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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개인여행과 단체여행

by 한종호 2019. 9. 21.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5)

 

개인여행과 단체여행

 

구밀복검(口蜜腹劍)이라는 말이 있다. 말은 꿀처럼 달게 하지만 속에는 칼을 품고 있는 경우를 말한다.


어느 날 예수를 찾아온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당 사람들이 그랬다. 그들은 본래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입장이 달랐다. 그런데 예수를 잡는 일에는 손을 잡는다. 그들은 한껏 예수를 추켜세운다. 그들의 칭찬은 존경에 가깝다. 하지만 그것은 ‘口蜜’이었다. 속에 시퍼런 비수를 감추고 있다.


그들은 세금에 대해 예수에게 묻는다.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이 가당한 일인지, 가당치 않은 일인지를 묻고 있다. 몰라서, 배우려고 묻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잡으려고 묻는다. 어느 대답을 해도 꼼짝없이 걸려들 수밖에 없는 교묘한 덫을 놓은 것이다. 음흉한 웃음을 감추느라 표정관리가 어려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예수는 그들의 외식함을 안다. 표리부동(表裏不同)함을, 겉과 속이 다름을 꿰뚫어 보신다. 거짓 칭찬에 춤을 추지 않는다. 가이사의 초상이 새겨진 은전 데나리온을 들고 마침내 대답을 한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람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법, 그런 대답과 그런 태도에 마음껏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언젠가 목회를 하며 한 교우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어떤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는데, 갈수록 믿음의 본질에서 벗어나고 있다 싶었다. 점점 겸손에서 멀어져 경직되어 가고 있었는데, 정작 자신은 알아차리지를 못했다.


그 모임에 참석하지 않을 수 없겠느냐고 조심스레 말했을 때 그의 대답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곳에 가면 자신을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어느새 우리들의 신앙이 주님이 아니라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에 더 예민해졌구나, 허전하고 허탈했다.

 

생명의 문이 좁은 문이라면, 혼자서 들어가야 한다. 단체로 들어갈 수는 없다. 천하의 이야기꾼인 예수께서는 구원의 문만 들려준 것이 아니다. 멸망으로 들어가는 문도 말했다. 이야기꾼은 이야기로 말할 뿐, 이야기를 설명하지 않는다. 멸망으로 가는 문은 넓다. 그 문이 넓다는 것은 얼마든지 단체로 들어갈 수 있다는 뜻 아닐까.

 

생명으로 가는 길은 개인여행이다. 외롭고 고단해도 좁은 길을 걸어 한 사람씩 들어간다. 멸망으로 가는 길은 단체여행이다. 떠들썩 요란하게 넓은 길을 즐기다가 한꺼번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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