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91)
시(詩)와 밥
원고를 쓰다가 문득 떠오른 한 가지 일이 있다. 이태 전쯤이었나, 독서캠프에 참석을 했을 때의 일이다. 장로님 한 분이 운전을 하며 동행을 해주셨다. 길은 멀어도 함께 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모임 장소에 도착을 했을 때는 막 점심식사가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누가 독서캠프 아니랄까 그런지 시 하나를 외워야만 밥을 준다는 것이었다. 수련회에 가서 성경구절을 외우지 못하면 밥을 안 주는 모습을 본 적은 있지만, 시를 외워야 밥을 먹는 모임은 처음이었다.
엄격함과는 거리가 먼 기쁨지기가 검사를 하는 것이어서 크게 부담이 될 것은 없었는데, 그래도 맘에 걸렸던 것이 장로님이었다. 장로님이 외우는 시가 따로 있을 것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기쁨지기 앞에 가서 물었다. 둘이서 하나의 시를 나눠 외워도 되겠느냐고. 얼마든지 된다고 했다. 장로님 귀에 대고 짧게 귀띔을 했고, 우린 보란 듯이 밥을 먹을 수가 있었다. 그날 장로님과 함께 외운 시는 문삼석의 ‘그냥’이었다.
엄만 왜
내가 좋아?
- 그냥
넌 왜
엄마가 좋아?
- 그냥
시를 어떻게 나눠 외웠는지는 굳이 밝히지 않겠다. 두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하나는, 기쁨지기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긴 했지만 아무 말도 못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는 때때로 밥이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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