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90)
버릴 수 없는 기억
교우들 가정을 찾아가 예배를 드리는 대심방이 진행 중이다. 어제는 따로 시간을 내어 요양원에서 지내는 어른들을 찾아갔다. 한 때는 정릉교회에 출석을 했지만 이제는 연로하여 요양원에서 지내는 몇 몇 어른들이 있다. 연세로나 건강으로나 더 이상 그분들이 교회를 찾는 일은 어렵겠지만, 그럴수록 심방 중에 찾아뵙는 것은 도리다 싶었다.
북한산 인수봉 아래에 자리 잡은 요양원은 무엇보다 조용해서 좋았다. 공기도 맑게 느껴졌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서 만난 권사님은 착한 치매가 찾아온 분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나오신 권사님은 얌전히 의자에 앉아 무엇을 물어도 가만 웃으시며 짧은 대답만을 반복하실 뿐이었다.
권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가슴이 뭉클했던 것은 권사님이 몸에 두르고 있는 포대기 안에 담긴 무엇인가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천으로 만든 작은 인형이었는데, 얼마나 만졌는지 때가 탄 아기 인형이었다.
권사님은 당신이 살아오신 삶의 많은 순간들을, 어쩌면 모든 순간들을 잊어버리셨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도 얼굴도 어떤 것도 기억을 못 하신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 하신 말씀에 의하면 권사님은 마침내 아이와 같이 되신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잊어버렸지만 권사님에겐 끝내 버리지 못한 마지막 기억 한 가지가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버리려야 버릴 수가 없는 기억이다. 자식들 품에 안고 젖을 먹이던, 아무리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어도 어린 자식들 굶기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젖을 물리던 모정인 것이다. 권사님이 포대기를 두르고 가슴으로 안은 작은 아기 인형은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권사님이 버릴 수 없는 마지막 기억이 무엇일지를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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