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87)

 

 파격 

 

조심스러운 선택이었다. 아무리 광고 시간이라 하여도 주일 예배시간에 일상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튼다는 것은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광장, 콘트라베이스를 들고 있는 한 사람 앞에서 한 소녀가 리코더를 연주하는 일로 영상은 시작이 된다. 검은 안경을 쓴 채 콘트라베이스를 들고 있는 이는 소녀의 연주를 받아 세상의 모든 음을 떠받치고도 남을 것 같은 저음으로 연주를 하고, 그러는 사이 평상복을 입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하나씩 자신의 악기를 들고 모여들어 연주에 참여를 한다. 그들이 연주하는 곡은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 마침내 누가 합창단원인지 일반 시민인지 구별할 수 없는 수많은 이들이 합창에 동참을 한다.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광장에 둘러선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생각하지 못한 연주를 사진과 영상으로 남기기도 하고, 뽕나무로 오른 삭개오처럼 가로등에 올라가 바라보기도 한다. 잠깐 사이 지나가는 모습이었지만 헤드폰을 끼고 있던 한 소년이 연주를 듣기 위해 헤드폰을 벗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그 연주는 서로 모르는 불특정 다수가 인터넷과 전자 메일, 휴대전화 등의 연락을 통하여 약속된 시간에, 약속된 장소에 모여, 짧은 시간 동안 주어진 놀이나 행동을 취하고는 금세 제각기 흩어지는 일종의 플래시몹이었다.


마침 전교인수련회의 주제를 ‘나보다 아름다운 우리’라 정했고 교우들에게 수련회를 알리는 시간, 서로의 마음을 합할 때 놀라운 결과가 가능함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동기부여가 될 수 있겠다 싶었던 것이다.

 

영상을 보는 교우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거룩한 예배 시간에 이런 영상이 웬일이냐며 불편해 하는 교우들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영상이 모두 끝났을 때 박수를 치는 교우들이 적지 않았다. 박수는 충분한 공감의 의미로 다가왔다.


광장 한복판에서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지기 위해서는, 거리에서 함께 드리는 예배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악기를 들고 광장으로 나온 오케스트라 단원들처럼 격을 깨는 파격破格이 필요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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