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저들은 모릅니다

by 한종호 2019. 9. 4.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77)

 

저들은 모릅니다

 

불가능한 조항 하나만 아니라면 자신도 기꺼이 프란체스코 수도회에 가입하여 엄격하고 원시적인 그 모든 규정을 지켰을 거라고, 작가 폴 갤리코(Paul Gallico)가 말한 적이 있다. 성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규정에는 갤리코가 정말로 원하는 유일한 낙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수준 이하의 그리스도인을 향한 불손한 경멸과 넘치는 멸시였다.

 

브레넌 매닝의 <어리석은 자는 복이 있나니>에 보면 매닝이 1969년 새해 첫날을 ‘예수의 작은 형제들’과 함께 보낼 때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7명의 ‘작은 형제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몽마르 마을에서 하고 있는 노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근처 포도원에서 일하는 형제도 있었고, 목공과 석공 일을 하는 형제도 있었고, 그런 재주가 없는 형제들은 보다 단순한 일터로 갔다. 매닝은 역전 호텔에서 설거지도 하고 근처 농장에서 거름도 폈다.

 

 

 


자신들의 노임이 기준 이하라는 독일인 형제의 말과, 노동의 시간도 주먹구구라는 스페인 형제의 맞장구로 식탁의 대화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매닝은 자신의 고용주들을 교회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음을 지적했고, 프랑스인 형제는 그들이 위선자라는 뜻으로 말했다. 성토에 열이 오르면서 말투도 더욱 신랄해져 갔다.


그들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자신들의 고용주들은 일요일이면 온종일 잠이나 자고, 생각 없이 돈을 쓰고, 삶과 믿음과 가정과 수확 등에 대해 마음과 생각을 받들어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는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이다.

 

모두가 고용주를 성토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도미니크 봐이욤 형제는 식탁 끝에 앉아 한 번도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순간 매닝은 그의 뺨에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왜 그러나, 도미니크?”


다들 놀라서 물었을 때 그는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한 마디 짧은 말을 했다.


“저들은 모릅니다.”

 

그 이야기를 전하며 매닝은 ‘저들은 모릅니다’ 그 한 문장 때문에 자신의 분노가 긍휼로 바뀐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고 고백을 한다.


이해하기 힘들고 받아들이기 힘든 일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찾아온다. 그럴 때면 우리는 흥분하고 분노하고 성토를 한다. 혼자일 때도 그렇지만 여럿이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봐이욤처럼, 봐이욤의 말을 의미 있게 새기고 있는 매닝처럼 숨을 고르며 ‘저들은 모릅니다’ 할 수 있다면, 극심한 분노가 긍휼로 바뀌는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많은 순간 우리의 분노 앞에서는 그런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없겠지만 말이다.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폭염이라는 호  (4) 2019.09.06
바위처럼 바람처럼  (2) 2019.09.05
전투와 전쟁  (2) 2019.09.03
행하는 자와 가르치는 자  (2) 2019.09.01
개미 한 마리의 사랑스러움  (2) 2019.09.0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