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5)
얼마를 감하시든
괜히 큰 소리를 치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몇 며칠 이야기를 하면 목이 가라앉곤 한다. 영월에서 집회를 인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교차가 심한 환절기이기도 한데다가 하루에 세 번 말씀을 전하니 목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마지막 날 새벽부터는 목이 칼칼한 것이 여간 조심스럽지를 않았다. 손에 마이크를 들고 목소리를 조금 낮춰 말씀을 이어갔다. 덕분에 교우들에게 걱정을 끼치게 되었다. 기도는 물론 목에 좋다는 차를 준비해 주시고는 했다.
가라앉은 목 상태는 오랜 전 기억 하나를 소환했다. 화천에서 연합집회를 인도할 때였다. 교파를 초월하여 화천에 있는 모든 교회가 모여 말씀을 나누는 자리였다. 집회를 시작할 때부터 목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대번 티를 내고 말았다. 집회를 마치고 식사를 하러 가면 정말로 말이 안 나왔다. 식사기도 또한 강사가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목에서는 거친 쇳소리가 날 뿐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목이 나을 수만 있다면 똥물이라도 마실 심정이었다. 아는 이비인후과 선생님께 긴급 도움을 청했더니, 쉬는 것밖에는 답이 없다고 했다. 겨우겨우 시간을 이어가던 중에 드디어 마지막 시간에 이르렀다. 그동안 목 상태가 더 악화된 것은 물론이었다.
말씀을 전하기 전에 교우들에게 말했다. 말씀을 전하는 중에 더는 목소리가 나오지를 않아 설교가 중단이 되면 마이크를 친구 목사에게 넘기겠다고, 친구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를 알고 있을 터이니 친구가 이어갈 것이라고. 진심이었다. 목소리가 안 나와 말을 할 수가 없으면 달리 방법이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는 기도를 드리는데, 나도 모르게 이런 기도를 드렸다.
“말씀을 나누는 마지막 시간에 주님께 구합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삶에서 며칠을 감하시든, 몇 달을 감하시든, 몇 년을 감하시든 괜찮습니다. 대신 오늘만큼은 말씀을 끝까지 전하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기도를 드리는데, 나도 모르게 목이 멨다. 내가 아는 하나님은 눈물에 약하시다. 그날 끝까지 말씀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눈물에 약하신 주님의 은총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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