 무언가 성취했다고 즐거워해도 그것에 그대로 취하면 그는 황무지에서 헤매고 있는 그의 영혼을 어느 날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실패하면 그나마 자신을 돌아보지만, 성공하면 세상의 갈채에 금세 취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기로에 서서 자기 자신을 진실 되게 채울 수 있다면 그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시간이란 어차피 가게 되어 있으며 늙음은 오지 말라 해도 우리 몸에 미처 알아차릴 사이도 없이 스며들고, 후회란 시간을 돌이킬 수 없을 바에야 결국 부질없는 자기학대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을 맞이하면서 사실 그건 마지막이 아니라 언제나 새롭게 주어지는 생명의 애틋한 시작임을 안다면, 아쉬움보다 감사함이 앞서지 않을까 합니다. “그해 12월은 내게…” 하는 아름다운 회상이 있을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이 깊어지는 나날입니다.
김민웅/전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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