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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유용성이 없는 아름다움

by 한종호 2019. 10. 29.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00)

 

 유용성이 없는 아름다움

 

<최초의 음악가는 아마 남달리 몽상적인 사냥꾼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활을 쏠 때 실수로 손가락으로 활줄을 건드렸다가, 그것에서 나는 신기한 울림에 자못 놀랐을 테지요. 아마도 그날 저녁, 가죽을 씌운 거북 등짝지에 팽팽하게 활줄을 연결해서 퉁겨 보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현이 선사하는 조화로운 음을 발견한 뒤에는 현에 음색을 선사하는 공명도 발견했겠지요.


모닥불 주변에 둘러앉은 부족 구성원들은 처음에는 그를 보고 웃었을지도 모릅니다. 덜떨어진 몽상가로 치부했을 겁니다. “저런 막을 씌운 거북 등짝지로 어떻게 영양을 사냥해?” 하지만 잠시 뒤에 그들은 입을 다물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울림에 귀를 기울였을 것입니다. 무언가 본질적인 것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악기에서 퍼져 나오는 울림과 함께 그 저녁, 그들은 처음으로 유용한 사냥을 넘어서 유용성이 없는 아름다움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처음으로, 공격하는 동물이 포효하는 소리나 위험에 처한 생명의 두려움에 찬 외침이 아닌, ‘노래’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뇌에서 1억 개의 신경 세포를 지닌 청각 피질이 여느 때처럼 활성화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경고의 메시지가 아니었습니다. 좋은 것이었습니다. 도망칠 이유가 없는 소리였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울림에 움직임을 선사했습니다. 도망치거나 공격하는 움직임이 아니라, 들은 것을 ‘춤’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활을 쏘다 실수로 건드린 활줄, 신기한 울림, 거북 등딱지, 조화로운 음, 공명, 덜떨어진 몽상가, 거북 등딱지와 사냥, 유용성이 없는 아름다움, 울림에 선사한 움직임, 춤…, 이보다 맑고 깊은 묵상이 어디 흔할까 싶다. 더딤을 아낌이라 여기며 읽고 있는 책 <바이올린과 순례자>에서 만난 최초의 음악가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고 공명한다.


음악과 노래와 악기와 춤은 얼마든지 그렇게 시작이 되었겠다 싶다. 그 순간 함께 꽃 피었던 것 중에는 ‘詩’도 있었을 것이다. 그와 같은 일은 까마득한 원시의 시간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지금도 누군가를 가만있지 못하게 만드는 일은 그렇게 시작이 될 것이다. 덜떨어진 몽상가가 만들어내는 유용성이 없는 아름다움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유용성이 없는 아름다움이라는 말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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