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그래야 방 한 칸

by 한종호 2019. 11. 17.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5)

 

그래야 방 한 칸

 

모처럼 다른 일정이 없는 월요일, 목양실로 나왔다. 평소에도 조용한 예배당이 월요일이라 그런지 더욱 조용했다. 책상 옆 한쪽 구석에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이 있다. 공문과 신문과 잡지, 이런저런 자료와 보고서도 있다. 하루에도 여러 편 우편물이 전해지고, 교회 일과 관련한 자료와 보고서 등도 전해진다. 때마다 중요한 것들을 우선적으로 처리하고 덜 중요하다 싶은 것들을 쌓아두기 시작했는데, 그 높이가 어느새 제법이었다. 그때그때 분류를 하여 정리를 해두면 편할 것을 그렇지 못했다. 정리를 잘 못하는 성격도 컸거니와, 연일 이어지는 심방 등 바쁜 일정을 핑계로 쌓아 두기만 했었다.

 

 

 

그냥 일을 하는 것이 단조롭다 싶어 음악을 틀었다. 주로 클래식을 선물처럼 듣는다. 한가한 마음으로 음악을 듣는 일도 오랜만이지 싶다. 한 움큼씩 자료를 들고 와서 분류를 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남길 것과 버릴 것을 정했다. 자료를 살핀 뒤 남길 것과 버릴 것을 구분했다. 버릴 것은 왼쪽에 남길 것은 오른쪽에 쌓아두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보니 버릴 것이 더 많았다. 시간이 지나면 버릴 것을 챙겨두고 있었던 것이었다.

 

일을 마치는 데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일을 모두 마치고 차 한 잔을 마시는 시간, 마음이 홀가분했다. 그러고 보면 쌓아두고 있었던 것은 자료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뭔가를 처리하지 못한 미진한 마음들이 쌓여 있었던 것이었다. 한꺼번에 정리를 해보니 내게 부여된 일과 감당해야 할 의무가 적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교회 안에서건 교회 밖에서건 주어진 일들이 적지 않다. 크고 작은 다양한 요구들이 있다. 어떤 것은 받아들여야 하고, 어떤 것은 조정해야 하고, 어떤 것은 거절해야 한다. 어떤 일은 맡겨야 하고, 어떤 일은 챙겨야 한다. 그 경계가 불분명할 때도 있다. 하루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그런 일들 속에서 지나간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아무리 많은 일들이 복잡하게 엉겨 마음이 어수선하다 해도 결국 그 모든 것들은 내 방 한 칸을 채우는 것들이었다.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기도 하고, 벅차게 여겨지기도 하고, 일 속에 파묻혀 있는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지만 아니었던 것이다. 겨우 방 한 칸에서 일어나는 작고 미미한 일들이었다. 반나절 정도 집중하면 대충 정리가 되는 것들이었다. 그것이 어떤 일이든 내게 주어진 일이 세상의 전부라도 되는 양 부풀리거나 수선을 피울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 같은 세상  (2) 2019.11.18
이슬 묵상  (2) 2019.11.17
몇 가지 질문들  (2) 2019.11.16
숨과 같은 하나님  (2) 2019.11.14
두 개의 강  (2) 2019.11.1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