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78)
바위처럼 바람처럼
송기득 교수님이 이 땅을 떠났다. 냉천동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시절, 송 교수님으로부터 <인간학>을 배웠다. 신학을 공부하며 함께 배우는 과목 중에 <인간학>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안도감을 주었고,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교수님께 들었던 강의내용을 지금껏 기억하는 건 무리지만 인간답게 사는 것이 신앙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 인간다움이 신앙을 담아내는 온전한 그릇임을 진득하게 배운 시간이었다. 얼굴의 이목구비가 뚜렷했던 만큼 선이 굵은 삶을 살았던 교수님으로 남아 있다.
강의 중에 들은 이야기가 있다. 교수님의 젊은 시절 추운 겨울 무일푼으로 무작정 길을 떠난 일이 있고, 거지꼴을 하고 떠돌다가 비구니들만 거하는 사찰에서 머문 적이 있는데, 하룻밤을 묵고 떠나려는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을 하느냐며 자기도 데리고 가 달라고 청한 비구니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야기에 흠뻑 빠진 우리들은 혹시 그 비구니가 지금의 사모님이 아닌지 짓궂은 질문을 하며 이어질 이야기를 궁금해 했는데 때마침 강의를 마치는 시간, 당신에게 커피를 사는 학생에게 다음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강의를 마쳤다. 하지만 나는 커피를 살 돈보다도 교수님과 마주앉을 용기가 없어 묻지를 못했다. 왜 그런 용기가 없었을까,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아있는 일이다.
교리의 틀을 깨고 나온 민낯의 예수, 많은 경우 우리는 그 예수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할지 몰라 두려워 또 다시 예수를 교리 속에 가두고는 한다. 교수님이 전해준 가르침을 생각하며 얼마 전에 구한 <탈신학 에세이>를 정독해야겠다. 바위처럼 바람처럼 묵묵히 자유롭게 인간다움의 길을 걸어간 한 사람의 뒷모습에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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