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88)
무임승차
몇 번 KTX를 탄 적이 있는데, 몇 가지 점에서 놀란다. 운행하는 횟수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 그런데도 이용하는 승객이 많다는 것, 달리는 기차의 속도가 엄청나다는 것 등이다. 오후에 떠나도 부산 다녀오는 일이 가능해졌으니 말이다.
또 하나 놀라게 되는 것이 있는데, 기차를 이용하는 과정이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면 창구에서 따로 표를 끊지 않아도 된다. 기차를 타러 나갈 때 ‘개찰’을 하는 일도 없어, 플랫폼에서 기다렸다가 알아서 타면 된다.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표 검사를 하는 일도 없고(물론 승무원들이 왔다 갔다 하며 체크를 한다 싶지만), 목적지에서 내렸을 때도 표를 검사하지 않은 채 역을 빠져나간다. 표를 괜히 구매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기차통학을 할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명함 크기의 기차표를 창구에서 끊고, 기차를 타러 나갈 때는 기차표를 역무원에게 보여 표 한쪽 면에 표시를 받고(그 과정을 개찰이라고 했다), 목적지에 도착을 하면 역무원에게 표를 건네야 역을 빠져 나갈 수가 있었다.
독일에서 살 때, 어느 날 아이들 이름으로 벌금통지서가 날아온 적이 있다. 표를 끊지 않고 지하철을 탄 것에 대한 벌금이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아이들이 기차가 서 있는 것을 보고 뛰어 올라탔는데,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순간 아이들은 망설였을 것이다. 표를 끊으면 기차를 놓칠 것이 뻔하고, 표를 검사하지 않을 때가 더 많으니 그냥 타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 그날 표 검사를 했고, 표를 끊지 않은 것이 적발되었던 것이다. 독일 지하철은 표를 검사하지 않을 때가 많지만 막상 걸리면 거의 한 달치 요금에 해당하는 과한 벌금을 물어야 한다. 독일에서 일어나는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액이 2016년 기준 4700억 가량이라니 놀라운 일이다. 프랑스에서는 무임승차 계까지 있다고 한다. 그룹을 만들어 한 명이 무임승차를 하다가 걸리면 다 함께 벌금을 내준다는 것이다.
무임승차, 찻삯을 내지 않고 차를 타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무임승차가 어디 기차나 버스를 탈 때만 일어나겠는가. 누군가의 수고와 헌신, 혹은 명성에 기대어 마땅히 치러야 할 것을 치르지 않은 채 편하게 앞서 가려는, 공짜로 편승하려는 모든 일들은 무임승차와 다를 것이 없다.
인생의 표도 검사하는 이들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때가 되면 무임승차는 드러난다. 드러나면 큰 값을 치러야 한다. 그가 누려온 많은 것들을 졸지에 잃어버리기도 하니, 벌금 치고 그보다 과한 벌금은 따로 없다 싶다.
‘무임승차 하지 않게 하소서’
때때로 드리는 기도 중엔 그런 기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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