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89)
버섯 하나를 두고
독일에서 목회를 할 때의 일이니 오래된 일이다. 하루는 가족들과 엘츠 성(Burg Eltz)을 찾았다. 독일에는 지역마다 성(城)이 있어 어디를 가나 성을 흔하게 볼 수가 있다. 엘츠 성은 라인란트-팔츠 (Rheinland-Pfalz)주의 코블렌츠와 트리어 사이를 흐르는 모젤강 (Mosel) 주변에 자리를 잡고 있다.
대개의 성은 산꼭대기에 서 있는 경우가 많은데, 엘츠 성은 다르다. 성이 어디에 있지 하며 진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저 아래쪽으로 성이 나타난다. 감돌아 흐르는 강을 끼고 서 있는 단아하고 예쁘장한 성, 처음 엘츠를 만나는 이들은 숨겨진 보물을 갑자기 만난 것처럼 감탄을 하며 발걸음을 멈춰 서고는 한다.
모젤강 (Mosel) 주변의 엘츠 성
엘츠 성의 또 다른 특징은 자연스러움에 있다. 적군을 막아내기 위한 견고한 성의 이미지보다는 흙집 같은 수수한 분위기를 전해준다. 위압적인 느낌이 아니라 푸근하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하이델베르크처럼 널리 알려지지 않기도 했거니와 숨어 있듯 자리를 잡고 있는 수수한 분위기가 좋아 손님들이 오면 즐겨 엘츠 성에 다녀오고는 했다.
엘츠 성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 들어올 때 걸어왔던 포장길을 두고 숲속으로 난 길을 걸어 나오는데, 곳곳에 버섯이 눈에 띄었다. 집에 가서 끓여 먹자며 아내와 내가 버섯을 따기 시작하자 아이들이 기겁을 한다. 만약 독버섯이면 어떻게 하냐는 것이었다. 모양도 냄새도 틀림없이 느타리버섯이라 했지만, 아이들의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아이들에게 내가 말했다. “찌개를 끓이면 아빠가 먼저 먹을 테니, 너희들은 5분 뒤에 먹으렴. 아빠가 괜찮은지를 확인하고 말이야.” 그러자 아내가 말했다. “엄마는 처음부터 먹을 거야.” 그 때 소리가 말했다. “엄마 아빠가 찌개를 먹으면 나도 먹을 거야. 엄마 아빠가 버섯 먹고 죽었는데, 우리만 살면 뭐해.” 소리 말에 갑자기 분위기가 비장해졌는데, 결국은 막내가 한 말에 웃음이 빵 터졌다. 버섯을 먹고 모두들 잘못되어 저 혼자 남는 상황이 떠올랐던 모양이었다. 막내가 제법 진지하게 물었다.
“그런데 엄마 아빠, 통장엔 돈이 얼마나 들어 있어요?”
추석을 맞아 아버님 산소에 다녀오는 길, 길옆에 자란 싸리버섯을 보는 순간 오래 전 일이 떠올라 피식 웃는다. 떨어져 지내는 녀석들은 모두들 잘 지내는지, 명절을 맞아 송편이라도 먹은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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