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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조선적(朝鮮籍)

by 한종호 2019. 7. 17.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93)

 

조선적(朝鮮籍) 

 

파주 출판단지 안에 있는 도서관 <지혜의 숲>에 다녀왔다.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열리는 ‘윤동주 시와 함께 하는 한일교류 한글 서예축제’를 보기 위해서였다. 홍순관 집사님의 작품과 일본 오카야마 조선학교 학생들의 서예 작품을 함께 전시하고 있었다.

 

글씨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이 무얼 알까만 홍 집사님의 한글 글씨 속엔 자유로움과 멋이 그럴 듯이 깃들어 있지 싶다. 언뜻언뜻 장일순도 보이고, 추사도 느껴진다. 어느덧 자연스러움에 가까워져 글씨가 곧 사물을 담아낸다. 글씨와 사물의 경계가 지워져 하나로 만나는 지점에 가깝다 싶다.

 

 


 

 

이번에 전시되고 있는 ‘나무’라는 글씨를 봐도 그랬다. 내 방에도 걸려 있는 ‘나무’라는 글씨는 군더더기 하나 없는 ‘나무’다. 나무 한 두 그루가 서로 어울려 서 있다. 조금만 눈여겨보면 그것이 ‘나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가 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회에 걸린 ‘나무’는 조금 달랐다. 옹이 지고 뒤틀린, 투박하고 거친 나무였다. 상처를 얼마든지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인, ‘나무’의 진면목을 제대로 담았지 싶었다.

 

 

 

 

조금 늦게 합류한 김기석 형과 한종호 목사님과 함께 홍 집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둘러본 뒤, 한쪽에서 상영되고 있는 영상을 보았다. 홍집사님이 일본 조선학교를 다녀올 때 찍은 영상이었다. 학생들의 표정과 몸가짐이 더없이 해맑았다.


조선학교에 대해 이야기를 듣다가 처음 듣게 된 말이 있었다. 일본에 있는 조선학교는 남한 국적의 학생들도 있고 북한 국적의 학생들도 있는데, 그들 중에는 ‘조선적’(朝鮮籍)을 가진 학생들도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적’이라는 말은 낯설게 다가왔다. 정치적으로든 이념적으로든 어느 한쪽에 속하거나 기울지 않은 채 어떤 것으로도 나뉠 수 없는 우리 본래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이들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법적으로 어떤 혜택이나 보호를 받을 수가 없음에도 고집스레 ‘조선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믿음의 길을 걷는다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끝내 버릴 수 없는 적(籍)을 고집하는, 세상 속에서 세상을 살면서도, 손해와 외로움을 감수하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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