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07)
이야기의 힘을 신뢰한다는 것
<말씀축제>가 끝났다. 정릉교회가 부흥회라는 이름 대신 말씀축제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이름이 달라지면 성격도 달라질 수가 있다.
걸음을 멈추고 말씀을 듣는 시간, 누구를 청할지는 늘 고민이 되는 부분이다. 꼭 청하고 싶은 선배가 있어 말씀을 드렸더니 끝내 고사를 했다. 그 또한 귀한 가르침이었다. 그러던 중 떠오른 한 사람이 있었다.
<시편사색>을 쓴 송대선 목사였다. 연락을 했고, 오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예(禮)가 아니다 싶으면서도 두 가지 양해를 구했다. 주제와 일정이었다. ‘시편의 바다를 헤엄치자’로 주제를 정했고, 말씀을 듣는 시간을 10회로 정했다. 선배의 말이기 때문이었을까, 받을 수 있는 범위의 일이었을까, 두 가지를 모두 받아주었다. 시편의 바다를 마음껏 헤엄치는 일은 신앙여정에 있어 흔하지 않을 일, 10번 말씀을 나누는 일이 강사로서는 부담이 되겠지만 욕심을 낼만한 일이라 여겨졌다.
뜨거운 분위기의 부흥회를 원하는 교우들이 왜 없겠는가, 교우들이 송목사가 전하는 말씀을 어떻게 들을지 나도 궁금했다. 나직한 목소리, 말이 생각을 앞서지 않도록 조심을 하며 여백을 두고 이어가는 이야기, 분명 익숙한 부흥회 분위기와는 달랐다. 확연하게 달랐다.
하지만 말씀을 듣는 교우들의 태도는 놀랄 만큼 진지했다. 이슬비에 옷이 젖듯, 붉게 물든 앞산 호수에 물들 듯 말씀을 경청했다. 칠판에 적는 한자마저도 한 자 한 자 옮겨 적으며 소중하게 받아들였다. 두께며 내용이며 쉽지 않은 책이지만, 적잖은 교우들이 <시편사색>을 구입하기도 했다.
집회를 마치고 교회 교역자들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집회 기간 동안 가졌던 생각들을 나눴다. 이런 말씀집회도 있구나 싶었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익숙함에서 벗어난 시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를 정리하며 내 생각을 말했다. 오랜만에 이야기의 힘을 신뢰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이야기의 힘을 믿는 사람은 공연히 과장이나 치장을 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이야기 속에 생각을 담아낼 뿐이다. 진솔하면 된다. 일부러 보태거나 뺄 것이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이야기의 힘을 신뢰한다는 것은 의미 있고도 소중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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