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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시간 여행(2)

by 한종호 2019. 8. 21.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35)

 

시간 여행(2)
   

주보 <얘기마을>에는 ‘목회수첩’이라는 면이 있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하는 자리였다. 애정과 책임감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싶었는데, 글을 쓰는 마음이 늘 조심스러웠던 자리였다.


숫자로 표시하던 ‘목회수첩’ 이야기는 2965번에서 멈췄다. 단강에서 독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쓴 글이 2001년 9월 9일자 <얘기마을>에 담겨 있었다. 무슨 까닭일까, 오래 전 쓴 글을 읽는데도 여전히 두 눈이 젖는 것은.

 

 

 


 

사실 오늘 막걸리를 몇 잔 마셨습니다. 처음 마셔보는 막걸리에 약간의 취기마저 느낍니다. 마을의 젊은 사람들이 마련한 저녁을 함께 먹으며 마주 앉은 재철 씨가 따라주는 막걸리를 기꺼이 받았습니다.


59년 돼지 띠, 재철 씨는 나와 동갑입니다. 그러나 농촌에 산다는 이유로 재철 씨는 아직 결혼을 못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요, 재철 씨는 막걸리를 유난히 좋아합니다. 재철 씨에게 언젠가 “재철 씨가 따라주는 막걸리를 마시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재철 씨의 아픔으로 한걸음 다가가고 싶었습니다. 재철 씨도 한 걸음 다가오면 우리는 형제처럼 만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송별 모임. 이렇게 먼 길을 떠나고 나면 재철 씨와의 약속을 못 지키지 싶어 기꺼이 재철 씨가 주는 잔을 받았습니다. 자꾸 마음이 무너지는 재철 씨 앞에 나도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습니다. 15년, 정들만 하니까 멀리 떠나가는 사람, 갈 사람은 가는구나 당연히 여기며 욕이나 한 마디 하면 될 것을, 무엇 그리 아쉬움에 자리를 만들고 막상 같이 있을 땐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을 밤이 늦도록 나누니 고맙고 송구할 뿐입니다.

 

옆에 앉은 병철 씨는 자꾸 울먹울먹하고, 그러다 노래를 자청했고, 병철 씨의 애창곡 ‘칠갑산’을 청했지만 병철 씨는 굳이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병철 씨가 부른 노래는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였습니다. 준이 아버지가 생각나는 대로 따라했는데, 그 노래를 들으며 마음은 눈물에 젖었습니다. 내가 눈물을 보이면 자리가 아니다 싶어 마음을 눌렀지만 같이 얼싸안고 울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요, 이젠 단강을 떠납니다. 내 마음의 고향, 내 삶의 분신과 같았던 곳,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스승, 두고 온 북한 땅 고향을 그리시다 떠난 아버님이 누우신 곳, 멀리서 뒷모습만 보아도 말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아는 정겨운 사람들이 사는 곳, 이젠 이곳을 떠납니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낯선 곳으로 갑니다. 주님의 교회가 큰 상처를 입어 주저앉았다는 말을 듣고 대답을 했습니다. 다시 땅 끝으로 부르시는구나, 나를 광야로 내모시는구나, 주님의 부르심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단강으로 처음 들어오던 날이 떠오릅니다. 3월 25일이었지만 진눈깨비가 사납게 날렸습니다. 어딘지도 모르는 단강을 향할 때의 마음, 창립예배를 드리던 날 첫 발을 내딛은 기억이 소중하게 남아있습니다. 아무도 가려하지 않던 사마리아 성을 찾아가 그 성을 기쁨의 성으로 만든 빌립, 성령께서 그를 또 다시 광야로 이끌자 다시 그 길을 떠나는 빌립을 생각하며 언젠가 기회가 주어지면 빌립이 걸어간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가는 그 길을 걸어보고 싶었는데, 이번의 부름이 내게는 그런 부름으로 여겨집니다.

 

떠난다는 말을 처음으로 교우들에게 할 땐 무슨 큰 죄를 짓는 것 같았습니다. 눈물, 탄식, 한숨, 망연한 눈빛. 덩달아 뜨거운 눈물이 솟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안 된다고 사정을 하기도 하고, 땅에 주저앉아 아이처럼 울고, 아무 말도 못한 채 손만 마주잡고. 예배가 끝났는데도 돌아설 줄을 모르고…. 떠남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이리도 힘든 일인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는 못하니 하나님이 목사님 가는 길 막아달라고 교우들이 기도를 드릴 땐 다시 한 번 주님의 뜻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대로 힘들어 했습니다. 외출한 목사를 기다리며 밤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나눴답니다. 다음날 박종관 씨 집에서 어르신 몇 분을 만났더니 둘 중의 하나를 택하랍니다. 아예 교회 문을 대못으로 걸어 닫고 떠나든지, 당신들이 모두 교회에 나올 테니 남아달라고요.


깊은 한숨과 함께 두 눈이 젖고 말았습니다. 당신들이 교회에 나올 테니 떠나지 말라니요. 내가 정말 떠나도 되는가, 내가 지금 어디를 떠나 어디로 가려 하는가, 이미 정한 일이면서도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욕을 먹더라도 난 못 갑니다, 떠날 수 없습니다, 해야 되는 것 아닌가, 고마운 인사로 받기에는 너무 마음이 아프고 아렸습니다. 이런 분들을 두고 떠나려 하는 나 자신이 안쓰럽고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곧 돌아오겠다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인지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지금은 떠나지만 언젠가 꼭 돌아오겠노라고, 한참을 같은 말을 했습니다. ‘고맙게도’ 목사의 말을 받아주신 그분들은 오히려 나를 위로했고, 마을 사람들과 같이 식사할 자리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지나온, 쉽지만은 않았던 단강에서의 시간이 눈물로 녹아 아름다운 강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은물결과 은모래로 아름답게 빛나는 강, 지나온 모든 시간과 일들이 문득 하나의 아름다운 강으로 변하는 은총이라니요!

 

이곳을 떠나 최악의 상황으로 빠졌다는 그 곳, 독일로 갑니다. 주저함 떨치고 약한 마음 버리고 갑니다. 다시 한 번 내 삶을 이끄시는 주님을 만나려 합니다. 조금씩 상처가 회복되고, 잃어버렸던 웃음을 되찾게 되겠지요. 그러리라 믿습니다. 그동안 여러분들이 전해주신 기도와 사랑. 깊이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지요.

 

‘내가 선 이곳은’ 이라는 동화를 쓰며 벼랑 위에 자라는 한 그루 소나무가 흔들리고 약해질 때마다 ‘바위들이 나를 붙잡아 주었습니다.’라고 쓴 적이 있는데, 여러분들이 저에게는 바위였습니다.

아름다운 우정으로 간직하겠습니다. 그 아름다운 우정은 가슴속에 아름다운 향기가 되어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 부족한 사람이 가는 길, 다시 한 번 여러분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단강에서 쓰는 ‘얘기마을’은 이렇게 멈추지만 서로를 향한 기도 안에서 여전히 우리는 하나일 것입니다.

 

바다를 모래로 막으신 하나님, 바다 한 가운데 마른 길을 내시고 당신 백성을 건너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2001. 9. 8. 단강에서 한희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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