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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더 이상 담배 사오지 마세요, 목사님

by 한종호 2019. 10. 25.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7)

 

 더 이상 담배 사오지 마세요, 목사님

 

지방 교역자 세미나에 참석한 것은 오랜만의 일이다. 새로 부임을 했으니 이런 기회에 지방 목회자들과 사귈 겸 동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장로님들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부산에서 2박3일 일정으로 열렸는데, 나름 진지한 모임이었다.


오가는 길이 멀기는 했지만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하여 우리나라를 위해 피 흘린 세계 젊은이들의 희생을 돌아보는 등 유익한 시간도 많았다. 17살 소년을 비롯해 대부분이 22~23살, 젊다기보다는 어린 나이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우리 땅에서 전사를 했다는 사실이 숙연함으로 다가왔다. 저녁 식사 이후에 이어진 세미나 시간은 매우 진지하게 진행이 되었다. 강사들의 태도도 그랬고, 임하는 지방 교역자들의 태도도 마찬가지여서 밤이 깊어서야 끝나고는 했다.

 

둘째 날 밤, 뜻밖의 만남을 가졌다. 부산에서 <기쁨의 집>을 운영하는 김현호 집사님께 안부 문자를 남겼더니 세미나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숙소로 찾아왔다. 제법 비가 오는 밤이었다. 부산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김 목사님과 동행을 하여 인사를 나눴다. 송정 해수욕장 앞에 있는 찻집을 찾았는데, ‘좋은 날 풍경’ 박보영 집사님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하지 못한 만남, 그만큼 반가움이 컸다.

 

 

 

 

밤이 늦도록 김 목사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용조 목사님과 많은 일을 같이 할 만큼 신망이 두터웠던 목사님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기 색깔이 분명한 목회를 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마음에 묻어둔 채 잊고 있었던 무엇인가를 김현호 집사님과 박보영 집사님을 통해서 다시 찾게 되었노라 했다.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신뢰, 그렇게 표현하진 않았지만 그런 따뜻한 마음을 의미했는데, 그것이 신앙의 본질이라는 것을 새롭게 확인하게 되었노라고 했다.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며 술친구를 모두 끊은 장로님께 술친구들을 찾아갈 것을 권했고, 석 달을 술집에서 기다린 끝에 마침내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일주일에 한 번 술집에서 그들을 만나 함께 어울리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목사님도 그들과 같이 어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고, 그런 시간을 이어갔단다.


어느 날 그들을 만난 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갈 때였다고 한다. 육교 위를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다리가 휘청거리더라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취기를 느낀 날이었다고 한다. 목사님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마침내 그들과 같아졌구나, 가슴이 그렇게 뜨거울 수가 없었다고 했다.

 

오해하지 마시기를. 그날 만난 김 목사님은 더없이 은혜로운 목사님이었다. 얼굴도 그렇고 말투도 그랬다. 몇 몇 신학교에서 강의를 했는데, 강의를 들은 학생들의 대부분은 선교사를 지망했다고 한다. 그만큼 영향력이 컸다는 반증이었다. 그런 목사님이 믿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을 만나기 위해 기꺼이 그들의 자리로 내려간 것이었다.

 

지금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 교인들의 대부분은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 선교사로 지내고 있고, 목사님의 중요한 사역 중의 하나는 그들을 격려하고 후원하는 일이라고 했다. 외국 오지에서 사역하는 이들을 방문할 때마다 선교사와 그곳에서 함께 신앙 생활하는 이들을 위하여 정성껏 밥을 지어 식사를 대접한다고 한다. 그런 만남을 통해 누리는 위로가 너무나 커서 많은 선교사들이 목사님의 방문을 간절히 기다린다고 했다.

 

선교지를 방문하고 귀국을 할 때 목사님이 따로 챙기는 물품 중에는 담배도 있었다. 목사님이 목회하는 교회에는 흡연자들을 위해 흡연 구역을 만들어 두었다고 했다. 다른 교우들 눈치 보지 말고 피우라고 담임목사실을 흡연실로 만들어 재떨이까지 가져다 놓았다는 말은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목사님은 선교지를 방문할 때마다 그곳의 담배를 사다가 선물 삼아 나눠주었는데, 어느 날 그들이 목사님께 말했단다.


“더 이상은 담배 사오지 마세요, 우리 담배 끊기로 했어요.”


그러더니 정말로 담배를 끊었다는 것이다. 목사가 자신들을 위하여 담배를 사오는 것이 그들이 볼 때에도 어울리지 않았던 것 아닐까 싶다. 목사님은 예의 따뜻한 웃음으로 말했다. “맘껏 피라고 목사가 담배를 사다주니까 오히려 담배를 끊더군요.”

 

이야기는 밤이 늦도록 이어졌다. 지방 목회자들의 얼굴을 익히고 이야기를 나누는 유익함도 컸지만 이번 여행은 김 목사님을 만난 것만으로도, 주님의 마음으로 목회의 길을 가고 있는 한 사람을 만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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