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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집으로 돌아오는 소처럼

by 한종호 2019. 11. 3.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05)

 

집으로 돌아오는 소처럼

 

마주앉아 밥을 먹던 권사님이 자기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가 자라난 고향은 버스도 들어오지 않는 외진 시골, 사방이 논으로 둘러싸인 동네였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 농사일을 도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쩔 수 없다지만 아이에게 농사일이 얼마나 고되었을까, 어렵지 않게 짐작이 된다. 권사님은 지금도 보리밥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어릴 적에 하도 먹어 물린 것이다.

 

아버지가 시키는 농사일은 모두가 고된 것만이 아니어서 기다려지는 일도 있었다. 소꼴을 먹이는 일이었다. 소를 몰고 강가로 나가 풀어놓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소를 풀어두면 소가 알아서 풀을 뜯어먹는데, 그러는 동안 친구들이랑 멱도 감고 고기도 잡을 수가 있었으니 그보다 좋은 시간이 어디 흔할까.

 

 

 

 

그렇게 신나게 놀다가 해가 기울 무렵 소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되는데, 문제가 생길 때가 있었단다. 아무리 찾아도 소가 보이지를 않는 것이다. 어디로 갔는지 소는 보이지를 않고, 날은 어두워지고, 그러면 할 수 없이 무거운 걸음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데, 그런 날이면 아버지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는 것은 당연했다.


소를 잃어버린 일이 어찌 야단만으로 끝날 일이겠는가, 온 식구가 잠을 못 잘 일이다 싶은데 그렇지가 않았단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면 언제 왔는지 소가 집에 와 있곤 했다는 것이다. 밤새 집으로 돌아온 소를 보는 소년의 얼굴에는 아침 해만큼이나 환한 웃음이 번졌을 것이다.

 

어찌 소가 자기 집을 알고 어둠 속에 돌아온 것일까, 소년의 궁금증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이어진다. 냄새든 기억이든 그 무엇인가를 따라 어둠 속 길이 보이지 않아도 뚜벅뚜벅 집을 찾아 돌아오는 소처럼, 우리도 그렇게 가는 것, 어둠 속을 헤매다가도 결국은 집을 찾아 가는 것, 누구라도 예외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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