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숨과 같은 하나님

by 한종호 2019. 11. 14.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2)

 

숨과 같은 하나님

 

이름은 기호나 문자나 소리가 아니다.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한 장치나 도구도 아니다. 이름은 존재다. 이름에는 그의 존재가 오롯이 담겨 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고 있는 백성에게 보내실 때, 모세는 하나님께 질문을 한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너희 조상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합니까?”(출애굽기 3:13)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데, 하나의 명사가 아니라 하나의 문장으로 대답하신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이는 몇 가지 서로 다른 의미로 번역이 된다. “나는 곧 나다”로 번역되기도 하고, “나는 있게 될 자로 있게 될 것이다”(I will be Who I will be)로 번역되기도 하고, “그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존재케 한다”로 번역되기도 했다.

 

모세에게 알린 이름은 ‘거룩한 네 글자’(Tetra grammaton) 4개의 히브리어 자음 ‘YHWH’로 남았다. 그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빌론 포로기가 끝난 뒤 유대인은 그 이름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 너무나 거룩한 이름이어서 인간이 발설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대신 회당 예배에서는 ‘아도나이’(나의 주)로 발음했는데, 구약성서 그리스어 번역본인 70인역은 이 단어를 '키리오스'(주)로 번역했다.

 

 

 

6~10세기경 히브리어 성서 원본의 재간행 작업을 벌인 마소라 학자들은 'YHWH'라는 이름을 구성하는 모음들을 히브리어 '아도나이' 또는 '엘로힘'의 모음 부호들로 대치했다. 그 결과 '여호와'(Jehovah, YeHoWaH)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19~20세기 성서학자들은 ‘여호와’라는 이름 대신 ‘야훼’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우리말 성경도 서로 다른 이름을 사용한다. <개역개정판> 성경은 ‘여호와’라는 이름을, <새번역> 성경은 ‘주님’이라는 이름을, <공동번역> 성경은 ‘야훼’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짤막한 신학 지식과 몇 몇 자료들의 도움을 받아 이해하고 있는 내용들이다. 이번 말씀축제 강사로 온 송대선 목사가 이 대목을 언급하며 소개한 내용이 있다. 자신의 의견이 아니라 어떤 성서학자(들)의 견해라는 점을 먼저 밝혔다.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는데, ‘YHWH’가 아기가 내는 원초적인 숨소리라는 것이었다. 어린 아기가 숨을 쉴 때 내는 가장 자연스러운 숨소리라는 것이었다.

 

그 말은 새로웠고 마음에 와 닿았다. 어린 아기에게는 아직 습득한 언어가 없다. 한국에서 태어난 아기는 한글로 숨을 쉬고, 미국 아기는 영어로 숨을 쉬고, 독일 아기는 독일어로 숨을 쉬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아기들에게는 언어 이전의 원초적인 숨소리가 있다. 만약 ‘YHWH’를 인간이 내는 가장 원초적인 숨소리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면, 하나님은 우리의 숨 속에도 함께 하시는 분이 된다.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가 없는, 나보다 나에게 더 가까운 분이 된다.

 

그럴 수 있기를, 그런 사유가 가능할 수 있기를!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래야 방 한 칸  (2) 2019.11.17
몇 가지 질문들  (2) 2019.11.16
두 개의 강  (2) 2019.11.13
나무들 옷 입히기  (2) 2019.11.12
때론 꽃도  (2) 2019.11.11

댓글